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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어렸을적 과외 선생님께 죄송했던 일

Ceprr 조회수 : 2,493
작성일 : 2019-11-13 02:20:40
이게 왜 갑자기 생각나는지..

저 중1때 저희집 정말 형편이 어려웠어요
원래는 상가 용도로 쓰이는 단칸방에 세들어 사는 처지였고
부모님은 저랑 제 동생 건사한다고 초등학교때부터 어린 저희를 남겨두고
일 나가셔야 하는 처지.
떠올려보면 그때 집에 적지않은 빚도 있었어요

그당시 5천원에 후라이드 치킨 1마리였고
500원 추가하면 반반치킨 먹을 수 있었는데
500원도 없어 항상 반반말고 후라이드를 시켰어야 했어요
그것도 저나 동생 생일때만.. 1년 2번..

당시 학교에서 저소득층 학습도우미로 대학생들을 배정해주곤 했는데
그나마 제가 공부머리가 조금 있었어서.. 학교에서 상위권 학생들 대상으로 해주는 무료 과외를 배정받았었어요
같은 지역 대학 다니는 2학년 언니였는데.
제 수학과외 6개월 정도 해줬어요

어느날 엄마가 구청에서 선물세트를 받아왔는데 도브 샴푸린스 세트였어요.
엄마는 그걸 제 과외선생님한테 새해 선물로 주자고 하고
찬장에 올려놨었지요.

그 당시 우리가족은 전부 빨래비누로 머릴감고 식초물로 헹구던 때였는데
생전 한번도 못써본 샴푸가 그때 마음에 너무 궁금한거예요
학급 친구들 머리에서 은은하게 풍기던 샴푸향이랑 윤기나는 머릿결
샴푸린스 쓰면 나도 그렇게 되려나 하는 호기심에
한번 몰래 그 샴푸린스로 머릴 감아봤는데
세상에 너무 좋더라구요

비누로 감으면 머리가 뻑뻑한데
샴푸린스로 감으면 마치 미역줄기처럼 머리가 부들부들..
향은 또 얼마나 상큼한지요

정말 그러면 안되지만
엄마 몰래 3번 정도 그걸 몰래 짜서 썼어요
엄마는 찬장애 놔두고 까맣게 잊었겠죠

결국 새해 선물로 그걸 과외선생님한테 건넸는데
말을 할까말까.. 하지만 말하면 혼날까봐 두려워서 어린맘에 결국은 모른채 했었던
그때 구질구질하고 철없었던 제 모습이 떠오르네요

대학생이었던 그 언니는 받자마자 알았을텐데요
그걸 누가 이미 썼다는걸요
그때 왜 사실대로 말 못했었는지
어릴적 제 자신이 참 밉고 구질구질해요

갑자기 잊었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이제는 이름도 잊어버려 까마득한 그 과외쌤께
연락이 닿을 수만 있다면 그때 정말 미안했노라고.
사과하고 싶어요


스스로 성공해서
좋은 대학 나오고, 좋은 직장 다니고
풍족한 삶을 살고 있는 지금에서야
갑자기 떠오르네요 그때 기억이
참 궁상맞고 비겁했었네요 제가


IP : 64.52.xxx.7
5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막돼먹은영애22
    '19.11.13 2:27 AM (175.223.xxx.185)

    어떤 풍족하ㅡ한삶을살고 잇나요?

  • 2. Ceprr
    '19.11.13 2:29 AM (64.52.xxx.7)

    풍족하다는건 상대적이겠죠?
    그때에 비해서는 풍족하게 살고있어요
    먹고싶은거 먹고.. 사고싶은걸 내 힘으로 사고

  • 3.
    '19.11.13 2:42 AM (1.227.xxx.171)

    글을 읽으며 마음이 찡했어요.
    과외 선생님도 82 하고 계실 수도...
    과외 선생님도, 원글님도 행복하시기 바래요~~^^

  • 4. Dfg
    '19.11.13 3:04 AM (223.62.xxx.56)

    궁상맞지도 비겁하지도 않아요.
    그냥 어렸던 거예요.

    그 선생님은 알았더라도
    궁금해서 아이가 써 봤구나 이해했을 거예요.
    설사 아이가 썼다고 생각하지 않고
    조금 써보고 줬다고 생각하더라도 기분 나쁘지 않았을 거예요. 보면 알잖아요, 남아서 너나 써라 하고 준 건지 자기도 안 쓰고 아낀 걸 준 건지.

    선물로 받은 걸 안 쓰고 잘 두었다 대학생 선생님에게 주려던 어머니의 마음이 참 귀하네요. 가슴이 뭉클할 만큼.
    그 마음이 선생님에게 충분히... 전해졌을 거예요.
    빨랫비누로 머리 감던 가족이 안 쓰고 준 선물세트. 동화처럼 고운 이야기예요, 원글님. 선생님은 충분히 기쁘게 기억할 거라고 저는, 생각해요...

  • 5. ..
    '19.11.13 8:57 AM (14.47.xxx.136)

    원글님 괜찮아요
    어렸을 때 일이고 어린 맘에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니까. 어린 시절 원글님은 미워하지 마세요

    제가 그 과외선생님이었다면
    알았어도 원글님. 상황 알아서 마음 안 상하셨을 겁니다

    구질구질 하다뇨 슬픈 이야기인데요

    그 때 어리고 힘들었던
    아이를 분리해서

    어른이 된 입장으로 이해하고 감싸주세요
    과거의 아이가 지금 성인이 된 원글님과
    똑같지 안하요 동일인이지만

    그 때 지금의 나와 다른 어리고 미숙한 아이
    내가 과거로 돌아가 그 때의 어린 나를 본다면
    괜찮다고...너무 부끄럽게 생각말라고
    안아서 도닥도닥 해줄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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