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마트 갔다 집에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집 근처 큰 골목 빌라 앞에 누군가 배낭을 멘 채로 그대로 고꾸라져 엎어지듯 쓰러져 있는 거예요
안경도 안 쓰고 나가 이게 무슨 일이지 인지하는 데 잠깐 시간이 걸릴 정도였어요
저녁 6시 경이였고 평소에는 사람통행이 많은 큰 골목이라 설마 사람이 거기 그렇게 쓰러져 있을 줄은..
노숙인인가 싶어 112에 신고를 하려고 해도 충전이 급해 집에 그대로 두고 핸드폰을 안 가지고 나온 길. 머리가 하얘지고..
잠시 흔들어 깨워도 반응이 없어 심장이 막 두근두근 뛰는데 마침 그 때 길을 지나는 어머님이 계셨고 제가 도와주세요 외쳤더니 바로 다가와 도와주셨지만 아무래도 안 되겠길래 112나 119에 전화를 해 달라 했더니 역시 동네에서 슈퍼나왔던 길이라 그 분도 전화를 두고 왔고 바로 까스불에 뭘 올리고 오셨다고 어쩌지 난감해하셨어요. 근처 파출소가 가까워서 제가 뛰어갔다 경찰 데리고 온다고 잠시 봐 달라고 했는데 그 역시 좀 힘들어 하셨고요. 그런 소동이 있자 의식을 찾으셨는지 마침내 쓰러진 분이 상체를 일으키는데 70대 이상으로 보이는 너무 여윈 할아버지셨어요. 얼굴엔 넘어질 때 긁혀 그런지 두 군데 피가 있고 역시 스스로는 잘 못 일어나시더라고요.
그런데 조금 정신을 차리시니 112, 119는 싫다. 괜찮다. 그냥 갈 수 있다. 고집하셔서
혹시 약주하셨냐고 여쭤봤고 그렇다고 하시더라고요. 자식들이 알면 난리난다고 하시고.
그렇다면 심각한 응급상황은 아닐 수도 있어서 그 때까지도 곁에 있던 어머님께서 같이 일으켜 주셔서 제가 엎듯이 부축해 집에 데려다 드렸어요. 다행히 할아버지 댁은 쓰러진 곳에서도 제 집 쪽과도 멀지 않아서 크게 시간이 걸리진 않았어요. 경사가 진 오르막길이었는데 어지러우실 수 있고 거동이 불편하시니 천천히 천천히를 구호 외치듯 하고 집 열쇠 따는 것까지 도와드리고 들어왔어요.
그런데...오늘 유난히 참 이상할 정도로 그 붐비던 큰 골목에 사람이 없는 거예요.
도와달라고 해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어요. ..어머님도 어떻게 여기 오늘 이렇게 사람이 없지 할 정도로.
마침내 청년 한 사람이 지나가기에 저도 어머님도 조금만 도와달라고 외쳤는데
뭐 보듯 쓱 보고 그냥 가버리더라고요.
거기서 진짜 당황했어요. 그 사람도 이유는 있겠지만 사람이 쓰러져 있잖아요. 아무리 누가 옆에 있어도 사람이 쓰러져 도와달라고 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더 시간 지체 하는 것 보다 제가 업듯이 해 좀 불편하실지라도 바로 데려다 드리는 게 맞을 것 같아 그렇게 했어요.
할아버님이야 너무 고마워 하시고 미안해 어쩔 줄 모르시지만 저는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반드시 병원 갈 것. 아지러운지 부러졌는지 상태 살필 것. 다시는 약주 과하게 드시지 말 것.
그 세 가지만 지켜달라고 말씀드렸고요. 내일 꼭 병원가신다고 하셨어요. 다니는 곳 있다고 하셨고요.
그런데 진짜 황당한 건 그렇게 제가 지쳐 집에 들어오는데
도움요청을 외면한 사람이 옆집 사람인 거예요
제가 들어오는데 그 사람은 거기서 뭘 사 가지고 들어가는 길이라 다시 마주치게 된 것 같은데
절 쓱 보더니 고개 싹 돌리고 들어가더라고요.
옆집과는 맨날 인사하고 친한 이웃인데.. 오가는 친척이나 지인들도 많지만 그래도 어쩐지 낯이 익은 얼굴이었는데..
요즘 재난재해로 사고가 많기에 눈 뜨면 심란한데 도와주세요 그렇게 외쳐도 아무도 오지 않을 때 얼마나 절망스럽고 막막한 일일까 내가 이 정도의 일로도 이렇게 심란한데..그냥 그 생각에도 마음이 내내 좋지 못하네요.
자꾸 머리에 이것저것 잔상이 남지만
하지만 모자른 힘이지만 도왔으면 됐어. 좋은 일 했으면 됐어. 그랬으면 잊자. 합니다.
그리고 요즘 살이 퉁퉁 쪘지만 힘도 진짜 세져서 할아버지를 업듯이 하고 오르막길을 오를 수 있었던 제 자신에 제가 대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