한국일보
2025년 9월 1일
극우 집회서 만난 16살 도현이···"부모님이 초5부터 학교 안 보내, 교회서 역사 공부했다"
아스팔트 우파 10대는 어떻게 탄생했나
양 볼에 주근깨가 박힌 앳된 얼굴의 김서아(가명∙17)양은 처음 보는 기자에게 학교 국어 선생님을 "좌파"라고 불렀다. 자신의 추정이라고 덧붙였지만 제법 확신에 찬 어조였다.
‘한국 현대시의 아버지’ 정지용.
"수업 시간에 교과서에 없는 문학 작품을 가져오셨어요. 좋아하는 글이라면서요. 찾아보니 그걸 쓴 저자가 월북한 사람인 거예요. 정지용 시인."
‘한국 현대시의 아버지’ 정지용.
'향수' 같은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작품을 쓴 그를 소개했다는 이유로 국어 교사는 이 아이의 눈에 좌파로 비쳤다. 정지용은 6∙25전쟁 때 사망했는데 최근 증언 등에 따르면 자진월북보다는 강제납북설에 더 힘이 실린다.
하지만 서아는 북한과 어떤 식으로든 엮인 사람을 꺼림칙해 하는 눈치였다. 스스로를 '우파'라고 믿는 이 아이는 좌파를 "개인의 자유는 생각하지 않고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를 지향하는 사람들"로 규정한다. 북한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공산당=좌파'라는 도식이 조건반사적으로 튀어 나오도록 학습된 것처럼 보였다.
카페 옆자리에 멀뚱히 앉아 있던 이도현(가명∙16)군이 교회 누나를 거들었다. 선한 눈매의 아이는 "정말 나라 발전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보수"라고 믿었다. "아르헨티나도 (좌파) 포퓰리즘으로 망했잖아요."
서아와 도현도 처음부터 강경 보수적 정치 신념으로 똘똘 뭉친 아이들은 아니었다. 오히려 서아가 처음 경험한 광장은 2017년 언니의 친구를 따라 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촉구 집회였다. 하지만 제도권 학교 대신 교회에서 교육 받으면서 생각이 변했다.
도현은 초교 5학년을 마친 뒤 부모의 권유로 홈스쿨링(학교 대신 집에서 교육 받는 것)을 시작하며 학교를 떠났고, 서아는 초교에 입학하는 대신 개신교 대안학교와 홈스쿨링으로 공부 하다가 뒤늦게 공교육으로 돌아왔다.
한국일보는 10대 극우화 현상을 파헤치다, 홈스쿨링과 교회의 대안교육기관을 다니며 심각하게 왜곡된 이념을 주입받는 소년(少年·성별 무관 어린 나이)들을 만났다. 이 아이들은 정부, 부모, 교회, 사회의 잘못으로 공교육을 받을 기회조치 박탈 당한 '피해자'로 보였다.
국가는 법망 밖에서 배우는 아이들에게 큰 관심이 없다. 홈스쿨링이나 비인가 대안교육시설에 보내겠다며 법정 의무교육인 초등·중학교에 자녀를 출석시키지 않으면 위법이지만 정부는 실태조차 제대로 챙기지 않는다.
국가는 법망 밖에서 배우는 아이들에게 큰 관심이 없다. 홈스쿨링이나 비인가 대안교육시설에 보내겠다며 법정 의무교육인 초등·중학교에 자녀를 출석시키지 않으면 위법이지만 정부는 실태조차 제대로 챙기지 않는다.
극우 기독교계에 따르면, 현재 국내 기독대안학교는 약 500곳으로 추정되며 홈스쿨링을 받는 아이들은 수 천명 가량으로 알려졌다.
모든 대안교육시설이 질낮은 교육을 하는 건 아니다. 공교육에 맞지 않는 아이들을 품어 웃음을 되찾도록 돕는 곳도 있다. 문제는 아이들에게 편향된 교육을 시킬 의도가 짙은 대안교육시설이나 홈스쿨링이 우후죽순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모든 대안교육시설이 질낮은 교육을 하는 건 아니다. 공교육에 맞지 않는 아이들을 품어 웃음을 되찾도록 돕는 곳도 있다. 문제는 아이들에게 편향된 교육을 시킬 의도가 짙은 대안교육시설이나 홈스쿨링이 우후죽순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여의도 탄핵 반대 집회를 이끈 손현보 부산 세계로교회 목사는 " 공립학교는 반(反) 성경적이라 하나님 말씀을 가르칠 수 없다 "며 "교회마다 대안학교를 세우고 국가 지원을 받아 학생들을 가르치면 대한민국은 기독교 국가가 될 수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세계로 초중고등학교' 개교를 추진하고 있다.
근본주의 교회들은 공교육을 미더워하지 못하는 신자들에게 손짓한다. 학교 교육 내용 중 거부감이 큰 성교육과 진화론, 근현대사 교육을 대신 해주겠다며 나선다. 서아와 도현의 근현대사 선생님도 목사와 그의 아내였다. 홈스쿨링 아이들은 '코업'이라는 교회 수업에서 우리 역사를 배웠다. 서아가 자랑하듯 말했다.
"주로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꾀하는 강의였어요. 사모님(목사의 아내)이 하시는 역사 수업을 듣는 내내 제가 모르는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죠. 전혀 몰랐던 역사의 실체와 진실이 드러나니 머리 속이 하얘졌어요."
'반탄' 집회에서 아이들을 만났다
기자가 아이들을 처음 만난 곳은 거리였다. 이른 봄비가 흩날리던 지난 3월1일, 서울 여의도에는 5만여 명이 모였다. 태극기와 성조기, 이스라엘기를 요란스레 흔드는 이들도 보였다. 개신교계 단체인 세이브코리아가 연 국가비상기도회였다. 이들은 파면 심판 선고를 기다리던 윤석열 전 대통령을 지지하며 '탄핵 반대'를 외쳤다.
기자가 아이들을 처음 만난 곳은 거리였다. 이른 봄비가 흩날리던 지난 3월1일, 서울 여의도에는 5만여 명이 모였다. 태극기와 성조기, 이스라엘기를 요란스레 흔드는 이들도 보였다. 개신교계 단체인 세이브코리아가 연 국가비상기도회였다. 이들은 파면 심판 선고를 기다리던 윤석열 전 대통령을 지지하며 '탄핵 반대'를 외쳤다.
인파 속에는 목사의 권유로 온 서아와 도현도 있었다. 서아는 탄핵 반대 집회에 서너 번 나왔고, 도현은 첫 참석이었지만 문재인 정부 때 부모님을 따라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원로목사가 주도하는 광화문 태극기 집회에 간 적이 있었다. 집회에 온 어른들은 서아와 도현 같은 10대 참가자를 볼 때마다 대견해하며 "와줘서 고맙다"고 격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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