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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홈 선생님의 이야기

펌글 조회수 : 1,100
작성일 : 2021-04-20 14:19:56
그룹홈이란 곳을 아시는 분도 모르는 분도 있겠네요.
어느 선생님의 그룹홈 근무 후기인데 현실적이면서도 따뜻한 이야기라 퍼왔습니다.
전체 글은 링크로 확인 하세요.
..

“이모”하고 애들이 뒤에서 껴안으면, 좋다고 실실거리며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널던 1년 3개월이었다.
그 중에는 진공청소기를 밀다말고 원격수업 출석 체크는 제때 했냐고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늘어놓던 때도 있었다. 상담일지를 정리하다 말고, 쇳소리를 내며 다투는 아이들 곁으로 달려가 눈을 더 크게 치켜뜨고 서 있던 날도 있었다. 심심하다고 노래를 부르는 초등학교 1학년 오순이에게, 그럼 30분만 TV를 봐도 좋다고 인심을 써놓고서, 4년치 사회복지시설 평가 서류를 붙들고 머리를 싸매던 날도 있었다. 아기 낳을 때 많이 아프냐는 질문을 퍼붓던 큰 아이들에게 대답을 하다말고 넘겨본 시계가 새벽 2시를 가리키던 순간도 있었다.
그 사이 일순이는 자립을 해서 혼자서 밥도 잘 해먹는 대학생이 되었고, 이순이는 운전면허증을 거머쥐었고, 삼순이는 세번째 자격증을 준비하고 있고, 사순이는 독학으로 선행학습을 하고 있고, 앞니가 다 빠졌던 오순이는 알파벳을 모조리 익혀버렸다. 그 사이 내 귀밑에 흰 머리도 부지런히 늘어났고 말이다.
그 중의 어느 날은 엄마, 아빠, 그리고 두 명의 자녀가 함께 사는 장소만이 가정은 아니라는 이야기도 나눴던 것 같다. 이모도 아이 둘을 낳았지만, 낳을 때마다 내가 고른 아이가 태어난 적은 없었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너희들이 여기 해맑은친구들의집 식구들을 만났던 것처럼, 나도 남편 말고는 식구를 선택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말이다. 피가 섞이지는 않았어도 밥 먹는 식탁에서 우리처럼 재잘거리며 웃음이 넘쳐나는 가족은 드물 거라고도 했다. 그런 것 같다고 동의하는 아이들을 둘러보며 신이 나서 재차 옳다고 눈을 맞추었었다.
허튼 소리를 하는 법이 없는 사순이가 말끝을 흐리던 날도 생각이 났다. “나도 결혼을 하고 싶은데….” 싱거운 소리 말라고 타박할 줄 알았던 이순이도 삼순이도 모조리 고개를 끄덕이며 나도, 나도, 하고 따라 나섰다. 그게 무슨 큰 걱정인가 싶어 대수롭지 않게 대꾸를 했다. “결혼이야 하면 되지.”
“결혼할 때 양가 부모님 앉는 좌석 중에서 신부 쪽만 빌까봐 걱정이 되요.”
먼 미래의 결혼도 결혼이지만, 엄마아빠의 빈자리가 세상에 어떻게 비칠까, 남몰래 숨겨오던 아이들의 두려움이 그대로 들러난 말이었다. 아무 걱정 말라고, 이모든 큰엄마든 그 자리는 비우지 않을 거라고 얼른 답은 했지만, 내가 그 자리를 제대로 채운 적이나 있었던가 자꾸만 혼자서 자책을 하게 되었다. 애들에게 ‘이모’라고 불리기는 했어도 정작 ‘엄마’ 같은 이모이기를 얼마나 바랬었는데, 계약기간이 끝나자마자 곧장 떠나버릴 나를 떠올리는 순간, 아이들과 함께 했던 모든 순간이 미안해져버렸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그룹홈은 내게 분열 그 자체였다. 직장인데 집이고, 집인데 직장인 곳에서 일을 했으니 말이다. 부모와 헤어진, 혹은 분리되어야만 하는 아이들이 최대한 가정과 같은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내 일이었다.
IP : 220.116.xxx.31
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원글링크
    '21.4.20 2:20 PM (220.116.xxx.31)

    https://www.facebook.com/eunhye.seo.982/posts/3879551902114708

  • 2. 다른글
    '21.4.20 2:22 PM (220.116.xxx.31)

    개학을 하고도 한 달이 넘었을 사월인데, 이 아이들이 집 밖을 나서지도 못하고 아웅다웅 갇혀 지낸 지도 벌써 40여 일이 넘었다.
    2월 19일 이래로 외출을 아예 못하고 있다. 학교도 공부도 마뜩잖다던 아이들 입에서 되레 학교라도 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말이 절로 튀어나오는, 희한한 세월을 살게 되었다. 다 코로나 때문이다. 바깥 활동이 부족하다 보니 밤 9시에 잠자리에 드는 8살 막내를 습관대로 재우는 일까지 전쟁이 되어버렸다.
    아이 몸속 에너지가 채 닳지도 않았는데 날이 자꾸만 저물어버리는 거다.
    아까 여기는 집이라고 그렇게 우기긴 했지만, 실상 정부 보조금이나 시민들의 후원금으로 운영하는 구조다 보니, 회계의 투명성뿐만 아니라 사회복지서비스 나름의 전문성 때문에라도 이모(사회복지사)들이 챙겨야 할 각종 행정업무와 서류들은 일정량이 엄격하게 정해져 있다. 아이들의 일상만 돌보는 것으로는 택도 없는 업무를 쳐내야 하는 것이다. 뭐, 그래도 괜찮다. 이게 모두 내 일이니까 말이다. 돌아서면 밥, 돌아서면 밥, 돌아서면 머리카락, 돌아서면 머리카락, 뭐 이 정도도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다. 우리집 어떤 이모라도 각오했던 바다. 아니다. 사실은 죽을 것 같다. 요새 몸이 자꾸 퉁퉁 붓는다. 더군다나 이런 생활의 끝이 안 보인다는 게 더 무서워지고 있다. ‘강력한 사회적 거리 두기 실시 기간’이 당초 예정되었던 기간(4.5)보다 2주 더 연장(4.19)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는데, 두둑하게 비축해 두었던 배짱들이 조금씩 사그라져 가는 것만 같다. 예상 못했던 바도 아닌데 말이다.
    좁은 집안에 수십여 일 갇힌 아이들의 욕구가 팽팽해져 간다.

    https://www.facebook.com/eunhye.seo.982/posts/2954576031278971

  • 3. 아름다운
    '21.4.20 3:31 PM (39.7.xxx.41)

    분이네요.
    외로운 아이들에게 정말 엄마가 되주시네요.
    그런데 계약기간에 얽매인 엄마라니...
    아이들과 함께 하는 동안만이라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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