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기도

작성일 : 2022-06-29 13:55:28


작년 1월 9일에 수술을 했다. 산부인과 수술이었고 난소의 물혹이었다.

수술날 아침에 큰언니가 왔다. 남편은 자리를 비울 수 없어 들렀다 갔다. 큰언니와 아이가 따라왔다.

6학년이었던 아들이 침대에 누운채 수술실로 향하는 나에게 엄마 괜찮아. 걱정하지마 하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수술을 한 기억이 몇 번 있었지만 또 새삼스러웠다. 조금 두려웠다.

언니와 아이를 뒤로 한 채 수술실에 들어가서 대기하고 있었다. 이른 아침이었고 수술환자가 많았다.

대학병원이어서 여러 과의 여러 환자들이 침상에 누운 채 수술을 대기하고 있었다.

수술대기실은 마치 냉장고의 냉동실같아서 아주 싸늘하고 차가웠다.

얼마나 여기에 더 누워 있어야 하는 걸까. 하며 나에 대한 연민과 걱정을 막 시작하려는 찰나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네살이나 다섯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였다.

나는 누워 있어서 그 쪽을 볼 수 없었는데 수술을 대기하는 아이였고 아빠가 아이를 안고 있었다.

아이의 울음소리는 엄마를 찾고 있었다. 수술을 앞둔 아이는 슬프고도 간절하게 엄마를 찾고 있었다.

왜 애시당초 엄마가 들어오지 않은 걸까 하고 나는 생각했다.

(나중에 친구가 엄마들은 견디기 힘들어해 그런 경우 아빠가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라고 말했다)

젊은 아빠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거겠지만 아이의 울음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아이가 구슬프게 엄마를 찾고 울고 엄마한테 가자고 열번 정도 말하면 한번 정도 대답했다.

어찌할 바를 몰랐던 것일까. 아이가 엄마한테 가자고 열 번 정도 말하면 그래 가자 하고 한번 정도 대답했다.

그래서 나는 조금전까지만 해도 내 수술에 대한 염려로 가득 차 있었는데

이내 나의 일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도와줄 수 없는 아이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버렸다.

벌떡 일어나서 그 아이에게 다가가서 적극적으로 달래주고 싶었지만 할 수 없는 일이었고

애끓는 울음소리에 답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기도를 시작했다(종교없음 주의)

하느님. 저 아이가 무슨 수술을 하는지 모르겠는데 수술 잘 되게 해 주세요. 도와주세요.

부처님. 저 아이를 도와주세요. 낫게 해 주세요.

삼신할머니. 아이를 도와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아이의 울음소리는 길었고 너무 슬펐고 내 기도는 간절해졌다. 아이가 울면 울수록 나는 신이라는 신은

다 불러내서 진심으로 아이를 부탁했다. 그 시간이 길었다. 내가 충분히 진심을 다해 아이를 부탁하고

나자 아이가 나보다 먼저 수술실로 들어갔다. 아이가 들어가고 나서 나도 수술실로 들어갔다.

수술실은 깨끗하고 모두들 친절했다. 나는 수술대 위에 누웠다.

그 때 알았다. 나는 벌벌 떨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아이를 위해 기도하느라 나는 내 걱정을 하지 않았고

이미 수술에 대한 두려움도 없이 수술대위에 누울 수 있었다. 그 날 아이가 없었다면

나는 나를 부를 때까지 두려움과 걱정 속에 떨며 그 시간을 보내었을 것이다.

내가 아이를 도와준 걸까. 아이가 나를 도와주었던 걸까.

살면서 그 생각을 가끔씩 한다. 내가 무언가 좋은 일을 하거나 누구를 돕는다면 그건 그 사람을 위한다기 보다

나를 위한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 말이다.

아이를 위해서 기도하며 수술 대기실에서 겪었을 두려움을 하나도 겪지 않았다.

생면부지의 아이가 그 날의 나를 도왔다. 그 날 아이의 수술을 잘 되었을까. 지금쯤 건강하게 뛰어다니고 있겠지


IP : 220.119.xxx.23
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아...
    '22.6.29 1:57 PM (125.190.xxx.212)

    부디 그 아이도 원글님도 건강해지셨기를....
    저 또한 기도합니다.

  • 2. parkeo
    '22.6.29 2:51 PM (39.7.xxx.79)

    원글님의 기도가 아이한테도 원글님에게도

    큰 힘이 되었을 겁니다..두렵고 힘든 상황에서

    나보다 다른사람을 위해 진심으로 기도할수 있다는 거..

    정말 존경스럽네요..

    원글님 같은 분들이 계셔서 그래도

    이 세상이 살만한가 봅니다..

  • 3. 위안
    '22.6.29 4:07 PM (119.198.xxx.244)

    원글님 글이 참 좋아요. 긴장되고 무서웠을 그 순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한 기도..
    잔잔하지만 뭔가 통찰하게 만드는 좋은 글,,많이 감사합니다
    님도 그 아이도 건강한 삶을 사실 수 있길 바랍니다 ~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1591092 흡연자들 왜 창문 열고 담배 피울까요? 1 의아 19:19:45 35
1591091 큰돈 잃고 삶의 태도가 바뀌었어요 1 ㅇㅇ 19:18:56 156
1591090 어버이날… 혼자 시댁가기 2 19:15:29 185
1591089 둘이 완전히 틀어졌다는데 2 ㄴㅇㅎ 19:15:15 391
1591088 장례치르신 분들, 조의금 10과 20 느낌이 많이 다른가요? 4 궁금 19:14:17 207
1591087 같은 대학 같은 과를 쓰는 경우 고3맘 19:13:51 73
1591086 류선재 모닝콜 이건또 19:13:14 94
1591085 지금 놀면 뭐하니 게임 종목이 뭔가요 ㅇㅇ 19:12:48 43
1591084 얼굴 필러 녹이면 어디로 가나요? 000 19:10:47 75
1591083 동유럽 여행가요 1 조언 좀.... 19:06:16 234
1591082 여름에 침대없으면 무엇을 깔고 자야 하나요? 2 .. 19:05:41 170
1591081 이혼하자는 말 매일하는 남자 8 허세쟁이 19:03:36 540
1591080 얼굴필러는 녹이면 멍드나요? 2 얼굴필러 19:00:33 194
1591079 이사하고 이케아로 가구 많이 바꿨는데 3 이사 18:59:54 411
1591078 불후의 명곡 이현우 저렇게 노래 잘했나요? 2 와우 18:54:06 587
1591077 시댁식구 챙기기 9 부인 18:47:21 722
1591076 노래 제목 알려주세요~ 3 노래 18:46:36 168
1591075 줌인아웃 블박사진좀 봐주세요 5 이혼준비 18:42:42 387
1591074 죽순 끓는 물이나 기름에 넣으면 금방 익나요? 1 ... 18:35:53 151
1591073 1999년 800만원은 지금으로 치면 10 ㅇㅇ 18:27:36 835
1591072 남자들은 염색 별로 안하나요? 4 .. 18:26:41 302
1591071 부추전.진짜 맛있어요 8 부추전 18:22:56 1,434
1591070 질염에 붓는 증상도 있죠? ㅇㅇ 18:18:54 273
1591069 내가 2018.06.06일 쓴글(정치) 3 오소리 18:18:09 358
1591068 추가 대출은 꼭 이전 대출해준 직원 통해야 할까요? ㅇㅇ 18:15:39 1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