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1979년 어느 날...

.. 조회수 : 1,666
작성일 : 2025-05-20 15:27:34

중학교에 입학하고 긴장된 마음으로 첫 중간고사를 맞이했었다.

뭔가 다들 비장한 마음으로 공부를 하는것 같아 더더욱 뭔가를 보여주고싶은 마음만 강했었던 1979년의 봄날..

한창 중간고사 시험을 보고 있었고 이틀뒤면 시험이 끝나는 날이었는데 바로 밑의 여동생이 어디서 만화책을 2권 가지고 왔다.

같은 방을 쓰고 있기에 뭔가 힐끗힐끗 보게 되었는데 제목이 "캔디캔디"

아이구 유치하긴... 하면서 무시하다가 잠시 쉬는 시간에 1권을 보게 되었는데.. 헐... 이건 신세계였다.

우리나라에선 볼수 없던 섬세한 그림체에 요즘도 드라마에 써먹으면 먹힐만한 온갖 신데렐라 성공스토리가 들어있는 그 만화책...

너무 재미있어서 나도모르게 울부짖고 있었다. "2권 내놔!!!"

그소리를 듣고 엄마가 달려오셨다.  " 이 기집애가 정신이 있어 없어? 내일 시험인 주제에 무슨 만화책타령이야! 정신차려!!" 하면서 냉큼 두권을 다 압수해 가셨다.

 난 씩씩거리다가 빨리 내일모레 시험이 끝나고 봐야겠다 결심을 하고 다시 시험공부를 했었다.

이틀 후 시험이 끝나서 집으로 막 뛰어들어오려는데 엄마가 날 보더니 반갑게 나오셨다.

" 야, 가방만 놔두고 심부름부터해라. 캔디캔디 9권 나온데 있나 보고 나왔으면 바로 사와!" 하면서 1000원을 주셨다.(내 기억에 그 만화책 1권에 900원이었던것 같다.) 

그날 여기저기 책방에 다녀봤지만 9권은 없었다. 

엄마는 한탄을 하며 " 아니 우리동네는 너무 후졌어. 왜 아직도 안나온거야" 말씀하셨고 나는 빨리 2권부터 내놓으라고 난동을 부렸다.

엄마는 조용히 옷장 다락 부엌찬장 여기저기서 한권씩 꺼내서 던져주셨다.

그때 시험 어떻게 보았는지는 기억도 안나는데 방바닥에 만화책 흩뿌려놓고 과자 한움쿰씩 쥐어 먹으면서 한페이지 한페이지 아껴서 보던 그 캔디캔디의 내용은 다 기억이 난다.

공부잘한다고 잘난척 하던 울 언니와 자기가 1권을 사왔으니 자기지분이 가장 크다며 주장하던 내동생과 돈은 본인이 댔다며 본인이 제일 먼저 9권을 봐야한다던 엄마까지 삼파전으로 싸우던 그날의 광경이 지금 내 마음속에선 지워지지 않는 그리움의 풍경으로 남아있다.

늘 소녀같던 엄마도 돌아가시고 용돈모아 1권을 사왔었던 내동생도 이세상에 없는데.. 그 시절의 풍경은 왜이리도 생생할까.. 

그날 9권은 누가 제일 먼저 봤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IP : 203.142.xxx.241
8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
    '25.5.20 3:31 PM (114.200.xxx.129)

    기억력이 장난이 아니네요. 1979년도에 만화책이 얼마였는지 까지 기억을 할정도의 기억력이 가졌다니.ㅎㅎ 1979년은 저희 부모님도 서로의 존재도 모르고 결혼하기전인데. 한편의 소설 읽는 느낌이예요

  • 2. ..
    '25.5.20 3:31 PM (223.38.xxx.154)

    재밌는 풍경이네요
    ㅋㅋ 그림작가 말고 글쓴이 얘기하면 고딩땐가 엄마,아빠 잃어 트라우마로 고아 이야기 썼고
    어릴 때부터 서양 문화에 대한 동경으로
    키다리 아저씨 컨셉 넣었은데 너무 카피같을까봐
    오만과 편견의 다이슨인가 그 남자 컨셉도 가져왔다고 들었어요 어릴 땐 참 재밌게 봤는데

  • 3. ..
    '25.5.20 3:44 PM (121.190.xxx.7)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울어
    캔디 재밌었죠

  • 4. ...
    '25.5.20 3:52 PM (61.83.xxx.69)

    슬퍼요 ㅜ
    엄마 넘 귀여우셨네요.
    슬프지만 다정한 추억이네요.

  • 5. ..
    '25.5.20 4:08 PM (118.221.xxx.105)

    만화책으로 각자의 지분을 주장하며 삼파전으로 싸우는 모습이 그려지면서 귀엽고 정겹고 애틋한 그리움과 따스함이 느껴지네요. 벌써 두분이 이 세상분이 아니시군요.. 이렇게 세월은 흐르고 세상은 변해가나봐요. ㅠ

  • 6. 아~~
    '25.5.20 4:59 PM (218.38.xxx.148)

    슬프네요.. 아련하고.ㅠㅠㅠ

  • 7.
    '25.5.20 6:40 PM (114.201.xxx.60)

    캔디캔디 얼마전 오래된 서점 갔다가 샀어요.
    전 그맘때 테이프로 듣던 캔디가 아직도 기억에 있어요. 카셋트테이프로 여러가지 동화들었어요. 74년생인데 테이프로 듣던..캔디캔디도 너무 재미있었어요

  • 8. 슬프고
    '25.5.21 4:53 AM (37.159.xxx.134)

    애잔하고 그 시절이 그립네요
    엄마와 동생은 세상에 안 계셔도 언니는 계셨으면 좋겠어요
    그때를 함께 추억할 수 있는 분이잖아요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1716059 에어컨 필터 다시 못끼우고 1 맥락없음 2025/05/20 609
1716058 추성훈 사기당했나요? 29 의아하다 2025/05/20 25,233
1716057 아침에 1시간 집근처 가서 영어 사내교육하는거... 스케줄 현실.. 12 dd 2025/05/20 1,373
1716056 김문수 "군가산제 도입" "결혼하.. 11 ... 2025/05/20 1,827
1716055 조리원은 아기 안낳은사람은 못가나요? 17 피곤쓰 2025/05/20 4,222
1716054 선거날 아침 일찍 투표하고 맛난거 먹어야죠 3 ㄴㄱ 2025/05/20 443
1716053 콤보세탁기 못고르겠네요 10 콤보 2025/05/20 890
1716052 설난영인가 그사람은 배우자토론을 13 2025/05/20 2,664
1716051 홍감탱은 당대표로 딜했겠죠?? 3 .,.,.... 2025/05/20 1,268
1716050 대통령선거인 명단 등재번호는 공보물에 포함 안되는건가요. 4 .. 2025/05/20 511
1716049 한번 나빠진 잇몸은 되돌릴 수 없나요? 12 2025/05/20 3,351
1716048 지금 남산타워가면 야경예쁠까요? 3 관광객 2025/05/20 946
1716047 나보고 착하다고 안하면 나쁜 맘 먹을꺼에요. 31 나으ㅏ 2025/05/20 3,314
1716046 MBC 대선개표방송 패널은 유시민, 정규재 10 ㄴㄱ 2025/05/20 2,115
1716045 요즘 선생님들 인물좋네요 16 2025/05/20 3,447
1716044 7시 정준희의 해시티비 역사다방 ㅡ 요리의 반은 재료 , 토론의.. 1 같이봅시다 .. 2025/05/20 397
1716043 이수지 ㅋㅋㅋㅋㅋㅋ 샤넬 에르메스 반클리프 헬렌 27 ㅋㅋㅋ 2025/05/20 17,746
1716042 딸애가 임신 소양증이라는데요 7 ㅇㅇ 2025/05/20 3,949
1716041 지지자로 정치인 보는 거 어이없네요 10 0000 2025/05/20 904
1716040 이재명 상위호환 김문수 24 .... 2025/05/20 1,104
1716039 키친토크에 글 쓰고싶은데 닉네임 3 키친토크 2025/05/20 492
1716038 습기 무섭네요 8 습기 2025/05/20 4,263
1716037 시골에서 어머니가 건물 두칸 월세 60씩 받고 계세요..... 23 2025/05/20 5,934
1716036 김문수후보 부인 27 Dhk 2025/05/20 3,927
1716035 브랜드 미용실 4 ㅇㅇ 2025/05/20 8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