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이 만든 단편 '지리멸렬'을 보면 그 짧은 단편도 3개의 스토리로 나눌 정도로
아기자기한 소품이라는 생각이 들죠.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는 단편을 장편으로 늘려서 만든 것 같다는 느낌의 영화였고요.
봉 감독이 살인의 추억 시나리오를 써서 차승재 대표에게 갖다 줬을 때
차 대표가 봉준호는 영화 감각이 참 좋은데 항상 스토리의 스케일이 작다는 게 문제다 라고 말하죠.
장대한 서사보다는 작은 스토리에 강점이 있다는 거였습니다.
기생충도 소품으로 느껴졌습니다.
크고 복잡한 서사와 대단한 메시지를 갖춘 영화가 아니라
소수의 등장인물들이 벌이는 기이한 소동을 보여줍니다.
제가 특히 감탄한 시퀀스는 저택에서 기생충들(?)끼리 난리가 났을 때
갑자기 주인들이 들이닥치는 장면들이었어요.
사실 이런 설정은 개그 프로에서도 흔히 볼 정도로 아주 익숙한 상황이었죠.
그런데 이 뻔한 상황을 웃기면서도 긴장감 넘치게 무려 20여 분 이상을 이끌고 가더군요.
전 이 영화가 빈부격차 문제를 다룬 사회적 메시지의 작품으로 보이진 않더군요.
그런 걸 떠나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기생을 한다는 설정 그 자체에 포커스를 맞춘
블랙코미디로 읽혔어요.
그래서 영화가 더욱 기이한 분위기를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물론 비와 관련한 두 집안의 대비를 보여주긴 하지만
거기서 어떤 비판의식을 보여주려고 하는 것 같진 않았거든요.
그리고 봉 감독이 좋아하는 영화 베스트 10에 일본영화 'Cure'가 있는데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사람이 많은 레스토랑에서 식칼을 담담히 들고 가는
종업원의 모습을 보여주며 끝이나죠.
왠지 봉 감독이 그 장면에 대한 오마쥬를 한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어요.
박찬욱 감독이 베르톨루치의 '순응주의자'를 그렇게 좋아한다고 하는데
'복수는 나의 것'에서 '순응주의자'에 나오는 암살 장면을 그대로 재현한 것처럼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