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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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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공유합니다

퍼옴 조회수 : 588
작성일 : 2020-08-23 09:20:30
어떤 기자의 ‘방역 실패의 1차적 책임은 국가에 있다’는 천진난만한 글을 우리나라 언론의 함량미달과 결부시켜 지적하려고 한다. 좋은 글이 뭐라는 말은 못해도 좋은 기사에 어떤 질문이 담겨야 하는지는 기본은 말씀드릴 수 있으니 길어도 한 번 쯤 읽어주셨으면 좋겠다. 공유도 해주시면 감사하다. 간만에 키배도 뜰 각오다.

언론의 역할과 언론의 철학이 한국에서는 무척 단순한 형태로 왜곡돼 있는데, SNS에서 자기주장하기 좋아하는 기자는 물론이고 경력이 좀 되는 ‘대’기자일수록 지면에서도 이 왜곡의 중력에서 자유로운 사람을 보지 못했다. 가장 많이 틀리는 부분이 두 곳이다. 일단, 언론의 본령은 ‘권력’을 감시하는 것이지 ‘정부’를 감시하는 것이 아니며, 국가는 행정부와 동의어가 아니다. 권력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혐오라는 개념도 이해하고 있지 못하고 국가폭력을 이야기할 때 행정부의 힘과 행태 외의 주제를 다루지를 못한다. 나름대로 업계에서 권위가 있고 공로가 있다는 사람들, 말을 잘해서 SNS에서 인기를 얻은 사람들일수록 우물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이유는 이해한다.

대부분 50대 이상으로, 나이를 잡수셨다. 한때 한국의 그 모든 권력은 정부로 수렴했다. 독재란 곧 행정부가 국가가 되는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나고 자랐거나 이런 상황에서 쓰인 저작물로 교육을 받고 심취하면 웬만한 사람들은 그 시대에 단단히 묶일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저 사람들은 그냥 웬만한 사람들이고, 사실 펜과 키보드를 쥐어줘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다. 한 분야에서 전문성으로 먹고 살려면 그 분야에서 웬만해서는 안 된다. 30년 전의, 50년 전의 개념을 다룬 콘텐츠에 묶여서 허우적거리는 웬만한 사람들이 자기 분야의 전문인이라고 입과 손을 놀리고 있는 것이 한국 언론계의 비극이다.

글을 쓸 때는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 ‘방역 실패의 1차적인 책임이 국가에 있다’라는 간단한 문장을 쓰기 위해서 해야 할 질문이 벌써 수십 개다.

① 어느 요소의 어느 수치를 방역 실패라고 할 것인가?
①-2. ‘어느 요소’의 ‘어느’에는 무엇을 포함할 것인가?
①-3. 그 요소들의 사회적 형성 구조는 어떻게 되어 있고, 현황은 어떻고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는가?

② 요소별 책임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②-2. 책임의 현실 구현 형태는 공식적인 사과인가? 인적 경질인가?
②-3. 요소별 책임을 다 하기 위해서는 어떤 그룹의 어떤 협조가 필요한가? 그 협조는 잘 이뤄졌는가?
②-4. 1차는 무엇이며, 2차는 무엇인가? n차까지 있는가?

③ 국가는 어떤 집단을 국가라고 하는가?
③-2. 국가의 대립항이 있는가? 시민사회는 국가인가, 국가가 아닌가?
③-3. 시민사회가 국가가 아니라면 방역/책임에 어느 정도의 몫이 있는가?
③-4. 시민사회가 국가라면 어느 정도의 대처 능력을 요구받는가?

④ 우리 사회에서 권력은 어떻게 분포하는가?
④-2. 권력이 분포된 요소들 별로 방역의 몫과 기대받는 신뢰의 정도는 어떠한가?

당장 생각나는 것만 이렇다.

SNS에서 떠들썩한 기자의 글에서는 이런 고민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을 뿐더러, 국가와 행정부를 동일하게 생각하고 있음이 느껴진다. 행정부는 국가지만 국가는 행정부가 아니다.

세계적인 위기 상황에서 당연한 명제가 하나 있다.
모두가 피해를 입는다.

모두가 피해를 입게 되어 있기 때문에 지금이 세계적인 위기인 것이며, 그 피해의 정도가 평등하지 않은 것이 사회 문제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모두는 피해를 입는다. 하다못해 요새 신 위에 있다는 갓물주 선생님들도 장사가 너무 안 돼서 가게세가 안 들어오면 당장 고정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워진다. 그렇다면 이해당사자인 우리들은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움직여야지, 단 하나의 피해도 용납할 수 없다는 태도를 가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가능한 말을 해야 할 것 아닌가. 이념논쟁처럼 내적 정합성으로 모든 게 해결되는 한가로운 상황도 아니고 실제로 죽는 사람이 발생하고 있는 지금 당장의 문제인데 말이다.

국가의 일부일 뿐인 행정부는 (언론사에서 회사의 행정업무 따위는 조금도 귀히 여기지 않고 계시는 높고 귀하신) 기자들과 달리 공무원이라는 손발을 부려 행정이라는 ‘허드렛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국가를 이루는 다른, 동등하고도 평등한 집단인 사법부와 국회와 시민사회에 일정 정도의 협력을 요구한다. 그 요구사항에는 국가를 구성하는 모든 집단이 공동선을 위해 움직일 것이라는 신뢰를 전제한다. 만약 해당 문장을 적은 기자가 기자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다면 자신의 판단을 요소별로 쪼개어 책임을 분배한 후에 글을 썼을 것이고, 행정부의 실책이 가장 크다고 판단을 내렸을 때에도 ‘국가’ 라는 거대한 단어를 한낱 행정부 따위에 부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피해가 최소화되고 있는가? 나의 기준에서는 그렇다. 다른 국가들에 비하여 최소화되고 있다. 국가는 방역에 실패하고 있는가? 나의 기준에서는 그렇지 않다. 행정부는 행정력을 최대한 동원하고 있으며, 시민사회는 행정조치(마스크를 철저히 사용하라든가, 유흥시설 출입을 줄이라든가)에 비교적 협조하고 있다. 이 유기적이고 단단한 연결고리를 두고 행정부가 잘하는 게 아니라 시민사회가 잘했다느니 하는 헛소리는 행정이 무엇인지 한 번도 고민해보지 않은 온실 속 화초들이나 할 수 있는 소리다. 회사에 가면 비품이 알아서 챙겨져 있고, 휴가계를 올릴 땐 서류 양식이 알아서 주어지고, 사무실 건물 화장실은 언제나 자연스레 청소되어 있고 휴지가 구비돼 있는 씨발 높으신 전~문~직~ 말이다.

(웬만해 빠진 주제에. 회계사가 회계 서류를 볼 때 웬만할 수 있나? 그런데 왜 기자는 글을 쓸 때 대부분 웬만한가?)

이번 아웃브레이크에서 임계치를 넘겨 터져나간 요소는 어디인가? 국가의 일원인 사법부와 역시 국가의 일원인 종교단체의 직무유기다.

(자극적인 제목장사하기 바쁜 언론사는 그냥 빼겠다. 항상 유체이탈화법으로 국가니 권력이니 하면서 지적질하는 꼴을 보면 본인들이 국가라는 정체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거나, 가장 큰 권력집단의 일원이라는 사실은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듯하다. 신뢰에 충실할 마음을 먹은 적이 없는 것 같으니 빼는 게 서로 편할 것 같다. 신과 같은 초국가적 집단이라고 치자.)

교회 소모임 금지를 풀어줬다는 걸 행정부의 실책으로 들곤 한다. 그럼 다른 소모임은 규제하지 않으면서 교회만 규제할 수 있다는 근거는 대체 어디에 있는가? 이걸 바로 종교 탄압이라고 한다. 모든 소모임을 허용할 때는 시민에 대한 신뢰를 전제한다. 그런 신뢰를 하지 말아야 하는가?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니까? 경제학자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다. 경제학자가 그런 소리를 하면 이해를 하겠다. 똑같은 신뢰 하에서 똑같은 규제 해금을 했는데 어떤 집단에서만 아웃브레이크가 발생한다면 기자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해당 집단의 특성을 조사하고 같은 특성을 가진 집단을 머릿속으로 리스트업해봐야 한다. 앞으로 행정부의 조치가 차별적이고 선별적으로 이뤄져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를 논리적으로 결론 내봐야 한다. 자신의 결론이 보편적인 인권에 어디가 배치되고 어디가 들어맞으며, 앞으로 어떤 영향이 생길지 각종 관점에서 수 개의 시나리오를 그려봐야 한다. 저 문장이 그런 문장인가? 삼 대가 악성 변비에나 걸려라.

이 길고 긴 위기에서 행정부의 실수는 없었는가? 있었을 것이다. 왜냐면 완벽한 존재는 없으니까. 그렇다면 비교집단을 타국가로 잡았을 때 피해가 최소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어떤 집단의 실책을 지적하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주 구체적으로, 다른 집단과의 유기적인 관계를 고려해 균형 있게 언급하며, 정확한 수치를 들어 시간 순으로 인과관계와 상관관계를 구분해 묘사해야 한다.

- n월 n일부터 어디에서 nnn명 발생한 확진자 중 nn%(추정치, 추정의 근거는 무엇이며~)는 xx이라는 조치 때문에 허가된 xxx를 통해 xx에 방문했다. xx에서 발생한 확진자가 nn명 내지는 nn%인 이유는 이런 괜찮은 현장 조건 때문에 전문가 의견 내지는 연구 결과에서 기대하는 값보다는 적다/혹은 미흡한 조건 때문에 많으며 후속적으로 어떠한 행정적 조치가 취해질 예정이며, nn명의 코호트는 xx라는 특징을 지니는데 이 특징은 어떠하며~ 근거의 참조자료 업데이트는 언제 어디에 됐으며~

- 내가 이런 취재 결과를 쉽고 재밌게 전달하려고 하는데 선택한 단어는 무엇이며 이 단어는 이 글의 주제인 xx와 밀접하게 연결된 학문/산업계/현장에서는 어떤 정의를 갖고 있으며 오해의 소지는 무엇이 있으며 그럼에도 내가 이 단어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며~

이런 명확한 문장이 센서스 특성에 따라 수십 개 적히고 나서야/내 글의 모든 단어에 대해서 답변이 서고 나서야 단 한 마디 문장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취재는 괜히 하는가? 저런 주석을 달다 보면 각 분야의 전문가나 현장 방문 없이는 만들 수 없는 그림이 나오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그러면, 방역의 1차적 책임이 국가에 있다는, 일견 멋있어 보이는데 사실은 어떤 말도 아니고 어떤 정보값도 없으며 쓴 사람만 나 이런 사람이야~ 를 뽐내는 개소리는 절대 쓰일 수 없는 법이다. 나는 국가가 아니냐? 당신은 국가가 아니야?

글을 많이들 무시하지만, 사실 저걸 하려고 하면 어렵다. 품은 많이 들고 생산성은 없으며(당장 돈은 안 되며) 몸매와 성격은 망가진다. 그런데, 그래도 그걸 할 줄 알라고 길러낸 사람들을 다른 나라에서는 언론인이라고 한다. 국가와 행정부를 동치시키며 은근슬쩍, 사실은 국가를 이루는 다른 평등하고도 동등한 집단을 신뢰할 수 없는 개돼지로 후려치는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 사법부와 우리 국회, 우리 시민사회는 이성적인 판단과 책임을 기대할 수 없는 수준 낮은 존재인가? 국가를 호명할 때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제외돼버리는 아버지 국가의 보호될 어린 자식들일 뿐인가? 글이란 무섭다. 이렇게 과잉된 자의식과 우월의식, 엘리트주의가 물큰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글로 공인된 권력이 있는 사람이 SNS건 어디건 글을 쓸 때는 단 한 순간도 문장 하나, 단어 하나에 마음 속으로 주석과 근거를 달아둬야 한다. 자신의 문장을 머릿속에서 쪼개고 쪼개서 더이상 쪼개질 수 없을 때까지 쪼갠 다음 그걸 하나하나 질문으로 만들어서 답을 해나가며 쌓는 것이 ‘공식적인 글’이고 ‘정성적 분석’이다. 개 같은 월급 도둑놈들.

항상 대중이 무지몽매하고 환경이 급변해서 레거시 미디어가 순결한 피해자가 되어 먹고 살기 힘들어졌다고 씨부리고 다니지만 신문열독률은 한 때 무엇보다 높았다. 그럼 그 때 뭐하고 자빠져 있었는데. 행정을 발가락의 때만도 못하게 취급하고 품질에 대한 고민, 변하는 시대에 대한 질문 하나 안 하고 부른 배 두들기고 있다가 개박살이 난 주제에 지랄 염병을 떨고 있다.

좋은 글을 원하는 사람들은 예전보다 지금이 더 많다. 교육 수준이 높아졌고 정보들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언론이 안 팔리는 이유는 첫째로 전달의 도구를 시대에 맞춰 사용할 생각이 전혀 없는 오만함 때문이고 둘째로 그냥 좋은 글을 못 쓰기 때문이다. 무슨 글이 좋은 글인지도 모르고 단어 하나 하나 멋만 부렸지 진지하게 공부할 생각도 없으면서 무슨 언론의 위기 어쩌고.

아, 사상검증 하고 지나간다. 문재인 개새끼. 현 행정부의 정책과 민주당의 행태에 대해서 맘에 안 드는 부분이 뭐 있냐고 하면 그건 제발 따로 물었으면 좋겠다. 사랑이 증오로 변한 증거라도 대는 거 아니면 자꾸 너 까는 글에 문재인 끌어들이지 말고. 그러고보니, 이것 봐라. 사상검증은 지금 누가 하고 있나. 권력을 누가 가졌는지 이보다 더한 증거가 있을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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