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좋아하는 단어중의 하나가
가끔 이라는 말이거든요.
그 단어는, 호젓한 가을산길 속에 코끝을 살짝 스치고 지나가는 실바람같은 몽글몽글한
어감이 손에 만져질듯, 느껴지잖아요.
오늘, 생각나는 일인지 아니면 평소에도 종종 생각나는 일인지는 모르지만,
올해 16살이 된 딸아이가 초등학생이었던 시절은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을정도로 피곤해요.
그당시 우리 아이가 다녔던 초등학교는 어찌나 유난스러웠는지
선생님들도 반평균이 혹여라도 떨어질까봐 노심초사하고,
늘 시험기간이면, 그 일대 놀이터가 텅텅 비었던 전교생 50명뿐인 그 곳.
어릴때부터, 공부머리가 없었던 딸아이가 제일 못했던 과목이 수학이었어요.
4학년으로 접어들면서 이젠 여름방학에도 이주나, 학교에 가서 멘토링수업까지 들어야 했어요.
수학점수가 60점이면 안들어도 된다는데, 55점이라서 나가야 했던거에요.
그때 담임에게 전화가 오던날, 반평균운운하시면서 격앙된 목소리로 아이교육은 신경쓰시냐고.
그날 병원에서 제왕절개해야 할 상황이라고 해서 급하게 병실잡고 어수선했던 하루였는데
선생님께 그런 전화까지 받고 기분 정말 바닥까지 내리 꽂히더라구요.
물론 학원도 보내고, 문제집도 풀었지만, 유난히 수학을 이해못하는 아이라 저도 힘들었던건데
그 아이의 엄마니까 어떤 방법으로든 책임을 지라는 식의 말씀에 그저 죄인마냥 네네,,네..
그렇게 오학년이 되었을때 아이는 본격적으로 왕따를 당하더라구요.
공부못한다고.
딸아이한테도 이렇게 당하니 화가 나니깐 한번 제대로 공부좀 하면 안되겠냐고 해도
친구도 한명도 없는 무기력한 상황에서 어떤 힘도 내질 못했어요.
하교후면 남자아이들이 쫒아오면서 눈썩어 냄새난다고 놀려댔대요.
여자아이들도 우리애만 나타나면 멀찌막이 떨어져있고, 캠프갔을때에도 멀리 떨어져 소근거리기 일쑤고
결국 2학기때 학교 옮기고 수학과외 붙였어요.
수학과외붙이니까 성적 금방 오르더라구요.
해보니까 성적우수상도 놓치지않게 되자 이렇게 쉬운것을 왜 그땐 어려워했는지 모르겠다고 하는거에요.
전학오기전까지
왕따당하는 우리아이에게 그나마 말이라도 걸어주던 친구 한명 있었어요.
그 친구도 인기가 없어서 우리아이랑 동병상련식으로 의지했던 친구였어요.
고맙고 소중했던 친구였는데
그 친구네 엄마가 저만 만나면
두시간이든, 세시간이든 그 아까운 시간을
온통 자기 딸자랑만 하는거였어요.
공부잘한다고, 영어공부잘한다고, 수학잘한다고,
그 친구네 엄마도 우리딸이 공부못해서 난감한것 다 알고
학원다녀도 성적이 우수하지 않은것 다 알고
친구없어서 외로운것 다알면서
자기딸자랑을 그렇게 많이 할때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고 싶은 충동을 참았어요.
그래야만 우리애가 그나마도 하나있는 친구 안잃을까봐서.
(나중에 우리애가 그 친구에 대해 이야기할때, 그렇게 친하지않았다고,
늘 그 친구는 자신과 있는것을 누가 안보나 눈치보듯이 챙피해했다고,
언제나 발뺌하려던 자세가 있었다고, 말을 하더라구요.)
그렇게 우리애랑 같은 학년이고 5년동안 서로에게 가장 친했던 단 한명의
친구였으면서 그렇게 시간이 되는대로 자기딸 자랑만 했던 그 엄마에게서
저 솔직히 상처 받았거든요.
한마디 말도 못하고.
맘같아선 힘차게 솟구쳐오르는 한마리 고래처럼 그렇게 몸을 비틀고싶은
충동을 참았던 제가 너무 비굴한걸알면서도.
우리아이도 글짓기를 잘하긴해요.
이미 커다란 상들도 많이 받아왔지만 자랑은 안하거든요.
그건 제 삶의 어떤 궤적인거지 열심히 또 살아가고 있는 타인들에겐
어떤 의미도 아니거든요.
그런데 그 엄마의 자랑은
나,무시하지마~~라고 몸을 부풀리는 모습같기도했어요.
그런 모습앞에서 또 아이러니하게 정말 상처받고 작아졌던 나..
난 뭘 자랑해야 하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없는 나자신이 너무 한심해서
나이가 좀더 들면 그땐 생기려나 해요.
왜 저는 자랑할 밑천이 하나도 없는걸까요.
혹시 저같은 사람 있으세요..
제가 저렇게 일방적으로 몇시간씩 자랑하는 사람들에게
혼자 상처를 많이 받는 편이어서
어쩌면 유난히 힘들고 어려웠던 어린시절의 원인도 있을거에요.
그런 사람들을 겪으면 두번다시는 안 엮일려고 하거든요.
그러다가, 얼마전에 또 저렇게 붙들려서 두시간가까이
자식자랑하는 분앞에 앉아있었어요.
무슨 이야기를 해도, 그것이 신앙이든, 날씨든 무엇이든간에
교묘히 자기 아이들자랑으로 귀결되는 게 너무 신기했었어요.
그렇게 힘들면 일이있다고 일어나면 될것을,
중간에 말을 끊기가 힘들어서 듣고듣고,
남의 안좋은 소문을 알리는 전화주는 사람도 싫은데
자신의 자랑을 너무 떠벌리는 사람도 제가 감당을 못하겠어서
저는 늘 쓸쓸한가봐요.
자랑할 밑천도 없고...
나이 한살 더먹고 따라서 우리딸아이도, 한살씩 더 먹으면서
이런 기억들이 떠올라요.
그중엔 좋은기억,행복한 기억도 많을텐데 왜 하필이면
전 이런 우울한 기억을 꺼내고 있는지.저도 잘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