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수포자 학생들

수학 조회수 : 3,387
작성일 : 2011-09-16 17:08:35

뜬금없이 1학기 기말고사 대비기간이 생각난다.

중3내신반에 편성되어 성적순이 아닌 학교별로 반이 구성되었는데

공교롭게도 학원에서 제일 애지중지 하는 전교등수 한자릿수 학생들과

전교생의 총인원을 짐작케하는 등수의 학생들이

노란 카레에 주황색 당근섞이듯 섞여 있는 반이 탄생하게 되었다.

지금 일하고 있는 학원에 들어온지 얼마 되지 않았던 터라

그반의 담당이 내가 되었을때

[피할수 없으면 즐겨,선생님]

이라는 조언으로 치환된 위로를 받을때만 해도 앞으로의 4주간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전혀 예측이 되지 않았었다.

나는 즐길 수 없으면 피하는 사람인데 ..

그 반의 첫 수업.

똑같은 교복에, 똑같은 시험범위에

평균키 165cm 에서 ±10cm 의 범위내에 이상치가 존재하지 않는 고만고만한 학생들이 앉아있었다.

분필을 잡고 칠판에 방정식의 비읍자를 쓰기도 전에

한 학생이 건의를 했다.

"어차피 진도 한번 뺀 부분이니까 그냥 각자 풀고 모르는것만 질문하는 건 어때요? 전에 선생님도 그렇게 하셨는데 .."

뭐 나야 의자에 편하게 앉아서 조근조근히 첨삭만 하면 될 일이므로 흔쾌히 조와용,하고 승낙했다.

그때부터 교실안은 아비규환이 되었다.

잘하는 학생들은 50분동안 100문제는 풀어제낀다. 그 와중에 가끔 모르는 부분이 나오면 내 옆으로 와서

질문한다. 뭔가 대꾸를 다섯어절 정도 해주면 내 말을 중간에 끊고 "아,맞다.감사" 이러고선 다시 자기 자리로 가버렸다.

못하는 학생들은 떠든다. 내가 한번 쳐다보면 그 순간 3초정도는 닥치고 있다. 그리고 내가 다시 고개를 제자리로 돌리는 순간

또 떠든다. 어떤새끼는 뭘 처먹는다. 그래도 막되먹은 새끼들은 없어서 대놓고 먹진 않고 몰래 먹는다.

교무실로 돌아와 1학기 중간고사 성적을 보니 개판이다. 개중에는 100점만점에 8.3점도 있다. 2개 맞았나보다.

중3 1학기 기말고사 시험범위는 보통 이차방정식과 이차함수이다.

100점만점중에 최소 30점에서 최대 50점정도 되는 문항수의 문제들은

나올문제들이 뻔하다.사실 아무리 바보 똘추라도 무한 반복하면 할만한 것들이다.

근의 공식에 대입하는 쌩 기초 문제들과 다소 어려운 문제프린트를 준비해서 다음수업에 들어갔다.

"최소한 이건 풀어야 쉬는시간 줄꺼야."

거지같은 새끼들한텐 근의공식 프린트를 던져줬다. 그 인간들은 [근]이 뭔지도 모르는 인간들이다.

"x가 근이다."

"x가 근이라고."

"x가 근이거든."

계속 x가 근이라고 주입시켜 주면서 근의공식을 외우게 했다.

차마 근의공식∥까지 알려주면 감당못할 하극상이 일어날것 같은 예감에

그런건 존재하지도 않는 것처럼 근의공식|만 외우게 했다.

(계수의 정의와 계수에서 "계"는 ㄱ+ㅕ+ㅣ 라고 어금니 꽉 깨물고

웃으면서 친절하게 학생의 손을 붙잡고 손바닥위에 써주기도 했다.)

a와b와c도 모자라서 루트까지 섞여있는 근의공식. 게다가 분수의 형태.

수업시간 50분동안 그거 하나 못외우는 병신같은 새끼들을

그래도 한문제 맞춰보게 하겠다고 아둥바둥발버둥하는 내 처지가 불쌍하다.

그 다음시간.

간신히 외웠던 새끼들도 다 까먹었다.

살인충동을 억누르며 다시 처음부터 시작했다.

며칠동안 반복하니 그 반에서 근의공식에 대입하는 문제를 못푸는 학생들은 사라졌다.

나는 조심스럽게 근의공식∥를 제안했다.

이렇게 심플한것을 왜 이제사 알려주는거냐며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학생들과

됐다고,차라리 두자리수 제곱을 하겠다고,공식을 하나 더 외우느니 차라리 죽음을 달라며 거부하는 학생들도 생긴다.

뭐 알아서 해라.

(결국 약분의 벽에 부딪쳐 모두 근의공식 ∥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서술형문제로 근의공식을 유도하는 문제가 출제된다는 소문(?)이 들렸다.

무려 10점짜리.

이항을 하면 부호가 바뀐다는 것도 모르는 학생들인데.

아니,이항이 뭔지도 모르는 학생들인데.

아니,항 자체의 정의도 모르는 학생들인데.

근의공식유도하는것만 몇시간이고 반복했다.

못하는 새끼들끼리 모아놔도 개중에는 해내는 애들도 끼여있기 때문에

꼴통새끼들도 지만 못하는게 결국 쪽팔려서 하기는 한다.

인수분해를 이해시키기엔 너무 늦었으므로

그냥 객관식에 나온 보기들을 대입해서 성립하는것을 답으로 찍으라는 눈물의 방법도 알려주었다.

3x에 5를 대입하면 5x가 아니냐고 묻는 학생의 입을 때리고도 싶었다.

불현듯 대학때 생각이 난다.

복소해석학이라는 과목이 있었는데

실해석학도 간신히 B학점을 맞은 나는

절대 그 과목이 이해가 되질않았다.

게다가 그 과목의 교수님은 부분점수따위는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중간고사를 빵점맞고야 말았다.

빵점을 맞은후 그 과목에 대한 공포와 거부감에 휩싸여

출석만 한채 맨뒤에 앉아서 잡지책이나 훑어봤고

그런 나를 교수님께서는 경멸하는 눈빛으로 무시해주셨다.

결국 기말고사도 빵점을 맞은채

출석 100%에 레포트 100% 제출(물론 다 베꼈다)에도 불구하고

F학점이 나왔다.

(4학년때 땜빵하느라고 개고생했다. 결국 D로 올리는데 성공했다. 젠장할)

대학생까지 되어서 왜 밥 안떠먹여주냐를 논하는것이 아니라

그냥 못하는 학생들의 심정이 이해가 된다는 얘기다.

기초가 전혀 되어있지 않은 학생들은 한심하다.

하지만 정작 더욱 힘들어하는건 그 학생들 본인이다.

그동안 공부를 해두지 않은건 본인들의 책임이 맞지만

뒤늦게 하고싶어도 이미 늦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어쩔수없이 포기해버리는 학생들이 생기는건

가르치는 자의 책임도 있는것 같다.

이차함수에서는 위로볼록,아래로볼록과 좁은 폭,넓은 폭을 찾는 문제에서

절댓값이 뭔지도 모르는 학생들에게 쌍욕해가며 설명해주고,

(왜 -0.5가 -0.7보다 큰지,이해시키는데 하루의 팔할을 써먹기도 했다 히잉)

지들도 맞추는 재미가 생겼는지 히히덕거리면서, 서로를 무시하면서 연습장에 낙서가 아닌 뭔가를 끄적거리기 시작했다.

방정식의 근의공식이(판별식부분) 함수에도 쓰일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선

진짜로 가슴벅차했던 학생들도 있었다. (진짜 웃겼다 ㅋㅋㅋ)

오히려 보충은 잘하는 학생들 위주로 해줬다. 수준있는 문제들로만 구성된 프린트로 따로 더 봐주니 좋아라 했다.

이렇게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 했던 4주간의 시험대비기간이 끝났다.

결과는.

잘하는 애들이야 냅둬도 잘하니까 상관없고.

8.3점 , 12.6점 , 17점짜리 학생들은 더 이상 없었다.

못하는 학생들중 최저점이 48점이었고 그 학생을 제외하고 50점 이하의 학생은 없었다.

나는 별안간 거지같은 학생들의 우상이 되었다. (싫다고 .. !! ㅡ_ㅠ)

덕분에 나는 원장님의 하트뿅뿅을 받게 되었지만

더이상 그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 아이들은 다른 선생님의 밑으로 들어갔지만

복도나 계단에서 만나면 여전히 친하다.

시험대비프린트 작업을 하던중

지난 학기 생각이 나서 그냥 끄적거려봤다.

이번 중간고사에는 고1 최하위권 학생들을 맡았다.

공교롭게도 이번 중간고사 범위에도 함수가 들어간다.

유리함수,무리함수 직전까지 들어가므로 중3범위내의 함수가 전부다.

이 녀석들도 근의 공식을 모른다.

나는 지난학기보다 한살 더먹은 병신들을 데리고 내일부터 시작하는 시험대비기간에 또 똥줄을 탈것이다.

피할수 없으면 즐기라고 .. -_ㅠ

가져온 곳  : 
카페 >학원강사모여라
|
글쓴이 : 수학수 | 원글보기

가져온 곳  : 
카페 >학원강사모여라
 
IP : 125.132.xxx.162
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와우
    '11.9.16 5:14 PM (118.46.xxx.133) - 삭제된댓글

    훌륭하고 책임감있는 강사네요.

  • 2. ...
    '11.9.16 5:14 PM (125.187.xxx.18)

    전 님이 쓴 글인 줄 알고 뭐라 해줄라 했는데 어느 학원강사가 쓴 글이로군요.
    공부 못하고 안하는 학생이 있으니 잘하는 학생도 있고 1등도 있는 거지 뭐 이런 강사가 다 있나.....
    지도 공부 좀 잘해서 그런 아이들 꼴 보지 말고 살지 .....

  • 3. ㅎㅎㅎ
    '11.9.16 7:05 PM (111.118.xxx.89)

    진정 수포자들을 위한 설리반 선생님 이시네요.

  • 4. 이런선생님
    '11.9.16 7:11 PM (112.169.xxx.27)

    만나면 수포자는 면하겠네요,
    애들한테 이정도만 해도 애정이 넘치는 선생님입니다,
    정말 현장은 개판이라지요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16962 혹시 클라우디아 다이어트 비디오 메일로 받으신 분 계시나요? 6 ........ 2011/09/18 2,861
16961 딸 에게 미안했습니다 10 미안해 2011/09/18 3,971
16960 어제 만남 엄마~ 아이들은 7살부터 초4까지 주도록 공부시켜한다.. 10 2011/09/18 4,024
16959 딴지일보가 또 해킹, 바이러스공격을 받고 있네요. 4 2011/09/18 2,804
16958 미워하는 마음을 마음에 품고 있으니 정말 힘드네요. 16 a 2011/09/18 3,923
16957 82가 좀 썰렁하네요.... 21 음... 2011/09/18 3,552
16956 전세금 내주기 위해 담보대출 하려는데 세입자 살고있는 상태에서는.. 아파트 담보.. 2011/09/18 2,426
16955 이거 사용하고 계신분 있나요?? 1 궁금이 2011/09/18 1,890
16954 이젠 야구 따위 쓰레기 운동은 안 봅니다. 10 각오 2011/09/18 5,186
16953 수학과외를 하고있는데요?? 2 중1맘 2011/09/18 2,907
16952 어제 나온거 보고,,, 두산 2011/09/18 1,831
16951 주식할때 쓰기 좋은 노트북 뭐가 좋아요?? 3 막내딸 넉두.. 2011/09/18 2,980
16950 샴푸만으로 염색이 될까요? 4 기분좋은날 2011/09/18 3,021
16949 나는 꼼수다에 들어가지지 않네요 5 단비 2011/09/18 2,650
16948 너가 나가서 나 대신 일하라는 남편의 말에 뭐라고 대답하나요 62 대답 2011/09/18 14,316
16947 바람피는 남편,모르는것이 나을까요? 4 직장여자 2011/09/18 4,509
16946 정신 차리고 살기 힘든 세상 3 보람찬하루 2011/09/18 2,491
16945 가지급금 찾으면 이자 안붙죠? 5 ... 2011/09/18 3,061
16944 공구했던 유기 쓰시는 분들 4 유기 2011/09/18 3,579
16943 남대믄시장에어른단추파는곳 2 단추 2011/09/18 3,102
16942 회원 갱신 기간.. 1 코스코 2011/09/18 2,068
16941 클립보드에 복사되었습니다. 원하는 곳에 붙이라는 메신저가 뜨는데.. 1 ........ 2011/09/18 6,138
16940 중앙일보에 "만삭의사부인 친정아버지"기사 보고 12 푸른 2011/09/18 6,030
16939 저도 수시질문입니다. 13 재수생엄마 .. 2011/09/18 3,056
16938 실내자전거가 허리디스크환자에겐 안좋을까요? 4 운동하자!!.. 2011/09/18 10,7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