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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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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살아 좋은 시간

당분간오후반 조회수 : 3,590
작성일 : 2019-11-23 00:26:13

어릴 적엔 참 절실히도 '혼자만의 방'을 원했어요.

여러모로 귀가 얇아(?)소리에 퍽이나 민감해서 엄마아빠가 다투는 소리, 외할머니의 TV소리, 언니의 통화 소리, 동생의 게임 소리에서 벗어나 혼자 공부하고 책을 읽고 일기나 편지를 쓰고 라디오에서 흐르는 음악을 듣고 싶다는 사춘기의 소망이 참 강렬했던 것 같아요.

때로는 잠깐 그렇게 된 적도 있었는데 그 순간들의 행복이 몰래 먹는 사탕처럼 참 달콤했던 것도 같으네요...

세월이 이렇게 흘러 독립 아닌 독립의 형태로 혼자 지내게 된 지 7년 정도 된 것 같아요.

집에서 하게 되는 작업들이 많아져 계속 도서관이나 외부로 떠돌아 작업할 수만은 없게 되고 사실 집이 아닌 밖에 있으면 불편하고 불안해 능률이 오르지 않고 하다보니 고요한 시간은 한 밤. 그렇게 밤도깨비로만 일을 해야 해 곰곰 궁리가 많아졌어요...같은 일을 하는 선배언니랑 일할 때는 같이 한 공간에 있었지만 그 언니가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면서.. 작업 및 작업공간을 분리해야 했고 그리고 저도 가족들과 이사를 계획하게 되면서 드디어 혹은 어쩔 수 없이 나 혼자 기거하는 집을 마련해야 할 여러가지 필요와 이유가 생긴 거죠....

( 가족들과는 방 3개 분의 집 살 돈 밖에 없는데 우린 다 성인이니 당연히 각자의 방이 필요하고 그런데 내 방은 없는 것 같은 상황이 되더라고요. 꼭 내 방만 그렇게.^^)


가족을 위해서 대개는 다 풀지만 그래도 은근히 꿍쳐놓은 제 돈이 있어서..가족들과 의논해 결국 혼자 집을 구했고 그렇게 작고 낡은 집에서 혼자 지내게 되었네요. 혼자만의 집으로 이사할 때는 그래도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신나면서도 서럽고 왈칵 겁나면서도 뭔가 희망이 생기는.

물론 걸어가도 좋을 거리에 가족들이 살아서 주 볼일은 가사도우미 이지만 산책 삼아도 가고 저녁먹고 오기도 하고..그러다 일 많으면 택배만 보내고 삐지면 안 보고 아프면 못 가고 그렇게 따로 또 같이 우리 가족은 우리답게 지낸답니다..


요 근래..인생의 슬럼프가 오고 마음이 복잡하고 몸도 피곤하고 혼자만 있다가

우리 집에 오랜만처럼 가서 가족들과 보내고 이틀을 자고 지금 돌아왔는데 들어오는 골목길이 여느 때처럼 외롭지는 않으네요. 마치 명절처럼요.

그냥 내가 당연히 와야할 곳에, 올 곳에 온 것 처럼 익숙하고 편안했어요.

사실 아침(사실 꼭 아침은 아니지만^^)에 일어나면 여기가 어디지..왜 난 여기에 있지...이 집에서의 나는 가끔 그랬거든요. 왜 내가 여기 혼자 이렇게 있어야 하는 건지 알다가도 모르겠을 이상한 마음이 들었고 그런 마음이 드는 아침엔 하루를 포기하게 되었어요.

돌아와 지금은 혼자 누워 조용히 음악을 듣고 있으려니 그 때 혼자만의 방을 절실히도 원하던 그 사춘기 아이 때 같은 기분이 들어요.

다시 집으로 들어가야 하나, 내년엔 계약만료니 그렇게 할까...이리저리 좀 생각이 많았는데

당분간은 이 기간을, 내 인생 중 이 시간을 연장해도 좋을 것 같다고 혼자 고개 끄덕거리고 있네요.

그러다보니 이런 생각.

어쩌면 나는...하나도.. 내 아이 때의 소원을 나에게 이뤄준 것이 없는 것 같아.. 어릴 적 나라는 그 아이에게 참 미안했는데

이 소망 한 가지는 그래도 들어준 것도 같네요.

혼자만의 방. 아무 소리도 없이, 혹은 혼자의 소리가 흐르는 그런 작은 방 같은 집. 공간. 시간. 을 꼭 갖을거야 했던..

때로는 이토록 불안한 삶이지만 그래도 그 때의 약속은 나에게 내가  지켜준 것 같아.. 혼자 웃어보는 밤입니다.. 






IP : 61.106.xxx.60
10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가을가을해
    '19.11.23 12:55 AM (211.111.xxx.32) - 삭제된댓글

    글이 참 좋네요
    오랫동안 혼자 살았어도 아침에 눈 뜰 때면 가끔씩 낯설고 무섭고... 때로는 숨막히는 적막과 외로움도 싫고
    그러다 가족을 만나면 시끌벅적함에 마음이 따스해지다가도 다시 혼자가 되어 돌아온 나만의 공간이 주는 쓸쓸하지만 편안함에 저도 익숙해진 것 같아요 ^^

  • 2. 가을가을해
    '19.11.23 12:57 AM (211.111.xxx.32)

    글이 참 좋네요
    오랫동안 혼자 살았어도 새벽녘 잠에서 문득 깼을 때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여전히 낯설면서 무섭고... 때로는 숨막히는 적막과 외로움도 싫고
    그러다 가족을 만나면 시끌벅적함에 마음이 따스해지다가도 다시 혼자가 되어 돌아온 나만의 공간이 주는 쓸쓸하지만 편안함에 저도 익숙해진 것 같아요 ^^

  • 3. 예쁜
    '19.11.23 1:26 AM (211.178.xxx.25)

    글이네요.
    어떤 곳이든
    내가 있는 동안은 그곳을 진심으로 사랑하는게
    중요하더군요.
    계약만료일까지 아낌없이 사랑해주세요.
    깨끗이 쓸고닦고 내한몸 품어주어 고맙다는
    인사도 하고...

  • 4. 당분간오후반
    '19.11.23 1:27 AM (61.106.xxx.60)

    좋은 말 해주셔서 고맙습니다...가을가을해 님. 여전히 문득 깬 새벽은 참 낯설어요. 화장실 가기 싫어 버티는 게..마치 어린애처럼 화장실 가기 무서워서 그러는 것 같더라고요 저는. 무슨 말씀인지 후배인? 저도 참 잘 알 것 같아요...
    가족들과 하루 더 잘까 어차피 주말이고...하다가도 돌아가야지 하면서 연어처럼 여기로 돌아와 버렸네요.
    돌아오며 터벅터벅하지만 집이 그대로 있다는 사실이 좋아서 벽도 쓰담쓰담, 방문들도 쓰담쓰담..나 없이 혼자 잘 지내고 있어줘서 고마워. 하며 저는 집이랑 인사하고 그래요. 오늘은 특히 더 고맙네요..왜 그런지 저도 모르겠어요^^

  • 5. //////
    '19.11.23 1:30 AM (112.144.xxx.107)

    글이 참 좋아요.
    저랑 같은 직종에 종사하는 분이 아닐까 싶고.
    저도 혼자 있는 시간이 제일 좋아요.

  • 6. 당분간오후반
    '19.11.23 1:34 AM (61.106.xxx.60) - 삭제된댓글

    211.178.님 맞아요..내가 있는 동안은..이라는 들어요.
    집에 가서 아부지랑 애기하다가 우리 예전에 살던 그 집들..머물던 곳들..우연히 얘기하게 됐는데 다 빌라로 재건축되고 등등.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내가 파괴왕인가봐 아빠. 어떻게 난 어렸을때부터 우리 지금까지 조금이라도 살던 집들이 다 한개도 그대로 안 있어? 우리 집이랑 지금 내가 집만 그대로로 그대였으면 좋겠다며 웃었어요. 내일은 마당청소하려고요. 이러다 도깨비 나오려고요. 이 집 참 의지하는데 잘 못해주고 있어요. 집도 요즘은 느낄 것 같애요.ㅋ 그렇게 할게요 꼭이요.

  • 7. 당분간오후반
    '19.11.23 1:38 AM (61.106.xxx.60)

    211.178.님 맞아요..내가 있는 동안은..이라는 생각이 정말 들어요.
    집에 가서 아부지랑 얘기하다가 우리 예전에 살던 그 집들..머물던 곳들..우연히 얘기하게 됐는데 다 빌라로 재건축되고 등등.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내가 파괴왕인가봐 아빠. 어떻게 난 어렸을때부터 우리 지금까지 조금이라도 살던 집들이 다 한개도 그대로 안 있어? 우리 집이랑 지금 내가 집이라도 그대로고 조금이라도 그대로였으면 좋겠다며 웃었어요. 내일은 마당청소하려고요. 이러다 도깨비 나올 것 같아요. 이 집 참 의지하는데 잘 못해주고 있어요. 집도 요즘은 느낄 것 같애요.ㅋ 그렇게 할게요 꼭이요.

    112.144님.
    전 이직 생각중입니다.같다면 말이죠^^
    그래도 그건 지금 일을 위한 다른 방편이 되겠지만요^^
    그쵸..혼자 있는 게 그래도 제일 그대로의 나 같아요. 맞아요. 제일..좋아요..잘 못하는 시간이지만 그래도 좋아요.

  • 8. ...
    '19.11.23 1:49 AM (58.143.xxx.95)

    좋네요.

  • 9. 당분간오후반
    '19.11.23 2:19 AM (61.106.xxx.60)

    ...님. 네. 저도 지금 좋아요^^

    사실 이틀동안 가족들 있는 우리 집에서 잘 못 잤어요.. 수다떨다가 그런 것도 있지만..그냥 잘 못 잤어요. 나 혼자의 집에 오니 다리도 넘 무겁고 눈도 넘 무거워 지기 시작. 사람은 참 이상한 것 같아요.이상한 명절같은 기분이었는데..같다오면 괜히 어쩔 줄 모르겠는. 그래도 가족들과 있어서 참 좋았어요. 이젠 저 혼자 좋아져야 할 것 같아요. 내가 원한 삶이니까요. 이건.. 어찌하든^^

    https://www.youtube.com/watch?v=yhGCk1Nlyfw
    Mojave 3- Love Songs on The Radio
    요즘 자꾸 뭔가를 틀어놓고 자는 버릇이 생겼어요.1년째 이러고 있네요. 음악말고 떠드는 소리를 듣기도 하고 아니고.. 또 음악 틀어놓고 자기도 하고..일어나면 찌뿌둥하고 ㅋ
    오늘은 이 곡을 틀어놓고 자요. 일부러 잘 안 듣던 곡이었는데..듣고 싶어졌어요. 여러분들..혼자여도, 그래서, 편안한 밤 되시길요.

  • 10. 혼자여도
    '19.11.23 11:04 AM (112.149.xxx.254)

    그란 마음 정갈하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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