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의 펠로시 패싱
2022.08.04
미 의전 서열 3위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8월 3일 저녁 한국을 방문했다. 펠로시 일행이 도착한 오산 미군기지에는 정부 관계자는 아무도 영접 나가지 않았고, 그 시각에 윤석열은 대학로에서 연극을 보고 배우들과 저녁 식사를 했다.
윤석열 대통령측은 8월 3일 오전에는 “당초 펠로시 의장 방한 일정이 윤 대통령 휴가와 겹쳐 만나는 일정은 잡지 않았다”고 밝혔다가 오후에는 “지방 방문 계획이 취소돼 다시 조율 중”이라고 했지만 최종적으로 “오전 브리핑 내용에서 달라진 것이 없다”며 펠로시를 만날 계획이 없음을 알렸다.
펠로시는 대만의 차이잉원 총통은 물론이고 싱가포르 리셴룽 총리, 말레이시아 이스마일 사브리 야콥 총리와도 회동을 가졌다. 일본에선 기시다 후미오 총리를 만날 예정이라고 한다. 펠로시 의장은 2015년 방한 당시에는 박근혜 대통령과 회동했었다.
펠로시의 이번 아시아 순방 일정은 싱가폴-말레이시아-대만-한국-일본으로 현 미국-중국 간의 갈등 국면과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전략과 무관하지 않다.
백악관도 “바이든 대통령은 하원의장의 순방 결정을 존중하며 이것이 미국의 정책과 완전히 일치한다고 믿는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런 국제 정세 속에서 윤석열 정부가 펠로시가 도착한 오산 공군기지에 정부 관계자를 아무도 보내지 않았고, 윤석열도 휴가를 이유로 펠로시와의 면담을 하지 않기로 했다. 펠로시가 오산에 도착하는 시간에 윤석열은 대학로 소극장에서 연극을 보고 배우들과 저녁 식사와 함께 술잔을 나누었고, 이런 장면을 담은 사진을 대통령실을 통해 공개했다. 이건 펠로시를 엿 먹이는 것이고, 미국의 대중 전략에 한국은 참여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펠로시는 오산 공군기지에 정부 관계자가 아무도 나오지 않은 것에 대해 매우 불쾌해 했다고 한다.
이런 윤석열의 행보에 대해 중국 누리꾼들은 온라인상에서 “한국은 대만보다 똑똑하다” “한국 대통령은 기개가 있다”며 칭찬하고 있다. 중국 정부도 내심 환영하고 있을 것이다.
윤석열의 펠로시 패싱이 미중 갈등이 첨예한 상황을 고려한 ‘외교 전략’이며, 현 정부 들어 밀착하는 한미 관계로 예민해진 중국을 자극하지 않겠다는 계산이라면 우리나라 국익을 위해 천조국 미국에도 자신의 뜻을 내보이는 대단한 배짱이라고 칭찬할 수도 있겠지만, 불과 1개월도 안된 시기에 나토 초청으로 유럽까지 다녀와 놓고 이제 와서 전혀 다른 행보를 보이는 것은 이해할 수가 없다. 나토가 회원국도 아니며 유럽과 정반대에 위치한 한국, 일본 등을 초청한 이유는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라는 것은 국제정세에 조금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펠로시와의 면담 기피는 중국을 의식한 외교 전략의 일환이라 하더라도 펠로시에 대한 의전은 제대로 할 필요가 있었는데 오산 공군기지에 정부 관계자를 아무도 내보내지 않은 것도 그렇고, 굳이 그 시간에 연극을 보고 배우들과 저녁 먹고 술자리를 한 사진을 공개한 이유를 모르겠다. 중국을 자극하지 않으려 의도적으로 미국을 홀대하는 것이 윤석열 정부의 외교 전략인가? 중국을 자극하지 않고 미국의 심기도 배려하며 한국의 입장을 이해해 달라는 메시지를 미국에 보낼 수 없는가?
미국은 이번 펠로시를 패싱한 한국 정부를 과연 어떻게 볼까?
한국과 한국민들이 미국과 국제정세에 대해 착각하는 것이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우리나라 국민들 중에는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기 때문에 미국이 국제안보전략상 한국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지켜줄 것이라는 환상을 갖고 있는 사람이 많다. 특히 중국과 갈등 관계에 있고 중국의 패권을 견제하려면 미국은 한국을 홀대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미국 입장에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한국은 그렇게 중요한 지정학적 위치에 있는 나라가 아니다. 미국은 일본 본토-오키나와 열도-대만-사이판-괌-필리핀-호주를 연결하면 중국의 해상로를 봉쇄할 수 있다. 펠로시가 방문한 말레이시아와 싱가폴은 동남아와 극동을 연결하는 중요한 해상 운송로인 말라카 해협이 있는 곳이다. 펠로시가 그냥 말레이시아와 싱가폴을 방문한 것이 아니다. 중국은 말라카 해협과 위의 일본-대만-필리핀-호주의 해상이 봉쇄되면 사실상 고립된 대륙에 불과하게 된다. 중국이 무력 사용을 경고하면서까지 대만을 통일시키려는 이유도 자신들이 좌지우지할 수 있는 태평양으로의 해상로를 확보하기 위함이다.
미국 입장에서는 여차하면 한국을 빼고 일본을 방위선으로 해도 중국이나 러시아를 견제하는데 큰 무리가 없다. 1950년 한국을 빼고 일본을 방위선으로 하는 애치슨 라인이 아무 생각 없이 그냥 그어진 것이 아니다. 냉전시대도 끝나 남한이 공산화되면 도미노처럼 일본, 동남아 국가들이 공산화될 것을 우려하는 시대도 아니라서 미국이 냉전시대에 한국을 보는 것과 지금은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는 것을 우리나라 사람들은 잘 모른다. 실제로 미국 의회에서 한국을 제외한 방위전략에 대해 논의한 적도 있고, 트럼프가 우리나라에 방위비 내놓으라고 으름장을 부린 것도 그 이유와 배경이 없는 것이 아니다. 미국이 호주, 일본, 인도를 중심으로 태평양-인도양 방위전략을 짜고, 한국이 이에 참여 의사를 밝히지 않아도 별 다른 압력을 넣지 않는 것도 한국은 잘 살펴봐야 한다.
조금 과장해서 이야기한다면 지금 국제정세로 보아 미국은 한국에 대해 별 아쉬울 것이 없지만 한국은 미국에게 한국을 미국의 국제안보전략에 한국을 끼워 줄 것을 애원해야 한다고 본다. 미국이 그나마 한국을 아직까지도 자신의 안보전략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한국의 반도체(삼성) 때문이라는 것이 필자 생각이다. 만약 반도체 문제를 한국의 도움 없이 해결할 수 있다면 미국이 한국을 대하는 태도는 많이 바뀔 것이다. 주한 미군 철수를 쉽게 결정할 수도 있다.
만약 중국-대만 간 무력이 사용된다면 미국이 개입할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미국과 중국이 전쟁을 하면, 중국은 한반도에 대해 어떻게 할 것 같은가? 북한(김정은)을 통해 남한에 부분적인 무력 사용을 하도록 해서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켜 주한 미군을 남한에 묶어 놓고 대만 전쟁에 투입될 수 없도록 할 가능성이 높다. 중국은 대만과 한반도, 두 곳의 전장을 만들어 미국 무력을 분산시키려 할 것이다. 이 때에 미국이 대만을 지키는 것이 중요함으로 주한 미군을 대만 전장으로 빼내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 북한(김정은)의 오판으로 한반도에서 전면전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을까?
미국-중국간 패권 경쟁과 대만 사태는 우리와는 아주 밀접한 문제로 항상 예의 주시해야 하며, 어떤 외교 전략으로 주변 국가들을 상대해야 할지 머리를 싸매고 공부하고, 매우 조심스럽게 외교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자칫 외교 방향을 잘못 설정하거나 안이하게 생각하면 나라의 운명이 바뀔 수 있다.
이런 중차대한 상황에서 미국 의전 서열 3위인 펠로시 하원 의장이 말레이시아-싱가폴-대만을 방문하고 방한하는데 한국의 대통령이 생까고 연극 보고 배우들과 저녁이나 먹고 있으니....
아래 기사에 나오는 두 사진을 미국 정부나 미국민들이 본다면 한국과 윤석열을 어떻게 생각할지 참 걱정이다.
<펠로시 면담 생략에.."휴가라도 외출 가능", " 하루 시간 빼야">
https://news.v.daum.net/v/20220804072441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