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할매는 손녀들보다 학교 성적이 좀 떨어지는 손자들
기죽일까봐 대 놓고 칭찬은 안하셨어도
기특해 하기는 하셨어요 특히 저한테는요
9살때 가마솥에 불지펴 처음 밥을 지었을때도
고등학교때 무우채 얌전하게 썰어 생채로 저녁차려드렸을때도
" 이거 기계로 썰있나 "그려셔서
제가 칼로 썰었다고 말씀드리니까
" 참말이가? 고년 손이 참 야물딱지다 " 그러시고
고추장떡이나 김치전도 꼭 제가 구운 얍실한거 드시고 싶다고 그러셨구요
이런 게 별거 아닐수도 있지만
저는 칭찬을 들은 기억이 별로 없이 자라왔던 거 같아요
둘째딸로 태어나 사랑받고 싶어서 일부러 찾아서 일하고 잘 할려고 해도
엄마는 저한테 칭찬은 하지 않으셨어요
오히려 조금 못하면 제 탓을 많이 하셨구요
지금 어린시절을 떠올려 봐도 부모님한테 칭찬을 들었거나 사랑받았다는 생각이
1도 안드는 거에요
그러니 할매의 저런 말씀들이 지금도 고맙게 추억하게 되는 칭찬의 표현이셨거든요
그리고
할매가 사주를 좀 보셨는데
저한테는 말씀 안하시고 엄마한테 늘 그려셨대요
ㅇㅇ이가 사주가 좀 안 좋아서 초년에 고생할텐데
힘들어보이면 니가 좀 도와주라고 ..그래도 말년에는 괜찮아 질거라고
뭐 결론적으로
제가 바닥을 치고 있을때도 형편이 나아졌을때도
친정부모님은 늘 도와주기는 커녕 이용하기 바쁘셨으니 ..
기대도 안하니 마음 편했었네요
제가 이제 나이가 들고보니
할매가 저한테 물질적으로 뭘 해주신 것은 없으나
저런 걱정, 칭찬, 당부가 너무 고맙고 정이고 사랑이었구나 싶어지는 거에요
그래서 가끔씩 친정엄마처럼 떠올려지고 그리운가 싶기도 해요
그런 할매가
제가 고 3이던 3월에 중풍으로 쓰러지셔서
4년간을 누워서 계시다 돌아가셨거든요
저는 대구로 기차통학하다 자취하느라 자주 찾아뵙지는 못해도
고향집에 갈때나 방학에는 대소변도 치워드리고 기저귀나 이불 손빨래도 정말 많이 했었네요
그 즈음 울할매가 가장 좋아하셨던 간식이 바나나랑 아이스크림 콘이었거든요
100원 짜리 버스 토큰도 아낄려고 몇 정거장씩 걸어다니던 가난한 고학생이었던 저는
알바하거나 돈이 조금 여유 있을때 서문시장들러 1000원에 두 개하는 바나나 사가지고
가서 가방에서 꺼내 드리면 정말로 좋아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이 난답니다.
저한테도 귀한 바나나였지만 할매한테 드릴 수 있어서 얼마나 좋았던지요
할매가 좋아하는 바나나를 10번도 못 사드렸는데
제가 대학 졸업반 이었던 88년 늦가을에 멀리멀리 떠나셨어요
몇 달만 더 있으면 제가 취직해서 돈 벌어서 바나나 많이 사드릴 수 있었는데
고추장떡도 김치전도 더 많이 구워드렸어야 되는데
안 기다려 주시고 그렇게 떠나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