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펌글>곽노현 사건 바라보기...함께 읽고 얘기해봐요.

블루 조회수 : 809
작성일 : 2011-08-31 14:41:05
어떤 사람이 표상하고 있는 가치를 신뢰하고, 그 가치의 세계를 만들기 위해 시간과 마음을, 그리고 당신의 근육을 보탰다면, 당신은 그 사람의 타락에 분노해야 마땅하다. 당신은 당연히 그럴 권리를 갖는다. 하지만 무엇보다 먼저 그 타락을 단정하는 목소리가 내 안에서 나온 내 목소리인지 살펴볼 일이다. 그저 지나가는 확성기에서 무책임하게 반복되는 소리들을 내 목소리로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근심해야 한다. 그 타락이 정말 타락인지 아니면 그저 손쉬운 재단인지 우리는 세심하게 살펴보지 않으면 안된다. 그건 그 가치를 공유했던 사람으로서 그 가치와 우리 자신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이면서, 그 가치를 표상했던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오랜만에 주신부님과 한 시간 남짓 대화했다.

대화 후반부 매개는 곽노현 사건.

구글플러스에선지 트위터에선지 '사람은 버리되, 정책은 지키자' 라는 말을 듣고, 아, 그렇지, 그래야지, 가볍게 마음 속으로 되뇌었는데, 주신부님과 대화하면서 내가 너무 게임 논리로, 전략적으로, 세상을,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구나, 생각했다. 버릴 때 버리더라도, 그 사람을 한번이라도 우리는 찬찬히 바라본 적이 있었던가. 정책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그 사람'을 찬찬히 살펴야하지 않을까.

소위 보수의 게임 방식은 딱지 붙이기, 피상화하기다. 거기엔 즉각적인 정서적 공감과 선동은 있지만 인간을 위한 사유는 없다. 세상의 속도는 사유라는 쉼표를 허락하지 않는다. 소위 보수는 그 속도를 더욱 가속화한다. 소위 진보도 그 속도 속에서 휩쓸려간다. 여기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장기판의 졸이나 말이 아니다. 여기 사람이 있다면 여기 정신이 있고, 철학이 있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감정이 있고, 욕망이 있고, 또 소망이 있을테다. 그 사람을 졸로, 말로, 포로 바라보기 전에 인간으로, 입체적인 실존으로 바라보는 사유의 호흡이 필요하다.

보수의 틀짓기.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만들어내는 세상의 온갖 현상과 그 현상이 갖는 입체성을 평면화하기. 법 이전에 도덕을 이야기하는 한겨레, 경향, 그리고 소위 진보 몇몇 시민단체들. 문제는 전략적인 관점에서 '보수의 틀짓기'에 빠져 '우리끼리' 분열하고 있다는 데 있지 않다. 문제는 사람과 그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관계, 그 관계의 총합인 사회라는 복잡하기 짝이 없는 세계, 그래서 다시 모순과 이율배반으로 둘러싸인 '인간'를 바라보는 시선을 단편화하고, 사유할 수 있는 기회를 자진해서 포기하는데 있다.

주신부님은 이렇게 말한다, '게임의 속도를 늦춰서 사유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내는 것'. 소위 진보라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은 정치적 역학의 틀 속에서 스스로 자진해 파블로프의 개가 되어가는 즉물화된 반(反)사유의 고리를 끊어내는 일이다. 어떤 인간을 타락으로 단정하기 전에 그 인간의 입체성을 고민어린 사유를 통해 재구성하고, 그저 나와 같은 한 인간으로 바라보는 고민을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일이어야 한다. 도덕적인 단죄나 법률적인 판단은 그 이후 일이다.


소위 보수나 진보로 자처하는 이들이 똑같이 빠지기 쉬운 함정은, 많은 것을 진영의 논리와 정치적 역학를 고려한 전략과 전술의 눈으로만 사태에 대처하는 것이다. 분명히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으로 무엇인가를 '뛰어 넘을' 수 있을까?

진정 '대안'을 추구한다면, 이 현실의 역학을 고려하면서도, 여기서 종종 놓치는 세밀한 삶의 결, 인간의 결을 읽어서 그 안에 깃든 고민과 고뇌로 공감을 확대해야 할 것이 아닌가? 질 때는 지더라도 무언가 다르게 보는 눈을 얻고 져야 할 것이 아닌가?

우리는 은연 중에 어떤 '희생의 메카니즘'에 종속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희생에 기대어 분노하고, 소위 '더 순결한' 분노와 저항이라는 전략과 전술을 위해서 '희생'을 당연시하거나 눈감지는 않는가? 이 '순결한 가학증'이 세상을 구원할까? 천만에. (출처)

- 주낙현 
IP : 222.251.xxx.253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사랑이여
    '11.8.31 2:56 PM (210.111.xxx.130)

    회의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특히 현 정권 들어서 영상뉴스를 믿으면 안 된다고 강하게 주장하고 싶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곽 교육감 문제...
    법원이 현명한 판단을 해줄 것으로 보지만 현 정권에 한결같이 비판적인 박찬종 변호사마저 곽 교육감에 대한 우울한 판단을 내놓으시더군요. 걱정입니다.

  • 2. **
    '11.8.31 3:04 PM (203.249.xxx.25)

    정말 마음에 와 닿는 글입니다.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14039 여동생,남동생 아이들(조카) 생일 챙겨주시나요? 7 어린조카 3.. 2011/09/19 1,562
14038 시어머니랑 남편이 애가 말랐다고 스트레스줘요 3 흙흙 2011/09/19 1,325
14037 등산하고나니 무릎 아파죽겠어요.. 방법 좀.. 12 등산바지 안.. 2011/09/19 3,141
14036 우유 중 어떤것이 맛있다 생각하시나요 20 시판되는 2011/09/19 2,920
14035 감기가 너무 독하네요. 3 ... 2011/09/19 1,270
14034 장기 새입자 이사비 줘야하나요? 1 전세 2011/09/19 1,579
14033 캐리어 잠시 맡길 곳 있나요? 1 뉴욕 2011/09/19 1,011
14032 다 그런가요? 마이홈이 2011/09/19 747
14031 다른댁은 초등애들 긴팔입혀 보내셨죠? 6 오늘 2011/09/19 1,995
14030 시중에 흔피 파는 샴푸,바디샴푸 추천요망 6 .. 2011/09/19 1,887
14029 유기그릇공구 가격이 얼마에요? 1 찿아주세요 2011/09/19 1,959
14028 성폭력사범 3년새 33%↑…대책 실효성 의문 1 세우실 2011/09/19 746
14027 우리가 원하는것은 이건 아닌데.. .. 2011/09/19 813
14026 쿠폰으로 다녀본 피부 샾 후기 1 ... 2011/09/19 2,029
14025 육식을 안하면 갑자기 늙나요? 16 ... 2011/09/19 4,055
14024 오래 통화할수있는 무선전화기추천요! 1 ... 2011/09/19 1,279
14023 부모님 북경 여행이요 8 북경 2011/09/19 1,638
14022 암막 커튼 추천해 주세요~~~ 2 찬바람 2011/09/19 1,503
14021 아들키우는데 도움될 육아서 추천부탁드려요 2 늦둥이 2011/09/19 1,129
14020 가족중에 본인만 채식주의자이신분들 있나요? 8 채식 2011/09/19 1,770
14019 보험 잘 아시는 분 계신가요 9 아하핫 2011/09/19 1,115
14018 갑자기 가을이 됬어요 11 ㄹㄹㄹ 2011/09/19 2,118
14017 집주인이 집을 매매한다는데 이사비받을수있나요? 5 <급요청질문.. 2011/09/19 1,758
14016 김경호에 대한 궁금증 좀.. 13 알려주세요 2011/09/19 3,310
14015 처음 서는데 트레이닝 상하복셋트 입어도 되나요 12 녹색어머니 2011/09/19 1,5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