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오뚜기 카레를 좋아해요. 어렸을 적에 정말 일요일에 우리집 특식이었거든요. 감자랑 고기, 제가 싫어하는 당근 등을 잘게 썰어(크게 썰면 잘 안 익으니까-우리엄마의 방식) 한솥 끓이면 다섯 식구가 삼, 사일 정도 먹은 것 같아요. 엄마가 카레 부심이 있어서 호박도 넣고 사과도 넣고 나중에 나온 백세카레로 갈아타보기도 하고... 전 사실 친구네집이랑 친척집에서 먹어본 에스비 고형카레가 더 좋긴 했는데...
그런데 저 사춘기 때 집안이 망하고 엄마 아빠는 생계를 위해 서울과 부산으로 떨어져 살고 저희 형제도 밖으로 돌면서 일요일 카레의 추억은 멈췄어요.(스무살 되던 해 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안 숲 소설을 읽는데 이런 카레 얘기가 두 번 나오더라구요. 한번은 주인공이 미도리네 집에 처음 찾아가는 골목을 묘사하면서 그런 카레 ‘냄새’ 운운, 그리고 미도리가 자신이 어렸을 적 장사에 바쁜 엄마가 그렇게 큰 냄비에 끓여두고 오래 먹은 카레가 죽도록 싫었다는 얘기... 그 문장에서 엄청 반가왔던 기억이...)
우리집에서 카레를 더 이상 만들지 않게 된 다음에 알게 된 건 델리 카레에요. 델리 아세요? 집은 망했는데 망하기 전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미대를 가겠다고 압구정동으로 그림을 배우러 다녔어요. 화실비랑 압구정까지 다니는 버스비도 빠듯했는데, 더 힘든 건 화실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밥 먹고 윗첼도넛 가고 피자리아멜라 가고 하는 거였어요. 돈도 없고 힘들게 가서 앉아 있으면 너무 불편했어요. 그 화실 아래층에 델리가 있었어요. 85년에요. 그때는 작고 아담한 경양식집 같은 분위기였어요. 복도 쪽 유리창에 스테인글라스가 예뻤던... 테이블마다 조명이 있었구요. 거기서 처음 돈을 주고 사먹는 카레를 경험해봅니다.
사실 중3들이 가서 저녁으로 사먹을 가격이나 식당은 아니었는데, (떡볶이 200원 하던 시절, 델리 치킨카레는 1300원 정도?) 압구정에서 예고 가려고 화실 다니는 친구들 씀씀이가 그랬고 저는 정말 힘들었어요. 제일 비싼 게 돈까스 카레, 비프 카레, 포크 카레, 치킨 카레..이런 순이었던 것 같아요. 이 순서를 왜 기억하냐 하면 저는 돈 걱정 때문에 거의 키친 카레를 먹었거든요. 몇 번 먹어보지 못했지만 너무너무너무 맛있던 돈까스카레는 나중에 대학 간 뒤 알바비 받으면 가서 사먹거나 소개팅 애프터에 갔었고요.
(델리는 장사가 잘 되어서 10년 정도 후 그 건물 한 층을 전부 식당으로 확장했다가 그 다음에는 건너편 건물 하나를 다 식당으로 열기도 하고 체인도 생기고 그랬는데... 어느 순간 다 없어진 것 같네요. 키 작고 단아하신 여자 사장님, 나중에 할머니가 다 되셔서도 압구정 사옥(?) 매장 홀에도 나와 계시던데.. 가끔 생각납니다)
그리고 대학 가서 학생식당의 550원짜리 끔찍한 카레를 맛봅니다.
세월이 흘러 사회에 나왔는데 카레 사먹을 일은 없었던 것 같아요. 아 제가 3분 카레를 집에서 종종 해먹었네요.
그리고 밀레니엄이 왔고 강가가 생겼습니다. 카레가 아니고 커리인데... 강가나 이태원 등지의 인도식당이 맛은 있지만 카레와는 다른 음식이죠.
예전에는 분식집에서 카레라이스도 팔았던 것 같은데 요즘 분식점은 거의 해동 제품이라 안 사먹어요. 간혹 카레라이스 메뉴가 있어 주문해보면 달고 묽은 맛에 잘게 썬 감자 쪼가리 두 세 조각과 간(갈은) 고기 부스러기들, 향은 없고 식감도 별로인 당근 부스러기들....이유식 수준으로 조사서 넣어 끓이는 누런 국물은 싫거든요.
가끔 아비꼬나 코코이찌방야도 가는데, 전 그런 국물만 있는 일본식 카레 정말 취향에 안맞더라구요. 이것저것 토핑해봐도 그냥 다른 음식이 되는 거 같구요. 매운맛 차이 비교해보면 더더욱 이건 아니다 싶구요. 남산돈까스 가끔 가는데 돈까스카레 시켜먹으면 더 답답합니다
지금 제가 50이고 엄마는 80이신데 먹고 사는 데 큰 불편은 없어도 엄마가 더 이상 카레는 만들지 않아요. 식구가 적어 조리 음식을 거의 안 하기도 하고 연세가 많이 드셔서 간을 잘 못 맞추시거든요. 저는 요리는 젬병이고...(제가 예전에 함 만들어 보려다가 돈도 많이 쓰고 시간도 약 4시간 이상 걸린 적이..) 그냥 3분 카레 사다가 정육점 돈까스 튀겨서 거기 얹어 먹거나 먹다 남은 고기 구워 카레 부어 먹거나...그러고 살아요, 즉석카레는 오뚜기가 최고인데 조리용은 카레여왕도 저는 괜찮더라구요. 풍미가 좀 짙어서 그런가..
그런데 정말 가끔 집 카레 정말 맛있게 한 거 먹고 싶을 때가 있거든요. 감자 많이 들어가고 고기도 잘 씹히고.. 그런데 고기는 칼로 썰은 느낌 팍팍 살아야 하고 감자는 넘 오래 끓여서 잘 부서지고 그런데 이게 대체가 안돼요, 파는 데도 없고,
한번 뭐 먹고 싶은 거 꽂히면 먹어야만 해소가 되는 먹돼지라 그런지 요즘 집에서 만든 카레 생각이 많이 나서 긴 글 한번 올려봤어요. 전 사실 카레를 정말 좋아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