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초 영수회담이 열렸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영수회담에 임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애초부터 이 회담에 쥐뿔도 기대하는 것이 없었다.
예상대로 영수회담은 윤 대통령의 불통 의지만 확인한 채 아무 성과 없이 끝났다. 애초 기대한 것이 없었기에 나는 실망조차 하지 않았다. 화를 낼 일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틀 뒤 프레시안에 실린 기사를 보고 제대로 빡쳤다. 그 기사 제목이 이랬다.
‘투머치토커’ 尹? “종횡무진 화법, 막 여러 가지 곁가지까지 섞어 얘기해”
기사 내용인즉슨 영수회담에서 윤 대통령이 질문 하나에 답변을 너무 길게 주절주절 이야기하는 바람에 이재명 대표가 뭔가 의미 있는 논의를 진척시키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와 진짜, 취임 이후 처음 야당 대표를 만나서, 그것도 여당이 총선에서 참패한 상황에서, 좀 남의 말을 경청하면 어디가 덧나냐? 그 중요한 자리에서 “내가 1994년 LA에 있을 때 말이야···” 박찬호 기술을 꼭 사용해야 했냐고?
그냥 이상하게 보이고 싶은 거라면 머리에 꽃이라도 한 송이 꽂아라. 그게 차라리 보는 사람 정신 건강에 좋겠다. 이 분이 약을 잘 못 먹은 건가, 아니면 먹고 있는 약이 있는데 거른 건가, 나는 이 상황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리더가 침묵해야 하는 이유
내가 윤 대통령에게 책을 추천해도 읽을 것 같지 않아 헛수고가 분명하지만, ‘입 닥치기의 힘’이라는 책이 있다. 오랫동안 정보기술(IT) 분야에서 저널리스트로 활약했던 댄 라이언스(Dan Lyons)의 저서다. 이 책 서문 제목이 ‘우리는 말이 너무 많다’이다. 이 책 1장 제목은 ‘당신이 지나치게 말이 많은 이유’다. 진짜 윤 대통령한테 꼭 일독을 권하고픈 책이다.
연봉 협상 테이블이 열렸다고 가정해보자. 이때 협상의 ABC는 절대 먼저 내가 원하는 액수를 말하지 않는 것이다. 왜냐? 상대가 1억 원쯤 생각하고 있는데 내가 먼저 “8,000만 원 주세요!”라고 외치면 무조건 그 협상은 손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협상 때에는 ‘침묵이 승리를 이끈다’는 원칙을 기억해야 한다.
조직을 운영할 때도 마찬가지다. 이 침묵의 전략을 잘 활용한 경영자는 애플의 팀 쿡이다. 팀 쿡은 회의 때나 면접 때 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 대화 중에 말이 끊겨 어색한 상황이 생겨도 그 공백을 채우려 하지 않는다.
이러면 상대가 말이 많아진다. 말이 많아지다 보면 자유를 느낀다. 직원들은 그 자유로운 수다 속에서 무심결에 진실을 말한다. 리더가 진짜 들어야 할 이야기를 그때 듣는 것이다.
그래서 권력자일수록 말을 아껴야 한다. 권력자가 말을 많이 한다면 뭔가 불안하거나, 자기가 능력이 없거나, 실질적인 파워가 없거나 등등의 경우다. 그걸 채우려고 수다를 떠는 것이다. 라이언스의 책 한 대목을 인용해보자.
힘 있는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보다 항상 말을 적게 한다. 그래서 힘 있는 사람 중에는 말 많은 사람이 없다. 수다쟁이들은 나약하고 무능하고 자신감이 없어 보이지만 말이 적은 사람들은 강하고 신비롭고 자신감이 넘쳐 보인다.
윤 대통령이 강하고 신비롭고 자신감이 넘쳐 보인 적이 있었던가? 단언컨대 그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지금 보니 그 이유를 알겠다. 민심을 경청하라고 만든 영수회담 자리에서 지 할 말만 떠들고 앉아있다. 이러니 강하고 신비롭기는커녕 나약하고 무능하고 자신감이 없어 보인다.
들을 생각이 애초부터 없었다
윤 대통령 개인 성향이기도 하지만, 왜 저런 중요한 자리에서 그는 자기 얘기만 떠들다 나왔을까? 한 마디로 듣는 법 자체를 모르기 때문이다. 검사라는 자리가 원래 그렇다. 검사는 피의자의 말을 경청하는 자리가 아니라 자기가 정해놓은 결과로 상대의 말을 유도하는 자리다.
복음주의 기독교 목사인 릭 워렌(Rick Warren)이 전한 연구에 따르면 듣는 방식에는 네 가지 종류가 있다고 한다. 첫째, 남이 말하기 시작할 때부터 고정관념으로 가득 차서 남을 판단부터 하는 사람이다. 대략 인구의 17% 정도 된다. 이런 방법으로는 들어도 듣는 효과가 없다. 상대 무슨 말을 하건 나는 이미 답을 정해놓았기 때문이다.
둘째, 상대와 대화 내내 질문을 하며 듣는 사람이다. 약 26% 정도가 이런 방식을 사용한다. 물론 질문은 대화에서 중요하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은 질문을 하는 것이 경청을 한다고 착각한다. 그래서 정작 들어야 할 것은 놓치고 자기가 질문을 할 내용만 고민한다. 경청의 효과가 제대로 나타날 수 없다.
셋째, 상대의 말을 듣자마자 어떤 조언을 해 줄 것인가부터 고민하는 사람이다. 뭔가 가르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인데 대략 35%를 차지한다. 첫 번째 케이스보다는 낫지만 이것도 형편없는 방법이긴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상대는 말을 하면서도 계속 꾸중을 듣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이러면 대화의 의미가 퇴색된다.
넷째, 상대방이 이야기하는 내용도 잘 들을 뿐 아니라 상대방의 감정까지 공감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감정이입을 하며 듣는 사람의 비중은 22%정도다. 바로 이 22%가 진정 경청을 할 줄 아는 사람이다.
대화의 효과도 이 케이스가 가장 높다. 대화의 중심이 ‘나’가 아니라 ‘상대방’에 있기에 듣고 배울 것이 더 많아진다. 게다가 상대의 감정에 공감하며 듣다보면 상대가 무심결에 터놓는 진실도 들을 수 있다. 팀 쿡이 사용한 바로 그 전술이다. 골수 검사 성골들은 절대 이해하지 못할 대화법이기도 하고 말이다.
윤 대통령은 전형적인 1번 + 2번의 케이스다. 애초 영수회담 전부터 이 대표가 의제를 던지면 어떤 대답을 늘어놓을까 그것부터 고민하고 앉아있었다. 영수회담이 의제를 정한답시고 그렇게 오래 시간을 끈 이유를 생각해보라. 들을 생각이 있는 게 아니라 선입견으로 상대를 규정하고, 내가 생각한 방식으로 가르칠 준비를 한 것이다.
이러니 기껏 열린 영수회담에서 민심을 제대로 들을 수가 없다. 우리는 망가진 나라를 그나마 좀 수습할 소중한 기회조차 또 이렇게 놓쳤다. 들을 줄 모르는 대통령, 투머치토커 대통령, 회담이 자기 할 말 씨불이면 다 되는 줄 아는 대통령 탓이다.
내가 윤석열 대통령이 제발 입을 좀 닥쳤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하지만 돌아가는 꼴을 보아하니 앞으로도 윤 대통령은 절대 남의 말을 듣지 않고 떠들기만 할 태세다. 듣지 않으려는 자의 귀를 강제로 열 수는 없는 법, 우리가 대체 언제까지 그를 대통령으로 용인해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