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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 전우용님 페북2 (이영훈씨에 대한 15년 전 반박 글)

... 조회수 : 1,122
작성일 : 2019-07-23 15:44:57
"일제강점기 대다수 한국인은 일본을 조국이라고 생각했다. 징용 노동자도 위안부도 '자발적'으로 응한 사람들이다."라고 떠드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런 자들은 '징용'이 무슨 뜻인지도 모릅니다. 징집, 징발, 징병 등에서 보듯, '징'자에는 이미 '강제로'라는 뜻이 있습니다. 일본 기업의 노동력 수탈에 '자발적'으로 응할 사람이 많았으면, '징용' 자체가 필요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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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개량의 매력과 함정' 중

근대 과학에서 ‘숫자’는 대단히 매력적인 도구이다. 그것은 모든 사물과 사건을 측정할 수 있고 계량할 수 있는 대상으로 전환시킨다. 근대 과학자들은 크기와 무게, 속도와 빈도, 화폐가치나 생산량으로 측정하지 못할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것으로 전제한다. 모든 사물과 사건은 수집과 분류, 재배열과 수학적 종합의 과정을 거쳐 ‘평균적’ 수치와 ‘표준적’ 수치로 전환된다. 숫자는 이제 ‘표준적인 것’에 대한 절대적 기준이 됨으로써 모든 가치판단에 선행하는 ‘객관성’의 체현체가 된다. 이 객관성은 ‘표준적이고 평균적이며 보편적인’ 사건과 사물, 사람들 속에서 ‘일반적 진리’로 통용된다. 그러나 숫자는 ‘현상’을 그럭저럭 기술할 수는 있지만, ‘본질’을 설명해 주지는 못한다. ‘산술적 평균’ 역시 특정한 역사적 상황 속에서 만들어지고 지속되며 재생산되기 때문이다.

근래 식민지시대사 연구에서도 ‘평균적인’ 보통 사람들에 관심을 기울이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 연구의 결론은 대개 유사하다. 식민지 시대에도 ‘보통’ 사람들은 신문물에 열광하고 연애와 사교에 열중했으며 경제적 성취에 몰두했을 뿐, 민족해방운동이니 민족문제니 하는 것에는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같은 결론은 다시 식민지 시대의 ‘민족문제’를 상대화하는 자세를 낳고 더 나아가 “민족주의라는 색안경을 쓰고 역사를 본 결과 민족문제가 실제보다 과도하게 인식되었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식민지 시대를 산 98%의 조선인 - 보통의 조선인 - 들은 1%도 안되는 ‘민족운동가’나 1% 남짓되는 ‘친일파’들이 사는 공간과는 다른 어떤 지대에서 그들 특수한 부류와는 다른 생각, 다른 생활을 하며 ‘정상적’으로 살아갔다는 것이다. 그런 분석방법을 취하면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가 보통사람들의 평균적 요구가 되고 ‘조선 독립 만세’는 극소수 사람들의 특이한 선언이 될 수밖에 없다. 강제로 끌려가 일본군 성노예 생활을 했다고 한 100여명의 증언은 기껏 ‘특수한 사례’에 관한, 그것도 곧이 곧대로 믿을 수 없는 기록이 되어 버리고, 나머지 ‘위안부’ 수만 명의 ‘무언(無言)’이 오히려 ‘위안부 조달이 대체로 큰 문제없이 진행되었음’을 입증하는 수량적 근거가 된다. 그러나 정상과 비정상, 표준적인 것과 일탈적인 것이 숫자로 표현될 수 있다고 해서, 숫자가 그 경계를 나누는 절대적 기준이 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과거의 텍스트들이 ‘평균적으로’, ‘무엇을 말했는가’를 밝히는 것이 아니라 그 텍스트들이 어떤 ‘상황’ 속에서 출현했고 유통되었는지를 ‘판단’하는 일이다. 출판금지 처분건수, 필화사건의 횟수, 검열에 걸려 삭제된 자행의 수 따위만 가지고 본다면 텍스트 생산에 가해진 제약은 ‘무시해도 좋은’ 수치가 되어 버리고 만다. 그러나 푸코가 말했듯이, ‘인위적 경계짓기’는 모든 산술적 표준화에 선행한다. 감옥과 수용소는 ‘비정상적이고 반사회적인’ 사람들을 가두어 둠으로써 그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정상과 합법’의 표준적 규율을 강제한다. 더구나 식민지 감옥의 심리적 ․ 문화적 크기는 문화적 연속성 위에서 만들어진 서구 사회의 감옥보다 훨씬 컸다. 조선인들이 ‘민족주의’의 색안경을 쓰고 일본인을 바라보기 전에, 먼저 일본인들이 ‘민족차별주의’의 색안경을 쓰고 조선인들을 쳐다보았다. 멸시와 차별은 일반적이었고 전면적이었다. 일본인들이 설정해 놓은 ‘표준’에 의해, 대다수 조선인은 잠재적 범죄자요 ‘비정상적인’ 열등인이 되어 버렸다. 그로써 ‘표준적’ 조선인과 ‘평균적’ 조선인 사이의 거리도 더 멀어졌다. 조선인은 감옥에 가지 않기 위해, 범죄자가 되지 않기 위해,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설정해 놓은 표준에 근접해 가야 했다. 일제하 조선인들은 그 표준에 가까이 있는 텍스트만 생산하고 유통시킬 수 있었다.

일본 제국주의 권력은 한 두 차례의 단호하고 혹독한 처벌만으로도 대부분의 저항적 언어 - 이 언어가 조선인들의 진정한 ‘평균적’ 요구를 표현하는 것이었겠지만 - 를 잠재울 수 있었다. 노래 ‘황성옛터’를 지은 왕평과 전수린이 종로경찰서에 잡혀가 치도곤을 당하고 난 뒤로는 그와 비슷한 노래는 물론 그에 훨씬 못 미치는 노래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검열의 횟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검열과 처벌이 반복되는 상황에서 사람들의 의식 속에 자리잡는 ‘자기검열’의 기제가 중요한 것이다. 그 기제의 작동에 의해 식민지 상황에서 생산된 텍스트는 ‘위험한 경계선’ 곁이 아니라 그 한참 바깥에서 평균화되었다. 동시에 민족, 독립, 해방, 혁명, 자주, 평등 등 수많은 언어들이 사람들의 의식 저편으로 숨어 들어갔다. 중국인 비단장수 ‘왕서방’은 마음껏 조롱할 수 있었지만, 일본인 지주 나까무라에 대해서는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다.

식민지 시대 금기의 영역은 너무 넓었고, ‘보통 사람’들이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합법적 공간’은 너무 좁았다. 그럴진대 자신의 요구와 희망을 말할 수 없었던 사람들, 말해서는 안되었던 사람들에게 ‘보통사람’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그들이 만든 텍스트들을 수집하고 분석하여 ‘보통사람의 생각’을 그려내고서는 마치 무슨 새로운 발견이라도 한 양 흥분하는 것은 너무 심하지 않은가. 그들은 민족에 대해, 독립에 대해 말하기 싫었거나 말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말할 수 없었던 것이고, 그 말할 수 없음에 이미 익숙해져 있었던 것이다. ‘보통사람’들이 내뱉을 수 있었던 저항의 언어는 풍자와 비아냥의 선을 넘을 수 없었고, 그들이 할 수 있었던 저항의 행위는 ‘공공성(公共性)’ - 이 역시 일본인들이 정한 표준 위에서 만들어진 것에 불과하지만 - 을 의식적 ․ 무의식적으로 무시하는 데 그칠 수밖에 없었다. 일제하에서 뿐 아니라 해방 후에도 오랫동안, 한국인들이 공중도덕을 안 지킨 것은 그 이율배반적 표준에 대한 뿌리깊은 저항심리가 오히려 평균적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일제하 ‘합법의 공간’이 더 넓었다면, ‘감옥’의 심리적 ․ 문화적 크기가 더 작았다면, 그 시대 평균적인 ‘보통 사람들’의 이미지는 다른 준거에서 구축되었을 것이다. 조선태형령이 없었다면, 치안유지법이 없었다면, 살인적 고문이 없었다면, 평균치를 추출할 모집단의 크기는 훨씬 커졌을 테니까.
https://www.facebook.com/100001868961823/posts/2877690722303198/
IP : 218.236.xxx.162
1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
    '19.7.23 4:03 PM (117.111.xxx.104)

    좋은글 감사합니다~~

  • 2. ..
    '19.7.23 4:15 PM (223.38.xxx.132)

    우상화하려면 딴지로 가든지
    요새는 대통령 뒤에다가도 님자 안부치는데
    본일글 퍼날르면서
    지 이름에 님자를 붙이는지?

  • 3. ../..
    '19.7.23 4:19 PM (183.109.xxx.92)

    좋은 글이군요^^

  • 4. 구구절절 옳은말씀
    '19.7.23 4:22 PM (218.236.xxx.162) - 삭제된댓글

    예전 짧은 촌철살인 트윗글 퍼오시던 분들도 mb때 부터 역사학자 전우용님이라고 했어요 검색해보아요

    문재인 대통령께서도 억울한 분들의 이야기 특히 배움과 지식이 짧아 당한 일을 잘 이야기 못하시는 분들 이야기 중간에 끊지않고 끝까지 들어주셨다고 하죠 그래서 답답하다는 평도 들으셨다고요

    일제 강점기 간악하고 사악한 자들에게 억울하고 고통받은 것들 가슴에 담고 표현못하고 살아내셨던 우리 선열들 감히 위로드립니다...

  • 5. 구구절절 옳은말씀
    '19.7.23 4:28 PM (218.236.xxx.162)

    예전 짧은 촌철살인 트윗글 퍼오시던 분들도 mb때 부터 역사학자 전우용님이라고 했어요 검색해보아요

    문재인 대통령께서도 억울한 분들의 이야기 특히 배움과 지식이 짧아 당한 일을 잘 이야기 못하시는 분들 이야기 중간에 끊지않고 끝까지 들어주셨다고 하죠 그래서 답답하다는 평도 들으셨다고요

    일제 강점기 간악하고 사악한 자들에게 억울하고 고통받은 것들 가슴에 담고 표현못하고 참고 살아내셨던 “보통의” 우리 선열들께 이제라도 감히 위로드립니다...

  • 6. 일제36년은
    '19.7.23 4:29 PM (125.139.xxx.167)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니죠. 한 인간이 태어나서 36년동안 식민사관을 학습하고 강요당하면 자기가 조선인인지 일본인인지 천지분간 못하는 인간들도 많이 생기겠죠. 그래도 우리 민족은 해학이 넘치는 민족임에는 틀림없어요.공중도덕을 안 지킨것은 우리가 미개해서가 아니라 소심한 항거를 한거라고 저도 생각해요.

  • 7. 구구절절 옳은말씀
    '19.7.23 4:29 PM (218.236.xxx.162)

    본인 아닙니다~

  • 8. 다른 이야기
    '19.7.23 4:31 PM (218.236.xxx.162)

    지금 주진우기자 함께라면 대타 진행 중입니다
    tbs 오늘도 선곡 괜찮고 진행 잘하고있어요~

  • 9. ㅇㅇ
    '19.7.23 4:32 PM (39.7.xxx.24)

    223.38//
    친일 자손이라도 되나 이 글이 무슨 문제가 있다고..
    왜 그리 표독하게 댓글을 다세요?
    날 더우면 찬물로 샤워라도 하세요.
    그런 댓글 읽는 사람들 정신 건강에 안 좋게 아무대나 분노 쏟지 말고요.

  • 10. ..
    '19.7.23 4:39 PM (211.36.xxx.181)

    토착왜구일베충은 82에서 꺼져라!!!

    ..
    '19.7.23 4:15 PM (223.38.xxx.132)
    우상화하려면 딴지로 가든지
    요새는 대통령 뒤에다가도 님자 안부치는데
    본일글 퍼날르면서
    지 이름에 님자를 붙이는지?

  • 11. 223.38님아
    '19.7.23 4:41 PM (125.139.xxx.167)

    내가 님한테 님자 붙여 줄게요. 그깟 님 짜가 뭐가 그리 중혀서. 참.

  • 12. 정말
    '19.7.23 7:03 PM (211.108.xxx.228)

    좋은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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