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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올블랙 길냥이와의 라뽀

캣맘 | 조회수 : 1,336
작성일 : 2019-05-22 00:51:56
Lapport --- 의사와 환자, 생명을 걸고 맡기는 관계, 둘 사이에 맺어지는 깊은 신뢰감을 ‘ 라뽀 (rapport)’라고 말한다.

길냥이들 밥 주면서 내가 고양이를 너무 몰랐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고양이도 그 생김생김이 인간만큼 다양하고 그 성격도 다르며 그들의 울음소리 
또한 각자 개성적이라는 사실도 알게 됩니다.
까미는 그 이름을 붙인 연유가 올블랙냥이기 때문입니다. 
에드거 앨런 포우의 '검정 고양이'라는 단편 소설 때문에 검정 고양이는 내게 다소 무서운 이미지였습니다.
서양에 살다 보니 검정 고양이는 대체로 '악'을 상징하고 '어둠'을 상징하는 등 미신적인 이유로
이곳에서 주로 주술사들이 마법을 부릴 때 쓰는 등 희생되고 있고 입양도 잘 안되고 아이들은 
검정고양이는 액운을 불러 온다니까 아주 당연히 돌을 던지고 미워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20년 전 저는 검정고양이 새끼에게 간택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재수없다며 펄펄 뛰더군요.
색깔이 싫고 연두색 눈에 일자로 좁아드는 동공이 마음에 안든다고 해요. 
그리하여 옆집에서 점치는 아줌마가 고양이를 달라고 하길래 그럼 거기서라도 살라고 주었어요.
그런데 생각지도 않게 저희가 키우는 검정 개는 올블랙 독이랍니다. 그건 또 괜찮은지...
그래서인지 20년 만에 거두게 된 길냥이들을 돌보면서 검정 길냥이에 대한 생각도 많이 바뀐 것을 봅니다.

까미는 지난해 12월 보았어요. 공터에 둔 밥을 그는 어디선가 숨어 있다가 내가 사라지면 와서 
먹었나 봅니다. 그 밥자리는 원래 다른 고양이가 터잡고 있었는데 까미가 몰래 몰래 와서 도둑시식을 하고 간 것입니다. 
그 까미에게 밥을 먹으라고 넉넉히 밥을 부어주고 그러면서 까미는 내게 점점 가까이 왔지요.
그 아이는 너무 못 먹어서 털도 거칠고 푸석했고 몸도 일자였습니다. 하도 못먹어서 그런가 갈비뼈가 
살가죽 사이로 선명해서 셀 수도 있을 지경이었어요. 그 까미를 대면하기가 어려웠으나 만약 
대면하면 준비해뒀던 파우치를 까서 밥에 섞어서 주곤 했어요. 까미는 정말 맛있게 먹었습니다.
얼마나 배고프고 주린 생활, 밥없는 삶을 오래 견뎠는지 까미는 제가 준 밥그릇을 양 손으로
부여잡고 와구 와구 먹기도 하고 내가 파우치 사료를 찢다 쩔쩔매면 두 손으로 잡아서 도와주기까지 했어요.

까미 외에 밥 주는 고양이가 다섯 마리가 더 있었지만 다들 만지는 것은 꿈도 못 꾸는데
이 까미는 신뢰가 쌓인 후 나중에는 내가 쓰다듬을 수도 있었고
말 걸을 수도 있었고 도망도 가지 않았고 나를 신뢰하고 내가 나타날 시간에 나타나서 '야옹'하며
자기가 온 것을 알리고 밥을 먹었습니다. 그 까미를 다른 고양이처럼 항상 볼 수 없었고 운이 좋아야 보고
근처에 사는 할아버지 통해 까미가 밤중에 나타나 내가 담장 밑에 숨겨둔 까미와 나만이 아는 자리에 둔 밥을 먹고 
다닌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어요. 직장 근처라 낮에만 갈 수 있었고 밤에는 갈 수 없었어요. 

그래도 까미를 위해 구운 삼겹살,족발, 보쌈고기, 닭고기 삶은 것, 파우치, 캔, 참치 등은 만날 때만 
주었기에 까미를 못 보면 섭섭했고 이 고기들은 다른 고양이들이 맛있게 먹었죠. 걔네들은 항상 
잘 먹는데 까미는 그러지 못하고 건사료만 먹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안 좋았어요. 그러다 까미의 은신처를
대충 짐작해서 사람들의 왕래가 드문 역사의 후문쪽, 녹슨 기차들이 잔뜩 쌓여 있고 녹슨 레일들이 
쌓인 뒷쪽 쓰레기가 가득한 공터로 간적이 있는데 까미가 반갑다고 나타나는 겁니다. 
그 후 매일 매일 까미를 위해 밥을 들고 후문으로 갔고 참치며 파우치, 보쌈고기, 돼지고기 등을 삶아서
가져갔어요. 그러기를 3주. 까미는 지금 윤이 좌르르 나고 훨씬 이뻐졌어요. 예전에 빈티가 나던
모습은 사라지고 얼굴은 동그래지고 훨씬 이뻐졌어요. 까미의 아지트에서 턱시도 고양이도 만나
밥을 주는데 까미는 그게 마음에 안 드나봐요. 내게 여러 번 옹알옹알 말을 하고 이제는 만져달라고 하고
가까이 오려고 하는데 길생활이 위험하니까 훈련을 시키는 편입니다. 

까미는 먹을 거 구하는 것이 힘들었던 삶을 하도 오래 견뎌서 그런지 제가 무조건 고맙고 반가운거 같아요.
이젠 너무 경계도 안하고 말도 많이 하고 그래요. 언제까지 까미에게 밥을 줄 수 있을지 모르고
또 까미를 입양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하지만 까미는 그곳에서 오래 살았기에 까미의 삶을 존중해 주려고 해요.
길냥이도 나름 그들의 삶을 살고 있고 나 외에 그들에게 밥 주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곳의 삶에
정이 들었을 수도 있고...다만 매일 까미에게 말해요. 
'까미야, 절대 저 철길 쪽으론 가지 마. 찻길 쪽도 안 돼. 그냥 여기서 왔다 갔다해. 그럼 아줌마가 밥은 꼭 갖다 줄께. 그리고 아프면 말해. 내가 병원에 데려가서 치료해 줄께...' 

얼마 전 기차역 경비원들이 내게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열차에 부딪쳐 죽었다고 알려왔습니다.
그들은 내가 밥 주는 고양이가 죽었다고 말했는데 전 믿을 수가 없었어요. 어제까지만 해도 내가 준 밥을 
아주 달게 맛있게 먹었던 까미가 그리 쉽게 갈 수 있다니...눈물이 나서 여기 저기 시체라도 찾아 다녔는데
...왜냐하면 그 소리 들은 후 이틀간 까미가 안 나타났거든요. 저는 까미가 죽으면 꿈에라도 나타나 알려줄거라고
확실히 믿었기에 까미의 죽음을 눈으로 보지 않고는 믿을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그 다음날 까미가 
나타났을 때는 정말 너무 너무 기뻤어요. 이틀간 굶었을 까미를 위해 다시 밥을 차리는데 너무 기쁘더군요.
내가 아이에게 해 주는 것보다 그 아이가 내게 주는 신뢰와 사랑이 상처받은 내 맘을 치료해 주나봐요. 
사람은 내가 사랑을 주면 배신하고 오히려 악으로 갚는 경우가 허다한데 고양이는 그러지 않네요.
고양이가 배신 잘한다는 이미지는 어디서 나온것일까요? 막상 겪다보면 겁도 참 많고 사랑도 줄 줄 아는데요. 
IP : 191.84.xxx.1
1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happyyogi
    '19.5.22 12:58 AM (73.48.xxx.247)

    저기 그냥 데려가시면 안되나요? 길냥이 삶은 언제 죽을 지 모르는 삶인데, 후회 없으시겠어요?

  • 2. 마음씨
    '19.5.22 1:53 AM (182.227.xxx.57)

    와. 정말 잘 읽었어요. 고맙습니다.
    막 그림이 그려져요. 검정고양이가 기차에 치였다고 할때 덜컹했어요. 남은생은 집에서 실게해주심 안될까요. 조마조마하네요 ㅜㅜ

  • 3. 흑흑
    '19.5.22 3:26 AM (14.35.xxx.110)

    이 새벽에 결국 로그인을 하게 만드시네요.
    글이 정말 정말....
    철길 근처를 거니는 까미의 모습과 원글님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아요...
    마지막엔 까미 죽은 줄 알고 가슴이 철렁하다가.. 이틀만에 나타난 거 보고 눈물이 찔끔...

    고양이에 대한 그 나쁜 얘기들은 대체 왜 나온 걸까요.
    저도 매력적인 까만 길고양이 하나를 본 적 있는데.. 정들면 책임질 수 없어서 그 근처엔 일부러 가지 않으려 노력한답니다.
    까미 잘 살펴봐주시고..
    나중에 까미한테 물어봐주세요. '우리 집에 가서 같이 살아볼래?'하구요.

    원글님과 까미에게 축복을 보내며 잠들렵니다.

  • 4. 까미맘
    '19.5.22 4:15 AM (223.39.xxx.217)

    까미라는 강아지를 키우고 있어서 글을 읽고나니 이 새벽에 눈물이 납니다.

    강아지를 키운 후 부터 고양이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까미가 건강하게 오랫동안 원글님과의 인연을 계속 이어가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 5. 까만냥이가
    '19.5.22 7:01 AM (223.38.xxx.14)

    참 매력적이지 않나요? 에드가 앨런 포 시러요. 까만냥이에 대한 이미지를
    더 나쁘게 한 인간이라거 봐요

    동서양에서 다 학대 받고 냉대 받은 깜냥이들. ㅠㅠ.

    고양이는 무서운 동물이 아니에요

    인간이 제일 잔인하고 사악하고 교활할 뿐. 맨날 뉴스에 사건 사고들 보면 으

  • 6. ㅇㅇ
    '19.5.22 7:10 AM (211.209.xxx.109)

    저도 그렇게 밥 주다가 제가 이사를 가야하는데 도저히 두고 올 수 없어서 납치!했습니다. 까미처럼 그렇게 앵기지도 않았어요 이녀석은. 저만 보면 달려와서 밥 달라 우는 게 다였지. 단지 덩치도 큰 놈이 세상 쫄보라 온 동네 냥이들한테 쥐어터지고 못생겨서 애교도 없었고.. 그래도 지금 집에서 3년째 잘 먹고 다른 냥이들과도 잘 지내고 있어요. 연초에 많이 아파서 병원에서 입원, 수술까지 했는데 우리집에서 같이 편하게 산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가면 안된다고 얼마나 울었는지ㅠㅠ 많이 생각해보셨겠지만 집안에 들이시는 것도 조심히 권해봅니다.

  • 7. ..
    '19.5.22 8:11 AM (59.6.xxx.219)

    맞아요..생명이란게 기본적으로 애정이란걸 갖고 태어나나봐요.
    짐승은 보면 나쁜마음이란게 없는거같더라고요.
    세상 못난이들도 잘 먹이고 사랑주면 말도못하게 예뻐지고요.

  • 8. 레인아
    '19.5.22 8:51 AM (128.134.xxx.85)

    이야기의 끝이 슬플까봐 마음 졸이며 읽었어요
    정말 다행이예요
    까미가 원글님을 만나서요

  • 9. 저도
    '19.5.22 9:05 AM (183.96.xxx.155)

    중딩때 우리집에서 올블랙 키워봤고 지금은 턱시도 키우고 있어요
    블랙냥이들이 얼마나 영리하고 순발력도 좋은지 몰라요
    입양하시면 안될까요
    추운겨울에 길냥이들 많이 죽어요

  • 10. 밤호박
    '19.5.22 9:36 AM (223.39.xxx.168)

    제 첫냥이가 젖소냥 두번째가 까만냥이 초코 너무 애교쟁이 올블랙냥 얼마나 이쁘게요

  • 11. Catherine
    '19.5.22 12:46 PM (222.111.xxx.89)

    까만고양이 매력적이에요... 저희 집에 두 마리나 있죠ㅋ
    저희 집 앞에도 늘 와서 밥을 먹는 영리한, 까미같은 고양이가 있었어요. 정확하게는 저희 옆집 할아버지가 삼시세끼를 먹여 돌보셨어요. 밖에 살다 뿐이지 할아버지가 늘 정성을 다해 아침은 조기구이, 점심은 파우치, 저녁은 닭고기를 먹여 키우셨죠... 늘 바람처럼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아이였어요. 10년 이상을 살다가 작년 가을 홀연히 떠났어요. 떠나기 전 몸이 안 좋아보였고... 그렇게 오래 안 안 적은 없었으니까요. 잘 살다 갔다고 생각해요. 아... 할아버지 사진 뽑아 드려야 되는데....

  • 12. ..
    '19.5.22 2:36 PM (1.227.xxx.232)

    너무잘읽었습니다 까미..먹먹해집니다 감사하구요

  • 13. ...
    '19.5.22 11:07 PM (191.84.xxx.1)

    까미가 이뻐서 데려오고 싶긴 한데 더 시급한 야옹이가 있답니다. 13살 된 이빨없는 할머니 냥이라 만약 누군가를 데려온다면 이 아이를 데려와야 할 거 같아 아직 훨씬 젊은 까미는 후순위에 밀려났어요. 얘 말고도 입양이 시급한 고양이가 더 있어서 아직 까미가 견디고 팔팔한 동안은 야외생활을 해야겠지요. 야무지게 자기 영역은 잘 지키는 거 같아서 그나마 다행이고 자기보다 훨씬 큰 턱시도에게 찌릿하며 영역싸움하는거보면 까미도 당차고 야무진데가 있어요. 제가 가서 '싸우지 말어' 하면 그제서야 눈싸움을 그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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