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생산자협회 성명서]
쌀의 가격보장제도를 농안법에 넘기지 마라!
양곡관리법에서 가격정책을 삭제하고 농안법에 넘긴 것은 개악이다!
민주당이 주도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농민의 기대를 저버린 후퇴 그 자체였다. 농민의 요구와 오랜 투쟁 끝에 마련되었던 2024년 11월 개정안의 핵심은 사라졌고, 정권의 정책 실패를 바로잡아야 할 법 개정이 오히려 그 실패를 제도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특히 양곡관리법에서 가격안정제도를 삭제하고, 농안법으로 편입시켜 가격정책을 통합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시도를 쌀에 대한 국가 책임의 포기이며, 주식에 대한 예산 보장의 구조적 붕괴 시도로 강력히 규정한다.
쌀은 단지 ‘농산물 중 하나’가 아니다. 쌀은 우리나라의 주식이며, 국민의 밥이고, 식량안보의 최후 보루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쌀은 수십 년간 양곡관리법이라는 별도 법률에 의해 보호되고 관리되어 왔고, 가격정책 또한 목표가격제·변동직불제를 통해 그 안에 담겨 왔다. 이 전통은 우리 농정의 최소한의 기준이자 공공성의 근거였다.
쌀생산자협회는 이번 농안법으로의 이관은 쌀의 공공성과 양곡관리법 법안 자체의 취지를 훼손하는 심각한 개악이라는 점을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첫째, 농안법은 ‘모든 농산물’을 다루는 법률이며, 쌀의 위상과 예산의 독립성을 보장할 수 없다.
양곡은 양곡특별회계를 바탕으로 운영되며, 별도의 예산 구조를 가진다. 그런데 농안법은 수많은 농산물과의 형평성, 우선순위 논란에 갇히게 되며, 쌀에 대한 우선적 예산 배정을 원천적으로 제약할 수밖에 없다.
둘째, 쌀이 농안법에 포함되면 타 품목과의 경쟁 속에서 오히려 가격안정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가격 불안정이 심하고 수급조절이 시급한 품목이 여럿 있는 상황에서, 매해 수천억 원이 소요될 쌀의 가격안정 예산이 배정되지 못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셋째, 가격정책이 없는 양곡관리법은 무의미하다.
정부는 가격안정은 농안법에, 수급조절은 양곡법에 맡기겠다고 하지만, 그것은 마치 운전대를 버린 채 브레이크만 붙여놓은 차에 불과하다. 쌀값이 하락하거나 오를 때 정부가 목표로 삼는 가격이 없다면, 무슨 기준으로 수급조절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수급조절은 가격안정이 목표일 때 의미가 있다.
넷째, 최저임금법조차도 구체적 산식 없이 생계비·노동생산성 등을 고려하여 위원회가 결정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양곡관리법 2024년 11월 법안에는 오히려 공정가격(기준가격)을 ‘직전 5년간 평균가격(최고·최저 제외)을 기준으로 하되, 생산비와 수급상황을 고려’하라고 명시했었다. 민주당은 이것을 “애매하다”며 삭제했고, 이제 농안법에 떠넘기려 한다. 애매한 것이 아니라, 책임지기 싫은 것일 뿐이다.
민주당이 농민에게 약속했던 것은 양곡법의 강화였지, 책임의 분산이 아니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정부가 내놓은 농안법의 수정안 내용이다.
정부는 현재 농안법 개정안에서 기준가격 산정 기준을 생산비에서 ‘경영비’로 축소했고, 자가노동비를 제외한 채 계산하도록 설계했다. 이는 실질적인 생산비를 반영하지 않는 구조로, 처음부터 낮은 기준가격을 설정하기 위한 전형적인 숫자 장난이다.
게다가 정부와 민주당은 기준가격을 수입안정보험과 연동하겠다는 계획까지 내놓았다. 그러나 이 수입안정보험의 최대 보장수준인 85% 보장을 받기 위해서는 수급정책, 감축정책에 참여한 농가면 가능하도록 되어있다. 결국, 감축에 동의하지 않으면 기준가격 수준의 보장조차 받을 수 없는 구조가 되는 것이다.
이는 ‘감축과 연계된 농정’을 법제화하는 교묘한 방식이며, 농민의 자율적 영농권을 침해하는 독소조항이다. 감축을 강제하지 않겠다는 민주당의 말을 뒤엎고 계속해서 농민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제도를 지속적으로 제출하고 있는 것이다.
농민은 더 이상 후퇴를 감당할 수 없다.
식량을 지키는 법을 만들라. 생존을 보장하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
정권이 바뀌어도, 행정 책임자가 바뀌어도 책임이 사라지지 않는 법을 제정해야 한다.
식량위기는 미래가 아니라, 바로 지금이다.
2025년 7월 28일
(사) 전국쌀생산자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