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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 춘향

... 조회수 : 1,038
작성일 : 2025-06-16 13:09:11

발레에 문외한인 제가 지난 주에 대한민국 발레축제 공식 초청작인 유니버설 발레단의 '발레 춘향'을 봤답니다

갑자기 나이 오십 넘어서 뜬금없이 발레 공연을 직관하게 된 계기는 지난 3월 경, 한 발레팬이 쓴 '발레 춘향'의 영업글을 봤기 때문이죠

'섹시한 변학도'가 도포자락 휘날리며 추는 발레라고 하기에 휙 낚여버렸다고나 할까요? ㅎㅎㅎ

춘향아, 몽룡이 잊고 변학도 따라가야할 것 같다고, 이정도 변학도면 변절해도 괜찮은 것 같다고 하는 댓글들이 태반이라 너무나 호기심이 생겼더랬죠

 

전시회나 여행 같이 다니는 대학동창 그룹에 슬쩍 같이 보지 않으련 하고 떠보니, 다들 반갑게 호응하고 금손 친구가 휘다닥 얼리버드로 할인받아서 예매해서 지난 토요일에 봤답니다

개인적으로 발레 공연 직관은 처음이고 방송에서 발레 공연을 봐도 멋있군, 잘하네 이상의 반응은 별로 보이지 않았지만, 제가 호기심을 가진 건, 서양 클래식의 시선으로 우리나라 클래식을 어떻게 해석했을지, 그 이종의 결합을 어떻게 풀어냈을지가 궁금해서였습니다

같이 보러간 친구 중 한명은 10년째 취미발레를 하고 있기 때문에 무식한 나를 좀 도와줄 수 있겠거니 하는 의지도 되고요 ㅎㅎㅎ

 

토요일 2시 공연이었는데, 좌석이 생각보다 시야가 좋아서 잘 보이는 좌석에서 2시간 남짓 되는 공연을 봤습니다

당황스럽게도 몽룡이가 러시아 출신 외국인 무용수...

살짝 적응되기 힘든 낯섦. 아, 강수진씨가 독일 발레단에서 주역으로 나섰을 때, 독일사람들도 이런 반응이었겠구나 뭐 그런 생각이 뇌리를 잠깐 스쳐지나가더군요.

그렇지만, 발레 팬들은 이 사람이 첫 외국인 몽룡이 아닌 걸 다 알았나 보더군요. 첫 대면인 나만 뻘쭘... 

 

오, 그치만 멋있고 재밌고 훌륭하고 그렇습니다

몽룡이가 한눈에 반해버린 춘향이 그네타는 장면의 연출은 너무나도 훌륭했습니다

실제 그네를 등장시키는 무대장치 대신 안무로 훌륭하게 풀어내서 오오, 하면서 봤습니다

 

더 재미있었던 건, 1막의 주인공이 춘향이, 몽룡이가 아니라 방자, 향단이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방자, 향단이의 춤이 매력적이었습니다. 한 친구가 1막은 춘향전이 아니라 방자전이더라 할 정도로...

방자 역을 맡은 무용수가 워낙 실력이 출중하기도 했지만, 그의 출중한 실력을 믿고 다양하고 화려한 안무를 짜준 덕분이기도 한 것 같았습니다. 안무가는 방자 안무를 짜면서 얼마나 신났을까 싶기도 했고, 깨발랄, 촐랑 방자를 춤으로 표현한다는 것 자체가 제게는 신선한 경험이었습니다

한 무대에서 춘향이, 몽룡이, 방자, 향단이가 같이 춤을 추고 있으면 내 시선을 도대체 어디 두어야할지 모를 정도로 꽉차고 흥분된 무대였습니다. 춘향이 몽룡이가 무대 가운데서 수줍게 썸을 타고 있는데 저쪽 구석에서 방자 향단이가 깨방정을 떨고 춤을 추고 있으니 말입니다 ㅎㅎㅎ

 

놀랍게도 음악은 차이코프스키의 덜 알려진 음악을 썼다는데, 차이코프스키가 이 발레를 위해서 작곡한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괴리감 느낄 수 없이 찰떡같이 들어맞았다는 건, 문외한인 나만의 생각이었을까요?

 

아, 드디어 기대하던 섹시 변학도... ㅎㅎㅎ

근데, 공연이 끝나고 알았지만, 이 공연은 각 배역이 트리플 캐스팅이었다는 거...

제가 본 공연의 변학도는 섹시 변학도라기 보다는 박력 변학도였다는...

박력이라기 보다 방탕하고 다소 재수없는 변학도여서 춘향이가 격렬하게 저항하는게 충분히 이해가 갔답니다. 만약 섹시 변학도였다면 나도 모르게 변학도 응원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암튼 제가 본 변학도는 박력맨이었다는... 

박력 변학도의 춤은 정말로 화려하고 힘이 넘칩니다. 발레리노의 독무가 이렇게도 힘찬 매력이 있구나 하는 걸 흠씬 보여주었습니다. 배역의 특성상 등장시간이 짧은데도 강한 인상을 줄 정도로 매력적이었습니다

 

전 연극, 뮤지컬, 연주회, 콘서트 같이 라이브 공연 별로 안 좋아합니다. 안 좋아한다기 보다 딱히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는 게 맞을 겁니다.

그런데 '발레 춘향'을 통해서 라이브 공연의 맛을 제대로 처음 알았다고나 할까요...

이번에 본 '발레 춘향'도 너무너무 좋았지만, 앞으로도 매번 달리 구성되고 조금씩 바뀌는 안무들의 변화를 계속 지켜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 캐스팅에 따라 달라지는 느낌도 느껴보고 싶더군요.

첫맛은 창작 발레였으니 다른 클래식 발레는 또 어떤 느낌일까도 궁금해졌고요.

저는 웬만한 걸 봐도 박수는 그냥 형식적으로 치는 사람인데, 이번에는 끝날 때 박수를 얼마나 많이 쳤는지 양팔이 얼얼할 정도였습니다

저만 그런게 아니라 같이 본 친구들도 매우 흡족했던 모양입니다

바로 올 겨울엔 호두까기 인형도 한번 같이 보자꾸나 약속을 했으니까요 ㅎㅎㅎ

 

지난 주말, 4회의 서울 공연은 다 끝났습니다만, 아직 지방공연 일정은 좀 남은 것 같습니다

혹시나 발레 좋아하시는 분, 저처럼 처음이지만 호기심 생기는 분들이 계시다면, 꼭 봐 보시라 강력추천합니다

저처럼 춤추는 발레리나, 발레리노가 누군지 실력이 어떤지 아무런 정보없이 보아도 충분히 즐길 수 있을만큼 좋습니다.

 

잘 만들어진 창작 발레의 맛, 서양과 우리 고전이 이렇게 잘 어울릴 수 있다는 쾌감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공연입니다.

티켓 값이 살짝 부담스러울 수 있을 가격이긴 하지만, 저는 아깝지는 않았습니다. 충분히 훌륭했습니다.

IP : 58.145.xxx.130
10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흥미
    '25.6.16 1:12 PM (211.206.xxx.191)

    있게 읽어 내려 오다가
    서울은 공연이 막을 내렸다니 시무룩...
    원글님의 발레 관람기 같이 본 듯 즐겁습니다.

  • 2. ㅇㅇ
    '25.6.16 1:16 PM (116.127.xxx.130)

    국산 창작발레 점점 많아지면 좋겠어요! 갓쓰고 도포자락 휘날리며 발레라니 멋진거
    좋은글 고맙습니다요. 홍보용 클립이라도 찾아봐야지

  • 3. 인생무념
    '25.6.16 1:19 PM (115.142.xxx.2)

    재밌게 읽었어요. 요즘 발레는 물론 뮤지컬도 창작극 너무 좋더라구요. 발레 춘향 보고 싶네요

  • 4. 섹시 변학도
    '25.6.16 1:23 PM (119.203.xxx.70)

    유튜브에서 섹시 변학도 춤 보고 와...... 넘 멋있더라는~......

    제복의 힘이라고 다들 댓글들이 ㅋㅋㅋㅋㅋ

    발레와 우리나라 도포와 옷들이 안어울릴 줄 알았는데 찰떡 같이 잘 어울려 오히려 더 놀랬어요.

  • 5. 감사해요
    '25.6.16 1:31 PM (122.34.xxx.61)

    감상글이 너무 좋아요. 서울은 지나갔다지만 좋은 작품이면 언젠가 또 하겠죠?
    기억해뒀다가 보러가겠습니다.

  • 6.
    '25.6.16 1:38 PM (217.149.xxx.219)

    저 이거 꼭 보고 싶었는데 놓쳤네요 ㅠㅠ
    서울에서 다시 앵콜공연해줬으면...
    예술감독이 그 유명한 한국의 미 잘 살리는...
    아..이 기억력 ㅠㅠ 이름이 기억 안나요 ㅠㅠ

  • 7. ㅇㅇ
    '25.6.16 1:41 PM (61.74.xxx.243)

    섹시 변학도 유튜브로 영상이라도 보고 싶어서 검색해도
    안나오는데 링크 걸어주실수 없을까요~~

  • 8. 섹시 변학도
    '25.6.16 1:56 PM (119.203.xxx.70)

    ㅠㅠㅠㅠ

    저도 찾아봤는데 못 찾겠어요.

    우연히 쇼츠로 봤어요.

    관복이 검정과 빨강이라 확 눈에 띄고 남성 무용수

    춤이 엄청 멋있게 나와서 섹시 변학도라고

    댓글이 제복의 힘이 이렇게 무섭다.

    이정도면 변학도한테

    넘어가겠다는 댓글이 달려서 기억나요....

  • 9. ...
    '25.6.16 3:34 PM (221.149.xxx.56)

    저는 발레팬인데도 춘향과 심청을 아직 안 봤어요
    발레 처음 보시는 원글님께서 그렇게 감동이셨다니
    발레 감성을 갖고 계셨나 봅니다
    지젤과 백조의 호수 꼭 보시고 발레덕후의 길을 걸으시길 바랍니다!

  • 10. 나봉이맘
    '25.6.16 3:35 PM (221.168.xxx.137)

    이번 주 금, 토 대구 수성아트피아에서 공연이 있길래 원글님 글 읽고 예매했어요.
    섹시한 변학도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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