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크 수술을 하신 시어머님이 집에 와 계심
시어머님은 남에게 피해주는 걸 정말 싫어하시는데 어쩌지 못해
자식집에 몸을 의탁할 수 밖에 없어 괴로워하고 계시는 상황
어쨌든 며느리인 나에게 너무 미안해하셔서
매일 아침에 일어나 오늘은 집에 가겠다 하시지만
도저히 집에 가실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계속 우리집에 계심
나는 아침밥도 하고 점심밥도 하고 저녁밥도 하고 일도 하고
그렇는데 일을 마치면 친정이 가까워 친정에 가서 하소연을 좀 하고
집으로 돌아옴
전쟁중에도 꽃은 피고 전쟁중에도 사랑을 하고 아이가 태어난다더니
(적절한 비유는 아님)
이처럼 슬픈 상황속에서도 어머님에게는 소소한 행복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8시30분에 하는 <일일드라마>
디스크수술을 하셨으니 거의 누워 계시는데 8시30분이 가까워오면
방에서 아이를 부르심
<8시반되면 할머니를 불러다오> 8시반은 드라마가 시작하는 시간
원래는 어머님 혼자 보셨는데 시간이 흐르며 아이도 관심을 갖기 시작해
같이 앉아서 보게 되었음 할머니와 초등은 같이 일일드라마를 봄
악인과 선인의 강렬한 대립 구조의 드라마인데
악인이 너무 악해서 믿어지지 않을 정도이고
선인은 멍청할 정도로 선함
거기에 선인은 원래는 재벌가자식인데 악인이
선인의 자리를 빼앗아 재벌자식 행세를 하고 있음
(식상하다 식상해)
그런데 오늘은 드디어 선인이 재벌의 자식임이 밝혀지는 날
자기 자식인 줄도 모르고 악인에게 속아 자기 자식을 미워했던
재벌 엄마가 울고불고 난리가 났음
거짓말이 탄로난 악녀가 쫓겨나감
이 모든게 밝혀진 시각이 9시. 거실은 흥분의 도가니.
허리보호대를 하신 시어머님은 벌떡 일어나 기립박수라도 칠 기세.
할머니와 손자가 탄식을 내뱉으며 드라마를 보는 동안
며느리는 방에 누워 스마트폰을 하고 있었는데
혼자 꿀같은 30분을 보내고 드라마가 끝나는 시간에 맞춰
거실로 나가니
시어머님은 나를 보고 살짝 화를 내심
이렇게 재미있는 것을 안 보고 방에서 뭐하느냐. 는 것임
오늘 드디어 밝혀졌나봐요
그렇다. 그 악독한 것이. 아이고. 고소해라
어머니. 찾았으니 이제 드라마 끝나겠네요. 찾으면 바로 끝나던데요. 항상.
그래 말이다. 찾아서 행복하게 사는 것 좀 보고 싶은데. 보여주면 좋으련만.
너무하네요. 정말. 왜 찾으면 맨날 바로 드라마가 끝나노. 진짜.
아니나 다를까. 재벌이 자식을 찾기가 무섭게 드라마는 끝날 예정인듯
새 드라마 예고를 하고 있음
어머니. 그런데 제가 몇년째 보는데 이 8시반 드라마. 자식이 안 바뀐 적이
한번도 없던데요.
그러게 말이다.
그리고 자식 찾으면 바로 끝나던데요.
그래. 그 부분이 너무 아쉽다. 찾아서 행복하게 사는 것을 좀 오래 보여주면
좋겠다.
그나저나. 우리나라 재벌은 자식을 너무 많이 잃어버리네요.
자기 자식을 제대로 키우는 재벌이 없네요.
그래. 아이고 허리가 아파서 나는 들어가 봐야겠다.
이렇게 슬프고 아픈 팔십세 노인을 그토록 행복하고 긴장되고 즐겁게 만들어주는
8시30분 일일드라마.
찾아서 행복하게 사는 것도 2주 정도 보여주면 좋겠음
저렇게 바라시는데
왜 찾기만 하면 그렇게 빨리 끝내버리는지 궁금함
방송 관계자분 계시면 잃어버린 딸 찾으면 2주정도 행복하게
사는 모습도 보여주기를 부탁드려 봄
며느리가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