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는 잘 몰라요. 수험잡지에 이숙연이 나온 적이 있어요.
이숙연의 집안에 네 딸이 있었는데 서울대, 이대, 연대, 포항공대를 갔다는 거였어요.
그 때 이숙연이 포항공대 전체수석으로 입학했을 거예요. 그런데 도중에 그만 두고
고대법대 편입하고 사시 봐서 판사가 되었네요.
잡지에서 그 엄마가 얼마나 열성이었는지 딸들이 수험생일 때 도시락을 두 개씩 싸가지고
매일 학교에 배달하고 그랬다고. 아빠는 사업을 하던가 했고.
딸들이 모두 명문대를 갔다고 기사에 나왔는데 그때 받은 느낌이 상당히 유복한 집이구나. 그런 생각.
이후 이숙연이 등장한 판결을 보면 매우 보수적인 판결들. 약자를 위한 판결은 거의 없어서
앞으로 우리 나라 법관들이 이런 식으로 되면 약자들이 도움을 받을까 우려했어요.
이후 대법관 될 때보니까 주식에 관련하여 남편 쪽에서 문제가 많았더라고요.
아니나 다를까 버스비 2700원 유죄 때린 헌법재판관 될 뻔 했던 함상훈,
김학의 무죄 준 천대엽, 라면 3000원 짜리 훔쳤다고 구속 시킨 판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그런 그들이 대기업 회장들의 주가조작이나 경제사범에 대해서는 집행유예를 때리고
곽상도 아들 퇴직금 50억에 대해서는 무죄를 내렸죠. 법기술을 부리기 시작했어요.
문재인이 대통령 되기 전에 그가 하던 말을 기억해요. 어떤 쟁점적인 사안이 있었는데
'법의 판단을 받아야 한다'고 했어요. 그때 나는 '저 사람이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을 믿는가?'
의아했습니다. 문재인의 인식은 판검사들이 법을 공정하게 운영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 것.
결국 그러한 나이브함이 윤석열을 탄생시켰고 검찰의 비대화, 사법의 정치화를 확산 시키는데 일조했죠.
윤석열은 법기술로 교묘하게 빠져나가는 재주가 있었고 사법부 또한 윤석열 편 들었죠.
공부 잘하고 그것으로 출세해 온 기득권들의 자녀들이 선의를 가졌다고, 공정함을 가지고 있다고
기대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그간 크게 착각해 온 것 중 하나였어요. 사실 공부를 잘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선하고 믿을만하고 공동체에 기여하고 헌신할 것이다... 라고 믿었다면 우리 사회가
그간 지닌 사농공상, 유교적인 배경하여 선비들을 우대해 온 그런 영향일까 생각해요. 그러나
실제로 조선 시대 선비들처럼 당파싸움 많이 하고 성적으로 타락한 집단은 없었다고 해요.
지금 우리는 그간 공부 잘하면 다 된다고 가르쳤던 이들이 우리 사회에게 어떻게 하는지 톡톡히 보고 있어요. 이기주의, 보신주의, 엘리트 주의...공동체를 위한 헌신은 없는 우리의 교육의 결과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