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언니 오빠 전문대 지방대.. 8-90년대 학번이에요.
서울이구요..저때 100만명 수험생이었죠.
살면서 참 후회가 되는게 학벌이에요 두고두고..
저희 엄마도 고등학교를 나왔고 아빠도 그시절에 대학을 다니다 중퇴를 하셨죠
살기가 다 어려운 시기였지만 아빠가 가까운 친척회사에서 월급 사장도 지내고
빠듯한 월급이지만 집도 넓은 이층집에 살았어요,
그런데 저희집이 아빠가 너무너무 무서웠고(상상 초월)
눈길 하나에 사람들 눈물이 쑥빠지는..스타일..
외할머니 친할머니를 모시고 살았어요.
집안 분위기가 항상 어둡고 무서웠어요..
그리고 할머니들 계시니 집에 오면 누워서 티비보는게 일상..
많이들 편찮으시고..(그런집들도 잘하는 집은 잘했겠죠)
엄마가 아빠 눈치를 많이 보고 사셨어요..외할머니 모시는 것땜에..
어린 제 시야에도 우리집은 참 어둡고 뭔가 떳떳하질 못하다..
아빠 퇴근해 오는 소리 들리면 각자 후다닥 방으로 튀어들어가는집 아시나요?
그런 분위기였어요.친구들이 놀러오면 집이 넓다고 부러워했는데 저는 자신감이 없고 마음이 참 불안했던듯 해요
저는 나름 열심히 했는데도 어문계열(영문) 과를 고집하다보니 지방대를 갔던거 같아요.학교에서도 그땐 지방대를 권했구요. 과라 중요하다 고 무지 강조했고
엄마도 어디서 점을 보고오더니 지방대 원서를 사오더군요.
저랑 성적 비슷한 친구들은 어떻게든 서울 끄트머리라도 간다..해서 야간 여대라도 가곤 했어요.졸업장은 인서울이죠..
저희 남편네는...
아버님도 스카이 자식들도 다 스카이..
남편이 삼수를 했지만 어머니가 교육열이 너무 높고..큰아들이 설대 갔으니
좀 풀어줬나봐요.. 어려서 항상 시험성적으로 회초리 때리고 선물 주곤 했데요..교사월급으로 사립초 보내고..재수때 고대를 썼는데 어머니가 늦잠을 잤더래요.. 그리고 차막히고 해서 ㅜ오토바이를 불러 시험을 보러 갔답니다.(어머니가 이일이 두고두고 미안했데요.. 심지어 저희 결혼식장도 지각하심 )
그리고 어머니가 애들일이라면 발벗고 나서는 스타일..한마디로 치맛바람이지만 애들 머리가 좋은집..좋은 대학가야한다는 동기부여와 욕심..운동도 공부도 다 잘하는 알파남으로 키우셨더군요..
그시절 이야기지만 엄마가 좀 적극적이고 욕심 많은집이 공부를 잘했던거 같아요..
저희 엄마는 욕심도 없고..애들이 잘 안따라주니 그냥 놔버린듯..그래도 저희를 아끼고 무척 사랑하시죠..딸들도 열심히 일해 돈벌고 저는 좋아하는 영어로 평생 녹을 받긴했어요. 피아노 전공하려다 예고 시험 보고 안되서 인문계 갔는데...참 잘 안되더라구요.지방대 간게 평생 후회..저희 애들도 말할때 제 눈치 많이보고..그래요(학교 이름말하거나 할때 제가 받을까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