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인생을 같이 살아줄 동반자가 생겨서 좋긴 하지만, 막상 결혼이 코앞에 닥치고 보니 그동안 혼자서 내심 고민했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 게 좋을지 걱정됩니다. 그 문제는 우리가 이혼하게 될 경우의 재산분할에 관한 것입니다. 결혼하는 마당에 이혼할 경우를 먼저 생각하고 재산 문제부터 걱정한다면 이상해 보이겠지요. 하지만 저는 전에 이혼하면서 고생한 경험이 있어서 재산문제가 마음에 많이 걸립니다.
저는 29살 때 첫 결혼을 했습니다. 전처는 아버지 친구분의 딸이었는데 소개받은 자리에서 바로 마음에 들어 만난 지 석 달 만에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그때는 사실 결혼이 뭔지 몰랐고 사람 볼 줄도 몰랐습니다. 저만 아니라 부모님도 좋다고 하셨고, 아버지의 오랜 친구분의 딸이니 당연히 좋은 사람일 거라고 경솔하게 믿어버렸던 게 실수였습니다. 막상 결혼하고 보니 성격이 너무 안 맞았는데 제일 큰 문제는 전처의 고집이 너무 세서 매사를 자기 뜻대로 해야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아들 하나를 낳고 10년 만에 이혼하게 됐는데 전처가 같이 살던 아파트를 줘야 이혼해준다고 했습니다. 그 아파트는 저희 아버지가 사주신 거고 결혼기간 내내 저 혼자 직장 다녀 받은 월급으로 생활을 했는데도 욕심을 내더라고요. 재산을 두고 진흙탕 싸움 하기 싫어서 줘버리긴 했는데 오랫동안 억울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현재 제 재산은 아파트 한 채와 현금을 합쳐 15억 정도 되고 여자친구는 3억 정도 되는 빌라 한 채를 갖고 있는데, 여자친구는 결혼하게 되면 직장을 그만 두겠다고 하니 결혼 후에는 제 수입만으로 생활하게 될 겁니다. 결혼기간 동안 제 수입만 가지고 생활했는데 이혼할 때 재산분할까지 해줘야 한다면 그건 저한테는 너무 불공평한 일입니다. 그러니 이혼할 경우 자기 재산만 갖고 서로 상대방에게 재산분할을 청구하지 않기로 결혼 전에 미리 정하고, 결혼 후 제가 죽게 되면 제 재산은 제 아들이 다 물려받을 수 있게 하고 싶습니다.
알아보니 이혼할 경우 재산분할을 포기한다는 내용의 혼전계약서를 쓰면 된다고 하던데 그렇게 하면 될까요? 아니면, 결혼식은 올리더라도 혼인신고를 안 하면 어떨까요? 그러면 법적으로 결혼한 건 아니니까 헤어지더라도 재산분할을 해주지 않아도 되는 거지요? 그리고 어떻게 해야 제 사망시 아들에게만 재산을 물려줄 수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제 재산을 아들에게만 준다는 유언장을 쓰면 될까요?
첫 결혼에 질려서 다시는 결혼 안 한다 했는데 막상 재혼하려니 예전의 기억이 떠올라서 마음이 착잡합니다. 재혼 전에 재산문제를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세요.
A) 평균 수명이 길어지고 황혼이혼이 증가하면서 재혼율도 계속 증가추세에 있다고 합니다. 재혼을 생각하는 분들이 공통적으로 고민하는 문제 중 하나가 재혼할 경우의 재산문제입니다. 재혼은 각자 자기 재산을 가진 상태에서 결혼하는 경우가 많은 데다가, 예전 이혼하는 과정에서 재산분할 때문에 심하게 다툰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전혼 자녀들이 있는 경우에는 계부나 계모에게 자기들이 받을 재산을 빼앗기지 않을까 경계하기 때문에 상황이 더욱 복잡해집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초혼 때와는 달리 재혼의 경우 재산문제가 아주 중요한 관심사로 등장하게 마련입니다.
재혼을 앞둔 분들의 공통적인 질문사항은 선생님 질문내용과 거의 같습니다. 첫째, 만약 이혼하게 될 경우 재산문제를 결혼 전에 미리 정할 수 있는지와 둘째, 사망시 내 재산이 내 자녀들에게만 상속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입니다.
먼저 결혼 전에 이혼할 경우에 대비하여 재산분할을 미리 정해둔다면 이혼시 법률적인 효력이 있는지를 보겠습니다. 이 질문을 하시는 분들이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미드나 미국부자들의 이혼관련소식에 종종 등장하는 혼전계약(prenuptial agreement)이 아닌가 합니다. 혼전계약에 이혼할 경우에 대비해서 위자료와 재산분할 액수를 정해놓게 되면 이혼 시 그 효력을 인정받게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결혼 전 부부재산에 관한 약정을 할 수 있고 이 약정을 등기하게 되면 부부의 승계인 혹은 제3자에게도 대항할 수 있다고 되어 있는데(민법 제829조), 결혼 전에 하는 부부재산에 관한 약정이라는 점에서 외견상 외국에서 인정되는 혼전계약과 비슷해 보이긴 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결혼 전 부부재산약정으로 재산분할을 이미 정해두었다고 하더라도 재산분할에 관한 그 약정은 법적인 효력이 없습니다. 우리나라 대법원이 이혼 시의 재산분할청구권은 이혼할 때 비로소 발생하는 것이라 이혼 전에 아직 발생하지도 않은 재산분할 청구권을 미리 포기할 수 없다고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대법원 2015스451결정). 이런 점에서 우리나라의 부부재산약정은 미드에 나오는 혼전계약과는 다르다고 봐야 합니다. 그러니 선생님이 결혼 전에 이혼시 상호 재산분할청구를 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혼전계약서를 쓴다고 하더라도 그 계약서는 무효입니다.
만약, 선생님이 이혼시의 위자료와 재산분할을 피하기 위해서 혼인신고를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해결책은 못됩니다. 많은 분들이 혼인신고를 안 하면 법적인 부부가 아니니 재산분할 안 해줘도 되는 거로 생각하시는데 그건 잘못된 생각입니다. 사실상 부부관계에 있으나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경우를 ‘사실혼(事實婚)’이라고 하는데 사실혼에도 법률혼과 마찬가지로 헤어질 경우 위자료와 재산분할청구권이 인정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선생님이 사망할 경우 선생님 아들에게만 재산을 물려줄 수 있는지 보겠습니다. 이 부분은 혼인신고 여부에 따라서 결론이 달라집니다. 혼인신고를 해서 법률상 배우자가 된다면 법률상 배우자는 유류분(상속인을 위해서 법률상 유보된 상속재산의 일정부분, 배우자의 경우에는 자기 상속분의 1/2)반환청구권을 갖기 때문에, 선생님이 아들에게만 재산을 상속한다는 유언장을 작성한다고 하더라도 선생님 배우자는 선생님 아들을 상대로 해서 유류분반환청구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될 경우 선생님 배우자는 법정상속분 3/5의 절반인 3/10을 유류분으로 반환받게 되니, 아들은 선생님 재산의 7/10만 가질 수 있습니다.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경우라면 사실혼 배우자는 상속권이 없으므로 상속인은 아들 한 사람 뿐이니, 따로 유언을 할 필요 없이 선생님의 재산은 모두 아들에게만 상속됩니다. 하지만 이것도 완벽한 방어막은 못됩니다. 선생님이 혼인신고에 동의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배우자가 혼자서 혼인신고를 할 수 있는 길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혼이 지속되고 있는 동안 선생님 배우자가 사실혼존재확인청구를 해서 승소판결을 받게 된다면 단독으로도 혼인신고가 가능합니다. 선생님 배우자가 상속받기 위해서 이런 방법을 택할 가능성이 있는데, 그렇게 된다면 위에서 살펴본 혼인신고를 한 경우와 같아지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선생님이 재혼하실 경우 배우자를 이혼시 재산분할과 재산상속에서 완전히 배제할 수 있는 방법은 아직까지는 없습니다. 앞으로 재혼이 더 늘어나고 이혼시 재산문제를 미리 정하는 것이 좋다는 사회적인 합의가 형성되면 지금의 결론과 달라질 가능성은 충분히 있어보입니다만. 선생님의 결정에 도움이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