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점심무렵,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푸르게 넘실대는 강물을 보았어요,
날씨는 뜨거웠지만, 햇빛은 너무나 맑고 깨끗해서
바람이 부는 방향대로 흘러가는 물결위에도 햇빛이
찬란하게, 투명하게 빛나고 있더라구요,
세월이 많이 흘렀더라구요,
제가 그 겨울날, 얼음이 녹으면서 그 강물속에
빠진게 10살이었는데,
목덜미를 침범하고 사정없이 입속으로 들어오는
차갑고 사나운 강물들의 손아귀속에서
사정없이 해매고 있다가
우연히 옆자리의 얼음을 딛고 올라와
엉금엉금 기어올라와 정신없이 벌벌 떨면서
얼음판위를 어떻게 걸어왔는지
집에 왔어요.
그렇게 생과 사의 길목을 헤매고 왔으면서
정작 집에와선 이불속에 앉아 아무렇지 않은척했다가
화들짝 놀라면서 어떻게 된일인지 다그치는 엄마의 눈치를
보면서 이실직고가 끝나자
실눈뜬 얼굴로 제말이 다 끝나길 기다렸던 아빠가
순식간에 문을 발로 박차고
제 목덜미를 한손에 들어올린채로 그 강둑으로 끌고갔어요.
제 몸은 허공에 거의 들리고 가끔, 아무것도 신지못한 맨발은
깡총대듯 가끔 땅바닥에 마침표찍듯 발이 닿았어요.
가난에 찌든 동네사람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남녀노소 막론하고
모두 나와 득의양양하게 포로를 잡아오는 듯한 장군같은 아빠와
돼지같이 끌려가는 듯한 제 뒷모습을 보러 나왔어요.
그렇게 핏줄이 퍼렇게 돋은 억센 손아귀에 덜렁 붙들린채
가끔 한번씩 땅바닥에 발바닥이 스타카토처럼 찍히면서
저는 그 강이 내려다보이는 강둑까지 끌려갔어요.
아기를 업은 젊은 새댁, 찌그러진 털모자를 쓴 문간방 할아버지,
같은반 친구들, 때묻은 새마을마크모자를 쓴 옆집아저씨,
흥미로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그 제법 많은 사람들이
만화책처럼 순식간에 흘러갔어요.
높은 강둑에 올라선 아빠는 절 강이 넘실대는 그 비탈길아래로
밀었어요,
이런저런 생각도 없이 아빠의 옷자락을 잡았더니
그 크고 우악스런 손바닥이 제 뺨을 번갈아 치더라구요.
그런후 그는 우뚝선채 미동조차 하지않는 그 사람들속으로
어깨를 으쓱대면서 자랑스럽게 걸어갔어요,
그렇게 제 목구멍까지 차가운 푸른 강물이 들어가고,
허우적대다가 살아나온 그 열살의 기억이 아직도 있는데
전 이상하게도 강물에 대한 트라우마는 없어요,
허우적댈수록 땅이 닿지않았던 그 깊고 차가운 강물과
아빠에게 붙들려 그 높은 강둑을 오를때 몇번 닿지않았던
그 땅바닥의 감촉도 다 기억나면서
흔히 말하는 그 트라우마는 없어요.
"내가 저 강물에 빠져서 살아돌아왔을때
그날, 나는 싸대기 맞았어,두대,
오히려 내가 죽을것같은 기분은, 체념하고 순순히
끌려갈때, 살아서 돌아온 집에서 느꼈어.
아빠손에 목덜미를 잡혀서 허공에 닿지않고
가끔 땅에 내 맨발바닥이 닿을때 그때
다 체념했어, 울지도 않았고,"
"왜?"
"살아 돌아온게 어쩌면 큰 죄일수 있겠다 하는
맘이었던 것같아.
죽어서 온몸이 다 불은 모습으로 나타났으면
싸대기를 맞지않고 그렇게 신발도 못신고
쫒겨나지 않았을텐데."
강물은 짐짓 시치미를 떼고
아무일없듯 그렇게 흘러가고 있더라구요.
그러고보니, 저 강물 자주 보았어요.
저는 고등학교때에도 저 강물을 보면서
버스를 타고 다녔고, 직장을 다닐때에도 그랬고
잠시 타지역에 가있던 적도 있었지만,
그런 강물은 어디서나 볼수있던 흔한 광경이었구요.
지금도 그 강가를 수시로 지나가고있거든요.
그런데도 제겐 그 어떤 트라우마도 없어요.
지금까지 아무렇지않게 살수 있는게 더 신기하지만
그건 35년전의 모래알처럼 작은 ,그나마 생각나지않던
일이었어요,
그러고도 정말 아무렇지않게 시치미떼지않고도
이렇게 살수있는것
이게 더 놀라운 일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