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토 대학살 (1923년) - 일본에서 조선인 상대
간토 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건은 간토 대지진(1923년) 당시 혼란의 와중에서 일본 민간인과 군경에 의하여 무차별적으로 자행된 조선인을 대상으로 벌어진 대대적인 학살 사건이다. 희생자 수는 약 6,000명 혹은 6,6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수만명의 희생자가 나왔다는 주장도 있다.
** 난징 대학살 (1937년~1938년) - 중국
난징 대학살이란 중일 전쟁 때 중화민국의 수도인 난징을 점령한 일본이 군대를 동원해 중국인을 무차별 학살한 사건이다. 이로 인해 약 30만 명의 중국인들이 학살되었다. 1937년 12월 13일부터 1938년 2월까지 6주간에 걸쳐 이뤄졌으며, 1939년 4월에는 1644 부대가 신설되어 생체실험 등이 자행되었다. 오늘날 중국에서는 이를 난징 대도살이라고도 부르며, 일본에서는 난징 사건으로 불리고 있다. 서구권에서는 아시아 홀로코스트라고도 한다.
** 숙칭 대학살 (1942년) - 싱가포르
숙칭 대학살은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2년에 싱가포르를 점령한 일본군이 2월 18일에서 3월 4일 사이에 싱가포르에 거주하던 중국인 화교들을 조직적으로 학살한 사건을 말한다. 숙칭 대학살 사건 이후, 학살은 말레이시아계 중국인 화교들로 확대됐다. 이 학살로 희생된 사람 수에 대해 의견이 분분한데, 일본 정부 측에서는 약 4 ~ 5천 명이 학살에 의해 희생됐다고 추산하고 있으며, 싱가포르에 거주하는 화교 측에서는 약 10여만명이 학살됐다고 추산하고 있다. 전후 학계에서는 약 2만 5천 명에서 5만 명 사이의 중국인 화교들 및 싱가포르인들이 학살된 것으로 보고 있다. '숙칭'(중국어: 肅清)의 의미는 '일본인의 중국인 숙청'을 의미한다.
** 마닐라 대학살 (1945년) - 필리핀
마닐라 대학살은 제2차 세계 대전 중인 1945년 2월에 필리핀에서 퇴각하던 일본군이 필리핀 마닐라의 민간인에게 자행한 약탈, 강간 및 학살 사건이다. 많은 동서방의 신빙성 있는 자료에 따르면, 이 학살에 따른 희생자 수는 약 10만 명에 달한다. 이 사건은 미군 약 1,000명과 일본군 약 16,000 명이 전사한 마닐라 전투 중 발생한 최악의 사건이었다. 일본의 우익은 미국 측의 군사 행위에 사건의 원인이 있다거나, 미국 측 폭격에 의한 희생자 수도 많다고 주장하며 일본군의 학살 사실을 부인하거나 축소하려 애쓰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