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코 나온 물기없는 말들이 은명이를 허기져 자라게 했다."
울 언니는 늘 전교1등이었고 나는 그냥 저냥 어느정도 성적이었다.
하지만 뭐 아무 생각없이 자라다가도 가끔 명치에 박히는 말과 기억들이 있다.
초등학교 2학년때이니 지금부터 50년전인데도 뚜렷하게 기억이 난다.
엄마랑 언니랑 나랑 세명이서 엄마 친구네 집에 갔었던 적이 있다. 사직공원에서 경복궁쪽으로 가는 길에 있던 조그마한 문방구였는데 엄마와 친구는 반갑게 인사를 나눴고 인사치레 말을 했던것 같다.
" 아유 너희 딸들이구나.. 애들이 그렇게 공부를 잘한다며? 좋겠다. 얘"
친구의 말에 그냥 아무말도 안하셨으면 좋았을걸... ㅎㅎ 엄마는 손사레를 치며 아주 겸손하게 대답하셨다.
"어머, 아니야, 큰애만 좀 잘해. 오호호"
나는 갑자기 얼굴이 벌게지면서 표정을 어떻게 관리해야할지 몰랐다.
중간의 기억은 휘발되고 다시 버스를 타러 사직공원쪽으로 오던길에 분식집 이름이 개미분식이었던 것까지 기억이 난다. 분식집 이름 이상하네... 하면서 혼자 중얼거렸던.. 그 기억.
인생에 수많은 기억의 파편들이 있지만 별것 아니었던 엄마의 말 한마디는 내 마음에 콕 박혀버렸다.
세월이 지나서 그때의 일을 이야기했을때 언니도 엄마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은명이도 아마 그런식으로 차곡차곡 설움을 쌓아갔던건 아닐까 싶다.
그렇게 못하는 공부도 아니었는데... 난 한번도 내가 공부 잘한다는 생각을 못하고 자랐다. 대학교에 가서야 다들 나아게 좋은 대학교 갔네 라고 말하는거 듣고 어안이 벙벙 했었던 기억이 있다.
가끔 아들을 대할때 생각없이 툭툭 뱉는 나의 말이 이아이에게 상처를 주었을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아무리 사랑한다해도 나도모르게 상처를 줄수 있겠구나 엄마도 그런 의도는 절대 아니었을테니 말한마디도 참 조심스럽게 해야겠다 생각된다.
그때일이 엄청난 상처는 아니었고 뭐 특별히 타격 받은것도 아닌듯한데도 왜이리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있는지 참 신기하다. 그래도.. 돌아가신 엄마 보고싶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