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살다 생활비서란 기괴하고 구토나는 단어는 처음 들어봄. 모택동에게서 유래되었다는..
(김형민 피디 페북에서 퍼옴)
'생활비서'라는 말에 놀란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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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칭 진보당에서 전 의원이 비서에게 성폭력을 가하고, 그 후 이런저런 일들이 벌어졌다는 얘기를 보면서 치를 떨었던 이유는 사실 '생활비서'라는 단어 그 자체였다. 남녀관계는 하느님도 모르는 것이고, 정확하고 면밀한 진상규명과 쌍방 조사가 진행돼야 사실 판단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전에 피해를 주장하는 이에게 철저히 귀기울여야 하고, 그 피해 사실을 정리해야 하는 건 당연하다. (이게 피해자 중심주의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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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생활비서라니. 이 단어는 중국 모택동 시절에 즐겨 쓰이던 단어다. 모택동은 기본적으로 호색한이었다. 아무리 잘 봐줘도 영웅호색이었다. 남편을 배신하지 않기 위해 목숨을 버렸던, 아들 셋을 데리고 다니며 죽을 힘을 다했지만 끝내 국민당에 체포됐고 , 국민당의 회유에 굴복하지 않고 처형된 양개혜가 사투를 벌이는 와중에도 열아홉 어여쁜 하자진과 밀월을 즐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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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비서 하자진은 아이들을 줄줄이 낳으며 대장정을 함께 했지만 모택동의 여자 탐험은 혁명 수행 와중에도 그치지 않았다. 몸과 맘 다 쇠약해진 하자진은 러시아로 치료받으러 갔고 1939년 이혼한다. 그들의 혼인관계가 정리되기 전 모택동의 눈에 든 게 강청이었는데 중국 공산당 간부들 가운데에는 모택동이 혁혁한 혁명 투사 하자진과 헤어지고 강청과 맺어지는 걸 반대하는 이들이 많았다. 강청은 그 이전의 사생활도 복잡했고 국민당 스파이 혐의까지 의심받았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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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반대를 무릅쓰고 찾은 묘안(?)이 생활비서였다. 모택동을 내조하되 공식적인 아내라 불릴 수 없고, 모택동의 건강과 살림을 책임지는 것이 임무인. 그 후로도 모택동은 수도없이 '생활비서'를 두었다. 마지막 생황비서는 장옥봉이었고, 그녀는 모택동 사후 강청의 몰락에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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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비서란 결국 모택동의 애인이자 첩이자 섹스 파트너이자 동시에 일상을 책임지는 이였다. 그런데 이 단어를 21세기 한국의 자칭 진보정당 언저리에서 듣게 되매 욕설이 튀고 얼굴이 달아올랐던 것이다. . 이런 말을 쓰는 개차반들이 자칭 진보를 참칭하는 나라에 내가 살고 있다니. 오해가 있을 수는 있겠다. 그럼 밝혀 보라. 왜 그 얘기가 나왔는지. 그리고 '생활비서'가 아니었다면 그녀의 임무는 무엇이었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자칭 진보정당 진보당의 대처는 무엇이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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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자유.. 진보당원이나 지지자 있으면 설명 좀 해 주세요
공유 바랍니다. 진보당의 대답을 꼭 들어야겠습니다
이거 유튜브로 만들어야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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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옥봉... 닉슨과 모택동 사이의 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