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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3 여름방학 이야기-100일 무렵이니까

2018년 조회수 : 2,502
작성일 : 2023-08-06 19:28:11

올해도 참 덥네요. 

어제 김치 냉장고가 돌연사했습니다. 의문사이기도 하고, 자연사이기도 합니다. 안락사는 결코 아니에요 ㅎ2002년 생, 딤채이니까요. 

이로써 저희 집을 떠난 가전 제품이 이제 다섯 손가락을 꼽게 되었네요. 

 

 5년전, 2018년 여름은 참 더웠습니다.

94년 여름이랑 거의 비길 정도였죠. 

 

그해 8월, 갑자기 에어컨이 돌연사합니다.

매일 사상 최고 전력량을 갱신하던 날인데 에어컨은 당연히 재고가 동이 났고, 

돈이 아무리 많아도, 에어컨을 구할 길이 없는데다

에어컨을 산다해도, 설치할 때까지 아무 기약없이 기다리기만 해야했었죠. 

 

게다가 남편은 당뇨 합병증으로, 수술하고 집에서 요양 중이었고요. 

저는 일하면서, 남편의 삼시 세끼 챙기느라, 3-4시간마다 약 발라주고 등등 힘들었습니다. 

 

그 해, 고 3이었던 아이는 3월 모의부터, 잘 못치더니.내내 모의 고사가 지지부진했습니다. 

급기야 6월 모의에서는 최악의 점수를 받았습니다. 공부를 한다고 했는데도, 이상하게 내내 점수가 신통찮았습니다. 

 

그 와중에 에어컨 없이. 몇 주를 지내다 보니, "개같은 날의 오후"란 영화가 진짜구나 싶었습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신영복 선생님이 그러셨죠.  더운 날에 사람이 사람을 증오하게 된다고 .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일하고 장을 봐 집으로 오다보면, 정말 아스팔트에서 뜨거운 바람이 불었습니다. 

 

그 뜨거운 여름을 나면서 저는 완전히 마음을 내려놓았습니다. 

마음이 평온해졌습니다. 

"어쩔 수 없지. 아무 걱정말고, 결과를 기다리자, 그때가서 또 무슨 수가 생기겠지" 

 

6월 평가원에서 충격적으로 나쁜 성적을 받은 아이는, 그때부터, 한눈도 팔지 않고 공부했습니다. 

시험 얼마 앞두고, "엄마, 저 다시는 수능공부 하지 않을 거예요. 모든 것을 다 쏟아부었어요" 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한 점의 후회 없다고 했어요. 

저는 열심히 밥해줬고(라기보다는 고기를 많아 샀죠, ㅋㅋ고기값 정말 많이 나갔습니다), 부지런히 간식 사다 날랐고요. 

 

지금쯤 수시 원서 한창일때, 친구들 , 엄마들 사이에 원서로 말도 많고 탈도 많을 때 아이는 놀라울 정도로 차갑고 침착하게 공부에만 집중했어요. 롤 다이아 였던 ㅠㅠ녀석은 게임도 완전히 끊고, 쉬는 시간에 농구하면서 스트레스 풀면서  귀마개하고서 내내 공부만 했다고 하더라고요. 

 

9월 모의때는 도시락 뭐 쌀까 물었더니, 잡채만 싸달래요. 고기와 면을 가장 좋아하니까요. 그랬더니 헉, 퉁퉁 불고, 엉켜서, 도시락 열어보니, 잡채 덩어리가 있더래요. ㅠㅠ 숟가락으로 뜯어 먹었다네요 ㅋ

그래서 수능 때는 갈비찜, 연어 스테이크, 또 불고기, 달걀 말이, 김치랑 밥, 스타벅스 모카 커피 병에 든것 2개, 페라로 로세 초코렛 10알, 얼음물 한통, 이렇게 잔뜩 싸들고, 갔어요. 

 

4키로로 태어난 아이가, 20배 이상 자라서, 추리닝 입고, 수능 시험 보러 가는데 어찌나 찡하던지.. 

 

그 해 수능은 국어가 불, 아니 핵 수준으로 어려워서, 수학을 4등급 받고도 인제 의대에 붙은 학생이 있을 정도로, 변수가 많았습니다. 국어가 너무 어려워서, 첫 시간에 혼이 나간 아이들이 수학을 망친 경우도 많았구요. 

 

국어가 참 어렵네, 남도 어렵겠네, 난 열심히 해야지

수학이니까, 더 열심히 해야지. 

일단 밥을 맛있게 먹겠어. 

와, 영어다, 

이제 마지막, 과학이야.그런데 감독관이 왜 저리 왔다리 갔다리 할까, 집중해야지. 

 

그렇게 4교시를 본 아이는 최고의 성적을 받아서, 원하는 학교에 진학했습니다. 

 

어디선가, 에어컨이, 김치 냉장고가 갑자기 멈춰 섰다면, 

혹은 뭔가가 멈춰 서버려 힘드시다면, 

지금 고3 혹은 재수하느라, 딱 서버릴 것만 같으시다면 제 이야기가 응원이 되길 바라며 몇 자 적어봤습니다. 

IP : 175.197.xxx.202
1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
    '23.8.6 7:35 PM (1.225.xxx.115)

    좋은 글
    많은 위로가 됩니다
    갑자기 킬러문항이 등장하고
    카르텔이 등장하고
    그 와중에 날씨까지 도와주지 않고
    8일이 100일전이니까
    절에 가서 열심히 기도나 하려고 합니다

  • 2. ....
    '23.8.6 7:36 PM (122.36.xxx.154)

    멈춰서있는 제 맘에 위로를 주셔서 감사합니다ㅠㅠ

  • 3. 짝짝짝짝
    '23.8.6 7:36 PM (112.214.xxx.147) - 삭제된댓글

    어우~ 너무 좋은 글입니다.
    김냉의 돌연사부터 흥미진진 했어요.
    뜨거운 아스팔트에서 삶의 지혜를 얻은 원글님도,
    다 쏟아붓고 초연한 아드님도 너무 멋집니다.
    좋은 글 감사해요.
    행복하세요~(찡긋)

  • 4. ㅇㅇ
    '23.8.6 7:39 PM (112.153.xxx.115)

    감사합니다.
    저희 아이는 재수생이에요.
    올해는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큰 응원 받고 갑니다.

  • 5. 원글이
    '23.8.6 7:39 PM (112.214.xxx.197)

    절, 성당, 교회,
    하늘, 바다, 산, 바위, 그 무엇을 향해서건, 기도하는 수 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요즘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어떤 영적인 믿음과, 힘이 아닐까 싶습니다.

    멈출 때 일수록, 마음을 내려놓고, 자신에게 집중해야한다고 합니다. 지금 제게도 여전히 꼭 필요한 일입니다. 수험생, 수험생 엄마가 아닌 제게도 여전히요

  • 6. 00
    '23.8.6 7:41 PM (121.190.xxx.178)

    2018 제 아이도 고3이었는데 전 더위가 기억에도 없어요
    아이가 귀가 픽업해주길 원해서 해줬는데 꼭 그시간에 폭우수준의 소나기가 쏟아져 길 한쪽에 차 세워놓고 잦아들길 기다리길 여러차례,,,
    열심히 간식해먹이고 애가 좌절하는 날이면 깜깜한 밤에 가만히 안아주고 괜찮다괜찮다 니가 어려우면 친구들도 어렵다 달래고
    어이가 열심히 하니 저도 뭐한가지라도 더 해주고싶었어요
    불수능이었죠 특히 국어,, 그게 저희 아이에게도 되려 기회가 돼서 원하던 학교 진학했어요
    이제 졸업반이라 취업한다고 공부중이네요
    더운날 다들 힘내세요 좋은날 곧 올거예요

  • 7. 갑분
    '23.8.6 7:58 PM (183.103.xxx.191)

    고3 아이가 있는 저희집.
    뭔가 눈물이 찡하네요

  • 8. ㅇㅇㅇ
    '23.8.6 8:07 PM (222.119.xxx.151)

    원글님 ! 감동입니다
    앞날에 좋은일들이 함께하길 기원합니다

  • 9. jan
    '23.8.6 8:19 PM (118.235.xxx.64)

    마음에 위로가 많이됩니다
    감사드려요

  • 10. 2018 고3
    '23.8.6 8:29 PM (58.127.xxx.169)

    같은 해 아이를 키우셨네요.
    그 해 지독하던 여름
    6월 9월 받아보지못한 등급 받아오던 아이
    속옷만 입고 거실 에어컨앞에 앉아도 땀이 나서
    큰 목욕수건 의자에 깔고 앉아 공부했던게 기억나네요.
    저희 에어컨은 그 해 일을 다 하고 망가졌고
    괴랄한 국어문제에 당황했고 그 때문에
    최저 못맞춰 의대 6광탈한 옆학교 전교1등도 보았어요.
    모든게 다 지나가고
    다들 갈만한 곳읋 가더라구요
    그 이후는 또 나름 운대로 노력대로 뻗어나가구요.
    다들 자리에서 힘내봅시다. 이것도 곧 지나가리니.
    (이번주에 입추 말복 있어요)

  • 11. 저희도
    '23.8.6 8:36 PM (119.70.xxx.43)

    저희 집도 고3이 있어요.
    오래된 집이라 여러군데 노후로 인해 누수가 있어
    최근에 마음이 힘들었네요ㅜ
    냉장고며 에어컨.. 올 여름은 잘 버텨줬으면 하는 바램이었는데
    이 글을 보니 울컥하네요ㅜ

  • 12. ...
    '23.8.6 9:48 PM (222.112.xxx.195)

    고3맘 저장합니다

  • 13. ..
    '23.8.6 10:02 PM (49.172.xxx.179)

    저 지난주 초 갑자기 에어컨이 꺼졌는데 콘센트에서 지지직 거리며 에어컨에서 뻘건 불꽃이 막 보이며 운명하셨어요. 그 담날 남편은 코로나 확진받아 방에서 격리하고..저는 에어컨없이 이 더위에 불앞에서 입맛이 다른 남펀 밥, 고2 아이 밥 하느라 죽을 지경이고
    남편이 한달전 당뇨판정을 받아 냉면 비빔면같은 간편식은 꿈도 못꾸고 당뇨식단으로 밥해서 방앞에 갖다주고 나면 샤워하고 나와도 더위가 안가시네요. 저희 아이는 수시 준비하고 있는데 조금씩 떨어지는 내신때문에 걱정이라 저는 매일 대학교 별 수시 정시 전형 확인중이에요. 원글님 글에 왠지 위안이 되네요. 웃으시며 추억하실수 있어서 너무 다행이구요.저도 그럴게되길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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