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남편은 일단 현재만 사는 사람이에요.
밤에 추울 게 뻔해도 지금 더우면 외출하면서 반팔입고 겉옷은 안챙겨요. 결국 밤엔 추워하죠.
고등학교때 수능보기 싫어서 수시로 대충 지방대를 갔더라고요. 대기업취직해서 주변 사람들 학벌 보더니 뒤늦게 괜찮은 대학원 갔어요.
취직해서 적지 않은 연봉을 벌어서 노는데 다썼어요. 그래서 만났을 때 돈 한푼도 없었죠.
말도 그냥 현재 본인 기분만 가지고 얘기하다보니 날것의 얘기만 해요. 좋게 말하면 투명한거고, 안좋게 말하면 이미지 관리는 안되는거 같아요.
뭔가 미래를 위해서 야무지게 준비한다거나 이런게 전혀 안되니까, 손해볼 때도 많고 놓치는 기회도 많았을거에요.
대신 계산기 돌려서 자기 이익을 챙기는 스타일이 아니다보니 주변에서 이 사람을 볼 때 밉지가 않고 자꾸 도와주고 싶어져요. 이 사람 하는 말은 그냥 진실이라 생각하고 들어요.
저도 이런 사람들 중의 하나라서 남편이랑 결혼해서 많이 도와주고 챙겨주고 살고 있어요.
대신 이 사람은 현재만 사는 사람이라 돈이 없으면 또 없는대로 살아서 용돈 30이면 그냥 그걸로 살고,
대학원에서 숙제 내주면 안빼먹고 하고,
회사 다닐 땐 지각없이 딴 일을 도모하지 않고(투잡이라던가 재테크라던가) 그냥 회사일만 해요. 그래서 회사에서 승진이 빠른 편이에요. 뭐 부지런하고 잘한다기 보다, 성실하고 꽤를 안 부리는 사람으로 윗사람들도 인식하는거 같아요.
저는 머리가 빠릿빠릿 돌아가고 계산도 1초면 끝나는 사람이에요. 계획도 잘 세우고요. 여행가면 어떨지 상상되시죠?
그러다보니 이 사람 보면 무진장 답답하고, 어깨가 무거워서 잔소리도 많이하고 싸우기도 많이 싸웠었는데
요즘에는 이 사람에 맞는 대응법을 찾은건지 잘 지내고 있어요.
그냥 지금 현재를 늘 발등에 불 떨어진 상황으로 만들어주면 이 사람은 그 일은 하거든요. 다만 계획이나 준비가 안되는 사람인거지. 계획은 내 맘대로 다세우고, 남편은 그냥 제가 주는 미션대로 살고 있어요.
그래서 저는 멀리있는 눈을 치우고, 남편은 가까이 있는 눈을 치우고 그렇게 잘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서 스스로 대견하여 글을 씁니다 :)
좋은 저녁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