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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장모님께 라면 끓여드리고 어깨에 힘들어간 남편 ㅎㅎ

팔불출 조회수 : 6,508
작성일 : 2023-10-29 20:24:51

 

일찌감치 5시쯤 간단히 저녁을 해치우고 책보며 제 방에서 놀던 저는 날이 어두워져서 저녁으로 뭘 먹을지 물어보러 거실로 나가봤더니 이미 남편은 저 모르게 주방에서 혼자 라면을 끓여 잡수시고는 설거지까지 완벽히 끝내고 책방으로 사라지고 남편과 라면이 사라진 빈 주방엔 라면 냄새만이 소리없이 감돌고...

그럼 엄마꺼만 드리면 되겠네 생각하며 엄마방에 가서 물어봤어요 

아버지 돌아가시고 치매라 혼자 사시는게 마음이 안 놓여 같이 산지 2년여...

"매일 드시던 밥 드실래요? 아님 간만에 라면 드실래요?"

살림을 합치고 2년 동안 라면을 한번도 못드신 엄마는 제가 질문을 마치자마자 생각할 것도 없이 "라면!!"이라고 골든벨 외치는 여고생마냥 하이톤으로 외치심 ㅎㅎ

 

 

그런데 먹는 얘기라면 귀밝은 남편이 라면 낙점 소식을 방문 너머로 듣고 뛰어나와서는 라면 못 끓이기로 소문난 저를 제치고 냄비를 가로채고는 룰루랄라~하며 이 라면(스낵면)은 면발도 가늘고 오래 끓이면 안된다며 나름의 물양과 끓이는 시간, 계란 투하하는 시간까지 계산해서 제가 조수를 하고 남편이 끓여 쟁반에 담고 디저트로 빛고운 주황색 감을 곁들여 엄마방으로 들고감

사위가 손수 끓인 라면이라고 강조를 하며, 귀한거니 불기 전에 드셔야돼, 얼른 잡솨봐~ 하며 장모를 닥달 ㅎㅎ

(희한하게 딸인 저는 친정엄마한테 존대말을 쓰고 사위인 남편은 말을 놓는 이상한 우리집^^) 

엄마는 "우리 사위가 끓였다고? 돈주고 못사먹는 라면이네!"하시며 후루룩~ 한젓가락 드시더니 요즘 라면 왜 이리 맛있냐고, 면발은 가는데 쫄깃하고 맵지도 않고 고소하고 간도 딱 맞는다며 탄성에 탄성을.. (2년여 라면 금욕생활의 엉뚱한 효과 ㅋ, 스낵면 광고 아님) 

감 하나 입에 물고 옆에서 평을 기다리던 남편이 그 얘기 듣고는 씩~ 웃으며 "잊지 마셔. 사위가 라면 끓여드린거" 한번 더 확인사살 후 기분좋게 감을 오독오독 씹으며 방을 나가는데 어깨에 힘이 바짝 들어간 것이 양쪽에 애 하나씩 얹혀놔도 끄덕없겠더라는..^^

비상식량으로 쟁여놨던 라면의 존재 이유를 체험한 저녁이었어요 

 

 

 

IP : 59.6.xxx.68
2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남편분
    '23.10.29 8:27 PM (175.223.xxx.227)

    정말 착하네요. 82글보면 딸이 정말 있어야 노후가 편하겠다 싶긴합니다

  • 2. 우와~
    '23.10.29 8:27 PM (118.217.xxx.9)

    남편님 굿~~~

  • 3. 우와ᆢ
    '23.10.29 8:29 PM (122.34.xxx.60)

    진짜 부군이 성인군자시네요ᆢ
    2년 여 장모님 모시고 사시는 것도 존경받으실만한데 라면 소리에 바로 나와서 룰루랄라 직접 끓여 대령하시다니ᆢ

    원글님은 진짜 자랑계좌에 입금하셔야겠어요.
    정말 행복한 저녁 보내셨네요

  • 4. ..
    '23.10.29 8:30 PM (14.94.xxx.47)

    앗 스낵면 땡겨요. 이 시간에 이런 글이라니..
    너무 맛깔나게 글을 쓰셔서..

  • 5. ...
    '23.10.29 8:34 PM (61.255.xxx.138)

    좋은 글이에요. 어르신 건강하시고 원글님 가족 모두 행복하세요~

  • 6. ...
    '23.10.29 8:35 PM (222.235.xxx.56) - 삭제된댓글

    원글님 전생에 나라 구하셨나봐요.
    남편분 정말 착하십니다.

  • 7.
    '23.10.29 8:35 PM (221.138.xxx.139)

    귀엽고 엉덩이 가볍고,
    ㅎㅎㅎ

  • 8.
    '23.10.29 8:36 PM (115.136.xxx.13) - 삭제된댓글

    진짜 행복한 순간

  • 9. ㅎㅎ
    '23.10.29 8:36 PM (59.6.xxx.211)

    원글님 결혼 잘했네요.
    남편분 귀여워요

  • 10. ㅎㅎ
    '23.10.29 8:39 PM (210.222.xxx.62)

    요즘본 글중에 제일 재치 넘치고 사랑스런 글 입니다
    읽는 내내 미소가 ㅎ

  • 11. ^^
    '23.10.29 8:41 PM (59.6.xxx.68)

    쫌 멋지죠?
    그런데 저도 시부모님께 잘해요 ㅠ
    남편에겐 더 잘하고 ^^
    남편이 나이가 저보다 많은데 호르몬 탓인가 점점 귀여운 짓을 많이 해요
    집에서 1인 2역을 합니다
    남편과 강아지 ㅎㅎ

  • 12. fe32
    '23.10.29 8:44 PM (49.170.xxx.96)

    아 따뜻하다.. 이런남편 너무 좋다

  • 13. ㅎㅎ
    '23.10.29 8:50 PM (221.140.xxx.198)

    전생에 나라를 구하셨나봐요. 우리나라 남자들은 옛날 가부장제의 영향인지 아니면 남성호르몬 장착하고 태어난 결과인지 모르지만 착해도 말 짧고 다정다감한 대화와는 거리가 먼데 참 좋은 분 만니셨네요.

  • 14. 모모
    '23.10.29 8:56 PM (219.251.xxx.104)

    아!
    남편 성격 너무 부럽다
    어머니 지금 이대로
    쭉 ~행복하세요^^

  • 15. 00
    '23.10.29 8:58 PM (58.123.xxx.137)

    컴 끄려던 찰나 이렇게 이쁘고 흐믓한 글이라니...
    오늘밤 제가 다 좋은꿈 꿀것같아요
    부러우면 지는건데 할수없이 져야겠어요 ㅎ

  • 16. 감사합니다
    '23.10.29 8:59 PM (59.6.xxx.68)

    오늘은 남편이 좋아하는 발마사지 찐하게 해줘야겠어요 ㅎㅎ

    그나저나 엄마는 사위가 끓여준 맛있는 라면 드신걸 기억하는 것도 오늘 밤이 전부일걸요 ㅠ
    내일 아침 주무시고 일어나면 사위가 끓여준 라면은 둘째치고 오늘 라면 드셨다는 것도 잊으실텐데…
    참 고약한 치매예요

  • 17. ...
    '23.10.29 9:11 PM (175.123.xxx.105)

    마음이 따뜽해지는 글입니다.
    어머님 건강유지하시고ㅈ두분 행복하세요.

  • 18. 시부모에게
    '23.10.29 9:22 PM (175.223.xxx.109)

    정말 잘하셔야겠어요. 저라면 솔까 치매 시부모 10억준다해도 못모셔요 ㅜ

  • 19. 맞아요
    '23.10.29 9:35 PM (59.6.xxx.68)

    시부모님도 남편도 감사하죠
    그런데 사실 저는 자신없었는데 시부모님과 남편이 모시고 사는게 좋지 않냐고 먼저 얘기하셨어요
    저도 참 잘해주신 부모님이라 먼저 가신 아빠의 엄마 걱정도 알고, 엄마도 원해서 치매 걸리신게 아니니 잘해드려야겠다는 생각도 했지만 제가 그리 훌륭한 사람도 아니라 정말 자신이 없었거든요

    그래도 같이 지내보니 낮에는 데이케어 가시는걸로 활력을 얻으시고 아직은 초기에서 크게 진행 안되고 얌전하시고 집에 오셔서는 방에서 유투브 열심히 찾아보시느라 바쁘셔서 저희랑 부딪힐 일이 거의 없어요
    웬만한 엄마일은 남편이 신경쓰지 않도록 제가 미리미리 다 챙기고요
    다른 치매 부모님들과 사시는 분들이 이젠 더 눈에 들어오고, 그분들의 고충에 공감도 가고, 저의 미래도 생각해보게 되고…
    하지만 중요한 건 주어진 하루하루 별 일 없으면 감사하며 웃으며 살자는 생각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 20. 헬로키티
    '23.10.29 10:14 PM (182.231.xxx.222)

    남편분 멋지시네요.
    어르신도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 21. 봄봄
    '23.11.1 12:05 AM (221.150.xxx.121) - 삭제된댓글

    저는 아버지가 치매 환자시라 고생하시는 엄마 도와드리러 남편과 애들 버리고 친정에 와 있는 딸이라서
    남의 얘기 같지가 않네요.
    좋은 생각만 하시고 가족 모두 건강하시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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