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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 전... 서점에서

변두리 그소녀 조회수 : 2,180
작성일 : 2019-04-24 20:08:17
퇴근해서 집에 오는데 갑자기 학창시절 한 친구 얼굴이 떠오르며..
30여년 전 교O문고에 처음 간 날 겪었던 일이 생각나더라구요..

때는 1980년대 후반, 아마도 중1 무렵의 어느 주말이었던 것 같아요.
친구와 둘이 서울 변두리 동네를 벗어나 광화문에 있는 교O문고에 가게 되었어요.
당연히 초행길이었고, 집-학교 밖에 모르던 순진하기 짝이없던 저에게 
처음으로 어른 동반 없이 시내를 나간다는 약간의 흥분과 설렘도 있었던 것 같네요.
그때 아마도 타고 갔을 131번 버스.

그렇게 교O문고에 도착했고, 학교앞 서점에서 참고서나 살 줄 알았던 저에겐
나름 신세계였던 듯, 신이 나서 이곳 저곳을 구경하고 다녔던 것 같아요.
두어 시간쯤 지났을까.
길을 잃지 않기 위해 들어간 그대로 기억을 더듬어 서점을 나서려는 순간,
어디선가 보안요원이 다가오더니 저더러 가방을 보자고 하더라구요.

뭔가 실체를 알 수 없는 굴욕적인 기분이 들었지만, 
생경하고 강압적인 분위기에 이끌려 뭐라 한마디 말도 못하고 가방을 내주고 말았네요.
어린 마음에도 많은 사람들 앞에서 가방이 뒤져지고 있던 그 시간 동안에 
오롯이 머릿속을 잠식하던 그 모멸감이란...

시골에서 갓 상경한 것도 아닌데, 그 시절의 저는 어찌나 미숙하고 무지했던지요. ㅎㅎ
당연히 걸릴 게 없었고, 지금 같았으면 고객센터에 항의는 물론 당사자에게 
사과를 백번쯤 받았을 법도 한데, 그땐 미안하단 말 한마디 못듣고 그저 가도 된다는 
퉁명스러운 말에 황급히 그곳을 빠져나오기 바빴네요.

설레는 서점 가던 길과는 달리, 돌아오던 길은 전혀 기억나지 않아요..
맘속으론 같이 갔던 친구에게 부끄러우면서도 아마도 큰 서점은 다 이런 걸거야, 하는 
자기합리화도 했던 것 같아요.
그때도, 지금도,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그날 저의 어떤 행동이 보안요원의 의심을 사게 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어요.
처음 보는 많은 책들이 신기해 유독 두리번거렸을까요?
무심코 마주쳤을지 모를 그 보안요원의 눈을 피하기라도 했던 걸까요??

이제 40대 중반의 나이.. 어느덧 그때 제 나이 또래의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가 되었지만
그 후 어느 누구에게도 이 말을 할 수가 없었어요..
그저 어느날 퍼뜩 떠오르곤 하던 그때의 불쾌한 기억에 혼자서 얼굴이 화끈거릴 뿐.

오늘 집에 오면서 교O문고 게시판에 지금이라도 글을 올릴까, 
쌩뚱맞고 어이없겠지만 혹시라도 돌아올지 모르는 형식적인 사과라도 받으면
분하고 상처받은 어린 마음이 지금이라도 치유될 수 있을까... 
싶은 유치한 마음도 들었네요.

여전히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미성숙한 저 자신에게
그때의 어린 나야, 네 잘못이 아니란다..
셀프로 토닥토닥 해봅니다..




IP : 58.124.xxx.177
8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
    '19.4.24 8:19 PM (211.104.xxx.198) - 삭제된댓글

    저는 80년대 중반 중학생일때
    종로 서적 계단을 내려오는데
    보안요원이 제 앞에 내려가던 남자
    멱살을 잡고 끌고 가는걸 봤어요
    눈앞에서 사람을 그렇게 끌고 가는거보고
    정말 충격, 책이라도 훔쳤나?했죠
    대학생도 아닌 버버리 코트까지 잘 차려입은
    멀쑥한 회사원 같아보였는데
    당황하는 모습보니 진짜 훔친거 같긴 했어요
    그 이후로도 종종 갔는데 나올때 무작위로 가방 검사
    당했던 기억있고 저는 아무렇지도 않게 보여줬어요
    그저 책 훔쳐가는 사람이 많은가 보네?
    이런 생각만했지 기분 나쁜건 하나도 없었어요
    그냥 관례적인것뿐이었을텐데 마음 푸세요

  • 2. 비슷한
    '19.4.24 8:21 PM (211.245.xxx.178)

    경험있어요.
    돈은 없고 읽고싶은 책은 많고....
    한권 살돈 들고가서 서서 책 한권을 다 읽고 살 책을 두리번거리면서 고르는데 알바생이 제 옆에만 붙어있더라구요.
    그때는 왜 이러지????했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서점에 오래 머물면서 두리번 거리는 내가 수상했나보다...그때는 책 도둑이 참 많았나보다....합니다.
    그리고 제가 가난해서 입성도 추레하기는 했을거예요...ㅠㅠㅠㅠ
    나이들어 책 살 돈은 있는데 이제는 눈이 침침해서 책읽기가 참 힘든 나이가 됐네요....ㅠㅠㅠ

  • 3. ㅇㅇㅇ
    '19.4.24 8:22 PM (110.70.xxx.205) - 삭제된댓글

    그 인간이 이 글을 봤으면 좋겠네요
    연령을 계산해보면 반성할 인간이 아닐가능성이 높아보이구요
    그시대엔 좀 그랬어요
    다들 사연 한두개씩은 있을껄요
    그래도 큰봉변 아닌걸 위안 삼읍시다

    예전 82쿡 처음 가입했을쯤에 한 10년전쯤?
    성폭행글이 올라온적이 있었는데
    댓글들에 나도요 나도요 이러면서
    진짜 많은 피해자들이 있었어요
    구체적인 스토리를 적는분도 계셨고요

    우리40대중반 딸들이 현70-80대 노인들보다
    그리 좋은 인생이나 팔자들은 아닌듯해요

  • 4. 추억의 버스
    '19.4.24 8:22 PM (110.5.xxx.184)

    131번 버스라는 숫자가 눈에 번쩍 들어와 댓글 남겨요
    서울 변두리에 살던 저의 청소년, 대학 시절을 함께 한 버스라서 ^^
    혹시 마주쳤을지도....

    80년대 후반이었다니 아마도 한참 군부독재 타도 이런 일로 데모하고 전경들이 깔렸던 즈음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제 남편은 대학원 때인데 학교에서 나오다가 아무 이유없이 닭장차 (전경버스)에 끌려가 무릎꿇고 몸 수색당하고 그랬거든요.
    보안요원일 수도 있었겠지만 종로 광화문 일대, 대학 근처의 골목엔 검문과 몸수색이 일상이던 때라 서점만의 일이 아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교보문고 쉴드는 아니니 기분상하지 않으셨으면 해요.

  • 5. //////
    '19.4.24 8:29 PM (58.231.xxx.66) - 삭제된댓글

    비싼책 전문털이범들이 그렇게 많았다네요.
    읽고싶은 책을 훔치는게 아니라 가격나가는거만 싹 가져가는 도둑들 이었다고해요.
    그런사람들은 한쪽으로 데려가서 방에서 뒤지지 사람들 많은 곳에서 어린애 책가방 열었다는게 충격 이네요.
    지금은 없어진 종로서적은 내 놀이방 이었었구요. 교보도 그렇구요.
    한번도 그런적 없었고 범인잡아채는것도 못봤던 내가 다행? 이었나보네요.
    원래 그런곳가면 두리번 거리지 않나요..헐.

  • 6. ...
    '19.4.24 8:30 PM (221.151.xxx.109)

    그때는 가끔 무작위로 그런 일 있었던 거 같아요

  • 7. ...
    '19.4.24 8:46 PM (210.205.xxx.55) - 삭제된댓글

    그때는 학교 안이고 거리에서고 소위 우리끼리 짭새라고 했던 전경들이 많았어요. 무조건 가방이고 핸드백이고 열라고 하면 샅샅이 열어 보여야 했죠. 길거리에서 생리대 담긴 가방을 열어 보이며 얼마나 화끈했던지. 소위 불온서적이라도 나오면 바로 닭장차에 실려 끌려 갔던 야만의 시대였네요.

  • 8. 131번
    '19.4.24 9:41 PM (211.212.xxx.13)

    추억에 잠시..ㅎㅎ
    같은 동네 살던 언니 뻘 원글님.

    저도 마음으로 토닥토닥 해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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