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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가끔 운구버스를 보게되면 마음이 슬퍼져요.

가을날 조회수 : 1,500
작성일 : 2020-09-26 13:43:51

사람이 살다가 이세상을 떠나는 것은 누구나 한번은 겪을 일이죠.

가끔 버스창밖에서 앞서서 가버리는 누군가의 운구버스를 보면

누군가의 그 죽음이 울컥 눈물나고 이승에서의 마지막길이

마음이 너무 아파요.

그가 어떻게 살았든, 누구이든지간에 말이에요.


이렇게 날씨가 좋고 화창한 가을날

횡단보도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는데

커다란 검은 나비 한마리가 훨훨 날아와선 제주변을 맴돌더니

곧 제어깨에 앉아서 한참을 떠나질 않는거에요.

무서워서 움찔 어깨를 한번 움직이고 자리를 옮겼는데도

계속 제어깨에 붙어있다가 횡단보도를 반정도 건너자 곧 날아갔어요.

그렇게 버스에 올라 창밖풍경을 바라보니

산등성이가 지나가고, 코스머스가 피어난 들길이 지나가고

곧 저수지를 건너갈때쯤 상조버스가 지나가버리네요.

그럼 아까 어깨위에 한참을 앉았던 그 나비는 방금전 지나갔던 누군가의 영혼이겠구나..

그런 버스도 누군가의 장례식장도 많이 참석해보았는데

잠시 마음한켠에 슬픔이 머물다가 지나가네요.


그리고, 천천히 떠오르는 기억이 있으니,

초라하고 외로웠던 아빠의 장례식.

제가 태어나기전부터, 이미 아빠는 알콜중독자였어요.

인물도 곱고 피부도 희어서 은근히 사람들이 호감을 갖고 다가왔지만

곧 술만마시면 집기들이 부서지고 집엔 쌀한톨도 굴러다니지못하고

오랫동안 불기가 없어 썰렁했던 우리집.

아주 어릴때부터 친척집을 옮겨다니며 더부살이하고

냉대속에 눈치만 보면서 산 우리들에게 그누구보다도 더 심한 욕설과

저주를 퍼붓고 한밤중에 자주 쫒겨나 남의 집 담벼락아래 떨게 만들고

매일을 엄마의 머리채를 잡아끌며 온동네를 다 돌아다녔던 전력이 화려했던 탓에

학교교실문을 열고 나타났던 내게 쏠리던 그 급우들의 눈동자들.


자식들의 버스요금이 너무 아까워서 이빨을 드러내고 아침마다 눈에 불꽃이

피고 술을 마시면 이세상이 전부 내것인양  도끼자루를 찾아 메고 집을 돌아다녔던

아빠가 그렇게 쓸쓸하고 초라한 장례식의 주인공으로 이 세상을 마감하고

드디어 화구속으로 들어갈무렵에도 눈물한방울 안나오더니,

그후로 시간이 지나 가끔 "그 사람은"이란 단어로 머릿속에 떠오를땐

자식이었던 오랜 인연이었던 탓에 불쌍했던 그의 64세의 인생을 혼자

기억속에서 떠올리곤 했어요.

복수가 차서 늘 배가 불러있었던 사람...

그외 여러 기억들이 있고, 굶주려가면서 학대당한 기억들로 어지러운 기억들로

구성되어있는 그사람이고 그로인해 지금도 전 사람들과 어울리는 법을 잘 몰라요.


그렇게 제게 힘들었던 사람인데,

마지막 떠나던 그 날도 참 황급하게 가족들모르게 아파하다 갔던 사람이니.

가끔 보게되는 운구버스를 보면 ,한마리 나비처럼

편안한 길 되시라고 마음속으로 인사드립니다..

IP : 121.184.xxx.138
10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글쎄요
    '20.9.26 1:54 PM (119.198.xxx.60) - 삭제된댓글

    오랜 투병생활로 고통에 몸무림치다 별세하신 분들에게는 죽음조차도
    선물이겠단 생각이 들어요 .

    육신의 고통도 같이 죽으니까요

  • 2. ㅁㅁ
    '20.9.26 2:09 PM (220.79.xxx.8)

    나비 한마리가 망각의 강을 휘젓고 갔네요
    아픈 기억도 연민으로 승화시킬 줄 아는 원글님
    참 잘 살아오신 것 같네요

  • 3. 저도
    '20.9.26 2:12 PM (121.163.xxx.115) - 삭제된댓글

    운구차를 보면 마음이 착찹해요.
    망자는 이제 아픔도 슬픔도 없는 편한곳으로 갔을테고..그런데 저 차안에 있는 남은 사람들은 많이 슬프겠다 싶고.

    그런데 님,글을 참 잘 쓰시네요.술술술술 읽히는게 수필을 읽는듯 했어요.

  • 4. 원글
    '20.9.26 2:13 PM (121.184.xxx.138)

    가끔 말이에요, 저도 아이를 키우지만 그 불끓는듯한 저주와 욕설을 아이에게 퍼붓는 부모의 심정을
    지금도 전 모르겠어요, 종로에서 뺨맞고 한강에서 눈흘긴다는 식으로 아이들에게 화풀이를 했던 엄마와 아빠를 전 어릴때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했어요, 그런 제가 그당시에 맘을 다스렸던것은 많은 책들이었던 것같아요. 그 책구절들 사이를 혼자서 헤매고 다녔던 그 어린날들이 있어서 제가 이렇게 차분하게 잘 사는거겠지.
    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지금도 사람들에게 종종 혼자 상처받고 혼자 물러서는 성격은 잘 고쳐지지않아요..

  • 5. ..
    '20.9.26 3:01 PM (211.36.xxx.232)

    원글님
    꼭 안아주면서
    저도 위안받고 싶습니다 ㅠㅠ

  • 6. 저도
    '20.9.26 3:12 PM (27.124.xxx.114)

    환경이 좀 다르긴 하나
    공감되는 면이 많네요. 거의 다.
    무엇보다, 차분하시다니 부러워요.

  • 7.
    '20.9.26 3:41 PM (121.133.xxx.125)

    손이라고 꼭 잡아드리고 싶네요.

    힘든 세월 견디고 잘 살아오셨다고요.^^

    이젠 더 상처받지 말고

    당당히 밖으로 나오세요. 비상 ^^

  • 8.
    '20.9.26 4:45 PM (211.117.xxx.241)

    번잡한 차도 한 가운데 덩그라니 놓여있는 신발 한짝보면 눈물이...다급해서 뒷정리도 못한 사고의 흔적같아서...

  • 9. 토닥토닥
    '20.9.26 6:47 PM (14.42.xxx.123)

    힘든세월을 살아오셨지만 마음이 아주 따뜻한 분같아요.
    마음에 조금이라도 남아있을지도 모르는 우울과 불행은 그날 그 나비가 가져갔을거에요.
    잘 살아가실거라고 기도해드릴게요.

  • 10. ...
    '20.9.26 7:24 PM (116.36.xxx.231)

    원글 읽는데 잔잔하면서도 슬픔이 가득차 있어서 저도 울컥해지네요.
    인생이.. 관망하는 태도로 보면 잠깐 소풍인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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