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전공자는 아니고 취미로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전시회 보러 다닙니다
음, 박물관 좋아한 건 중학교 때부터니까 한 40년쯤 된 취미생활이고, 그림구경은 한 30년쯤 된 것 같습니다.
그래봐야 전문가적인 건 아니라 오늘 추천하는 전시회도 그저 아마추어 눈에 보기 괜찮았던 거라 생각해주심 좋겠습니다
1) 광채 : 시작의 순간들
서울시립사진미술관 https://sema.seoul.go.kr/kr/whatson/exhibition/detail
올해 새로 개관한 서울시립미술관의 분관인 사진미술관 개관전시입니다
우리나라에 사진이 전해진 19세기 말 이후 사진이 기술에서 예술로 넘어가는 시점의 5명의 작가들 작품을 모은 전시회입니다
5월에 시작해서 10월 12일까지 전시합니다
우리나라 사진 예술의 역사를 보는 느낌이기도 하고 우리나라에서 사진이 단순 기록을 넘어서 예술로 어떻게 발전했는지 엿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다른 층에서 열리고 있는 '스토리지 스토리' (https://sema.seoul.go.kr/kr/whatson/exhibition/detail?exNo=1410085&acadmyEeNo=... 전시와 비교해서 보기에도 참 좋습니다. 이 전시는 서울시립사진미술관의 설립, 건축과정을 기록을 넘은 예술로 보여주는 전시회인데, 현대작가들이 사진이 미디어 아트로 어떻게 발전했는지를 보여주어서 매우 흥미롭고, '광채' 전시의 시대로부터 사진이 얼마나 예술적으로 확장되었는지도 비교할 수 있어서 매우 흥미로왔습니다
2) 오늘도 기념, 우리가 기념품을 간직하는 이유
국립민속박물관 https://www.nfm.go.kr/user/planexhibition/home/20/selectPlanExhibitionNView.do...
제게 '민속'이라 하면 용인 한국 민속촌에서 보는 초가집에 한복입은 조선시대 평민들의 일상을 연상시키는 것이었으나, 이 전시회는 '민속'이라는 것이 지금 현재를 사는 우리들의 일상을 기록하는 것이라는 관점에서 확장된 시선을 안겨줍니다
각종 '굿즈'로 대변되는 기념품들에 깃든 서사를 통해서 삶의 기록과 의미를 새롭게 보게 되는 전시회였습니다.
한 사람의 일생의 중요한 시기, 탄생, 돌, 결혼 등등의 중요 이벤트를 기념하는 옛 그림병풍으로부터 시작해서 각종 기념문구가 적힌 수건, 캘린더, 관광 엽서, 아이돌 굿즈에 이르기까지 서사가 담긴 기념품들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어찌보면 참 별거아닌 허접한, 소위 예쁜 쓰레기일 수도 있는 물건들일지 모르나 그걸 모은 사람의 서사와 기념하고픈 마음을 생각하니 의외로 참 재미있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늘 생각하는 거지만, 우리나라 공공 미술관이나 박물관의 학예사들은 참 능력자들이 많다 싶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귀여운 전시를 기획했을까 생각에 보면서 빙긋 웃으며 다녔습니다
저는 서울 시내의 박물관과 미술관은 웬만한 곳은 대부분 다녔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다보니, 민속박물관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놀랍게도 왜 이제 와봤나 싶을 정도로 흥미로운 곳이었습니다.
별로 이목이 집중된 박물관이 아니라 뮤지엄샵도 한가합니다만, 요즘 난리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품절이라는 몇몇 굿즈는 여기에 버젓이 있더이다. 물론 초인기 폭발인 굿즈들은 당연히 없었지만 말입니다
이 전시도 5월에 시작했고 9월 14일까지 열립니다
3) 창덕궁의 근사(謹寫)한 벽화
국립고궁박물관 https://www.gogung.go.kr/gogung/bbs/BMSR00002/view.do?boardId=6692&nextBoardId...
1917년 화재로 소실된 창덕궁 희정당, 대조전, 경훈각을 다시 지을 때 새로 그린 벽화 6점과 초본 1점을 복원하여 전시하고 있습니다
김규진, 오일영, 이용우, 김은호, 노수현, 이상범 등 당대의 젊고 실력있는(지금 현재는 엄청 유명한) 화가들이 그린 대형 벽화를 오랜 기간 복원해서 전시하고 있습니다. 서양의 벽화들이 실제 벽에 바로 그린 것과는 달리 이 벽화들은 비단에 채색해서 벽에 붙였던 걸로 잘 떼서 복원하고 현재 창덕궁 해당 전각에는 영인본을 제작해서 붙여 놓았고 이번 전시회에 원본을 전시하는 중입니다.
8월 14일에 시작해서 10월 12일까지 전시합니다.
김규진의 '총석정 절경도'는 관동8경의 총석정을 그린 여타 작품과는 달리 바다에서 배를 타고 바라본 총석정 전경을 그린 그림이라 총석정이네 하면서도 완전히 색다른 구도와 스케일을 자랑하는 작품입니다. '금강산만물초승경도' 역시 수없는 화가들이 그려서 우리가 많이 보아왔던 금강산 만물상의 그림과 전혀 다른 독특한 화풍을 보여주는 작품이라 재미있습니다
나머지 작품들도 여태 우리가 봤던 한국화 중 사이즈와 구도가 남다른 작품들이라 보는 맛이 독특합니다
답답한 시절의 갑갑한 대한제국의 암담한 궁궐 사정까지 생각하면 곱게 볼 수만은 없는 작품들이기는 하나, 저간의 사정을 같이 설명해 두어서 이 작품들이 갖는 의미를 그래도 다시 생각해볼만은 했습니다
이 기획전시 이외에도 상설전시 자체도 제법 볼만합니다
여기 뮤지엄샵에도 국립중앙박물관 굿즈도 공유하고 있고 고궁박물관 독자적인 기념품들도 있어서 제법 볼만한 것들이 많았습니다. 중앙박물관에 품절인 것들도 눈에 띄었고 훨씬 한가해서 구매욕을 자극하는 것들이 훨씬 많아보였습니다
4) 우관중, 흑과 백 사이
예술의 전당 서울서예박물관, https://www.sac.or.kr/site/main/show/show_view?SN=75872
홍콩을 근거지로 삼고 활동했다는 중국 강남 출신의 화가 우관중의 홍콩예술박물관 소장 작품 전시회입니다. 수묵화와 서양 유화를 넘나들며 작품활동을 했던 작가라는데, 작가의 평생 화두인 '검정'을 표현의 주제로 검정, 흰색 그리고 그 사이의 회색만으로 구상과 추상을 넘나들고 수묵와 유채 등 재료에 구애받지 않는 표현 방식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유화로 동양화의 분위기를, 수묵으로 서양화느 느낌을 내는 등 제게는 새로운 느낌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서양화보다 거리가 있었던 동양화들, 그 가운데 중국현대화가들의 그림은 제겐 매우 생소한 영역이었는데, 전시 작품 수가 매우 적은데도 불구하고 현대에 동양화가 어떻게 발전하는지 한 방향을 본 듯해서 아주 인상적인 전시였습니다
의외로 서예박물관의 전시들이 자주 많이 열리지는 않는데, 알짜가 많구나 싶습니다
이전에 두어번 온 적이 있었는데, 기대 이상으로 훌륭하고 만족스러웠기에 앞으로도 서예박물관 전시는 눈여겨보려고 합니다
여기까지 이 네 전시회 모두 무료 전시회라는 사실이 매우 놀랍습니다
무료 전시회라고 해서 절대 퀄리티가 떨어지지 않고 웬만한 비싼 관람료를 지불하는 사립 미술관, 박물관 전시들에 못지 않은 전시라 추천해봅니다
장소를 보면 공공 박물관, 미술관들입니다. 즉, 국가 지원으로 여는 전시회라는 뜻이죠
요즘 국립중앙박물관에 폭주하는 관객들로 관람료를 유료화하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지금과 같은 무료입장을 계속 견지해주었으면 합니다
지금도 유료인 국립, 시립 박물관 입장료, 관람료도 사실 몇천원 수준입니다. 기껏해야 2천원에서 5천원 사이라 그리 부담되는 정도의 금액은 아닙니다만, 이것조차 문화적 관심없는 국민에게는 문턱이 될 수 있습니다. 명절에 고궁, 국립 박물관 무료입장할 때 보면 그 몇천원에도 관람객이 엄청나게 차이나는 걸 알 수 있거든요. 비록 무료라서 한번 들러보았더라도, 다만 한명이라도 더, 한번이라도 문화체험을 할 수 있다면 그게 국가가 국민의 문화적 소양을 높이는데 투자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이자 목적이 될 수 있지 않나 싶거든요.
국가가 이정도 투자했으면 국민들도 기꺼이 이 기회를 충분히 누리고 활용했으면 합니다
여러분, 우리나라에는 공짜로 누릴 수 있는 고퀄리티의 문화생활꺼리가 많습니다
모쪼록 많이 많이 보고 즐기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