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대학 갈 때만 해도 지거국이 상당히 건재했어요.
사촌 언니가 부산에 살았고 전교권이었는데 부산 사범대를 갔어요.
당시에 커트라인도 높았어요. (80년대 후반 학번)
그런데 언제부턴가 학교도 직장도 서울 선호가 아주 심해졌어요.
의대 선호는 IMF 가 큰 계기가 된 걸로 아는데요
인서울은 언제부터 왜 그렇게 된 건가요?
저 대학 갈 때만 해도 지거국이 상당히 건재했어요.
사촌 언니가 부산에 살았고 전교권이었는데 부산 사범대를 갔어요.
당시에 커트라인도 높았어요. (80년대 후반 학번)
그런데 언제부턴가 학교도 직장도 서울 선호가 아주 심해졌어요.
의대 선호는 IMF 가 큰 계기가 된 걸로 아는데요
인서울은 언제부터 왜 그렇게 된 건가요?
저 02학번
지거국 얘기해도 몰르고 관심도 없었음
80년대 국립대사대는 연고대 급이었죠
졸업하면 바로 중등교사 자동 임용
제 아들이 2001년생이라 육아땜에 육아카페나 교육카페 이런데에 많이 다녔어요
근데 그때도 인서울에 대학 학부모들 갈망이 대단해서 어리두.ㅇ절했던 기억 있어요
아마 2000년도부터 슬슬 인서울 선호가 뚜렷해지지 않았을까 싶네요
몇몇 지거국 말고는 인서울이었죠
인서울 중하위권 대학 나왔는데 그 때도 우리과에 지방애들 많았어요. 여자애들요
부잣집 애들 아니고 장학금 아니면 학교 다니기 힘든 친구들이 우리과만 해도 여럿 있었어요
인서울 하위권을 가도 서울에 있는 대학 가야한다는 분위기 그 때도 있었지요
IMF로 지방의 은행들과 중소기업들 많이 망해서
지방 경제가 몰락한 게 원인 아닐까요?
지방에 일자리가 앖어지니 서울로 올라가야 하고
그러려면 학교도 서울로 가야한다는 분위기 아니었을지??
저는 서울에서 나고 자라서 지방 분위기를 잘 모르는데
지방 도시들도 서울과 차이가 많은 줄 몰랐어요.
아주 시골이 아닌 한 매스컴과 통신이 발달해서
서울과 의식이나 문화가 같은 줄 알았거든요.
근데 지방 친구들 말로는 많이 다르대서요.
저 02학번
대구인데 여고 나와서인지 스카이 아니면 경북대 갔어요
그때 영문과 문과중에 탑이었는데 390점대였어요..
근데 그때도 아버지직장에서 대학학비 나오는 애들은 서울로 갔네요 국민대 중앙대 건국대 등
모두가 문이과 전부가 국숭세단 밑에에요.
9말0초까지는 지거국 우선으로 지원했어요 서울 사립대를 왜 가나 부산대를 가야지 하는 분위기였습니다 당시 부산 학군지였는데 다른 지역 대학 가는 학생이 드물었다고 기억되는 .. ^^
97학번 서울하위대나왔는데
부산대 경북대 충북대 등등 다 갈수있었어요.
근데 그냥 지거국갈껄그랬어요. 지거국 올려치기 아직도 심한거같아서요
지방이었는데 그때도 공부 잘하면 인서울 갔어요. 제 주변은 인서울 성적 되는데 지방 국립대 가는 사람은 없었음요
서울서 나고 자랐고
서울의 전문대를 갈지언정
지방 4년제는 생각도 안하고 말도 안함
그게 국립대여도요
분위기가 그랬어요
서울사는데 지방대학 갈일은 그때 당시도 없었지요
그리고 말은 제주로 사람은 서울로 라는 말은 예전에도 있었어요
공부잘하고 돈이 있거나
교육열 높은 분들은 서울 보냈고
고만고만한 살림에 공부 곧잘하면 지방 국립대만 나와도 기반잡고 잘 사니
국립대를 보냈고요
87학번인데 친구들 점수가 ㅣ점 차이나던 세명이
연대 영문한명
이대 국문 수석인가 장학생인가 한명
부산사대 국교 이렇게 갔어요
누구나 다 인서울 하려고 한건 제 생각에도
Imf전후 취업상황이 변하면서부터인듯요
지금도 인서울 가능하지만 남는 겨우가 제법 됩니다
다만 그래서 지금도 지방 국립대는 서울과 달리
같은과 합격자들 주에서도 학력편자가 제법 되지요 ㅠ
서울 사는 사람들은 당연히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죠~
지방 내려가는 경우는 ... 그때는 의대여도 지방대는 안갔잖아요??
저때부터도 친구들이랑 서울 살면 좋겠다 어쨌든 성적맞춰 서울에 있는 대학가면되니까~ 했던 기억이 ㅎㅎㅎ 근데 제가 이십대를 서울에서 지내다가 고향 내려와서
직장다니고 결혼해서 여기서 애 키우면서 살다보니 .. 고향 계속 살 사람은
지거국이 최고예요!! 직장에서도 아직도 경북대 최고라고 하네요 하하
그리고 지금도 지거국 가기도 어렵답니다~ 요즘 인서울 하는 애들은 진짜진짜... 잘하는거,,
수능 첫세대인데 처음으로 가나다 군이라는 것이 생겨서 동시에 여러곳 지원이 가능해지고(물로 가군에 대부분의 학교들 포진)
여러곳 합격한 학생들이 저울질 하며 추가 합격자들이 생겼죠
저희 때부터 지거국 티오가 많이 생겼어요
저 역시도 그냥 지거국 사범대(당시 지방 문과탑)나 가야할 가정 형편에도 부득불 서울로 갔네요
나중엔 잘 한 결정이었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