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나이들면서 사주보고, 점 보러 다니는거
싫어하게 된 케이스인데, 20대때는 친구들이랑 휩쓸려
좀 다녔어요..
대학동기 중에 그런데 정통하게 좋아하는 친구가 있어서 그랬기도 했고(지금은 그 친구 안 만나요..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건 절대 아니고요.)
정말 항시 점집이든 철학관이든 가면, 첫 마디가
"왜 이렇게 부모복이 없냐? 눈물이 난다.. 혼자 나가서
초년에 고생을 하더라도 부모에게서 떨어져야 하는
팔자인데.. 쯧!"
10에 9이 그랬었어요.
그때, 저는 좋은 회사도 다녔고, 예뻤고? , 중요한건
다른 가정이랑 우리집이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저의 착오였습니다.!
현대적으로 풀이를 해보면.
우리 부모가 지능도 안되고, 양쪽이 나르시시스트,
플라잉몽키 이모들도 있었고, 소시오패스 여동생도
있었고.. 내가 희생양으로 가스라이팅의 존재였죠.
나는 다른 집도 우리집 같은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한참뒤 서른이 넘어 알아채고
도망가려는 시점에 부친이 편찮으셔서 목숨이 왔다갔다
했는데, 이 가족들이 단체로 그겋 바라보고 손뼉치고
있더라고요. 보험이 있으니까!
도저히 인간적으로 안 되겠어서, 부친을
보험금으로 치료를 받게 제가 옆에서 좀 했었어요. 부친이 제 손길이 고마웠겠지만 은혜를 원수로 갚는 병이 있어서 세상에 험한욕을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저에게 하고 가셨어요.
다른건 차치하고
제 인생이 많이 꼬였습니다. 저 희생양 하나 시집간다고 나설까봐 가족 누구라도 주저 앉히려 애를 썼고,
저는 약간의 우울증 증세가 점점 심해지면서 요렇게
되었습니다.
같은시기를 살던 제 친구들은 시집가서 못 나도 세상에서
자기가 제일 잘 난거 마냥 잘 살아요..
저도 미친척 하고 그렇게 살면 되기야 하겠지만, 학대로정서와 심리를 많이 다쳐서 그런지 너무 힘이 드네요.
엄마 친구들도
애들이 공부못해 지질이 속썩이고, 남편이 부도내서
파출부 다녔던 아주머니들이 있었는데, 마음 반듯하게
이겨냈던 세월이 있으니..
애들이 밝게 자라 번듯하게 시집장가 다 갔고,
부촌에 아파트 청약되어 좋아라 하고
아주머니들도 안정을 찾아 손주들 틈에서 행복하시고..
반대로 우리 엄마와 이모들과 공부잘해 수재소리 듣던
내 여동생은 모두 힘들어요. 동생은 그 나름 다운그레이드 된 삶으로 힘겹고..
엄마와 이모들은 객관적으로 자랑할거 하나 없이
복쪼가리 없이 나이들어 가는 처지이고..
나 포함 자식들이 대충 이렇고..
결말이 이러네요.
괜히 사주타령해서 그렇긴 한데..
나르시시스트, 지능장애 이것도 병이겠지만 지극히
일상적인 생활이 가능하잖아요?
마음보를 잘 쓰고 살아야 하지 않나 라는 생각이 먼저
들고..
사주에 나르시시스트 라고는 하지 않지만
이것도 일종의 타고남의 병이니까, 나보고 멀리 도망가라고 그러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
여튼, 그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