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누가 살아있는 권력인가??
전우용 페북
‘조강지처(糟糠之妻)’. 술지게미나 쌀겨죽으로 끼니를 때우며 가난한 시절을 함께 보낸 부인이라는 뜻입니다. 옛날에는 남편이 부인을 내쫓을 수 있는 일곱 가지 사유, 즉 ‘칠거지악’이 있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칠거지악’을 범해도 쫓겨나지 않을 세 가지 조건이 있었다는 걸 아는 사람은 드문 듯합니다. 이걸 ‘삼불거(三不去)’라고 했습니다. 요즘말로 하면 ‘면책권’쯤 되겠죠. ‘삼불거‘ 중의 하나가 조강지처입니다. 여성인권이 억압되었던 조선시대에조차, ’부인이 큰 잘못을 범했더라도 가난할 때 결혼해서 함께 가산(家産)을 일궜을 경우에는 쫓아낼 수 없다‘는 것이 기본 규범이었습니다.
박형준씨는 가난할 때 결혼해서 자식들 낳고 살다가 성공한 뒤, 자기가 ’불륜‘을 저질러 놓고 부인과 이혼했습니다. ’칠거지악‘은 자기가 범해 놓고 ’삼불거‘에 해당하는 ’조강지처‘를 버린 것이죠. 그에게 버림받은 ’조강지처‘가 박형준씨 공천해선 안 된다고 피켓 시위를 했던 건 부산에선 잘 알려진 일이라고 합니다. 박형준씨는 자기와 재혼한 처, 재혼한 처의 자식들은 부산의 초호화 아파트인 LCT 로얄층에 살면서 ’조강지처‘ 소생의 자식들은 경기도에서 전세 산다고 ’자랑‘까지 했습니다. 박형준씨가 권력자가 됐을 때, 또 다른 권력을 얻겠다며 나섰을 때, 자기 정치적 필요에 따라 ’조강지처‘ 소생들이 전세 산다는 사실까지 이용했을 때, 그 ’조강지처‘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조강지처‘를 버리는 행위는 한 여성의 인생 전체를 착취하고 버리는 행위와 다를 바 없습니다. 조선시대에조차, ’설령 칠거지악을 범했어도 조강지처를 버리면 안 된다‘는 규범이 만들어지고 통용되었던 건 이 때문입니다. 하물며 본인이 불륜을 저질러 놓고 ’조강지처‘를 버리는 자는 조선시대에도 사람 취급 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한 여성의 인생 전체를 착취한 행위를 ’여성 인권‘의 측면에서 거론하는 관련 ’전문가‘나 ’기자‘가 한 명도 없습니다. 그 '조강지처'의 두려움과 분노, 회복될 수 없는 일상을 안타까워하고 그 '조강지처' 옆에 서 주는 여성단체도 전혀 없습니다. 그저 어안이 벙벙할 따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