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Banner

따뜻한 미소를 떠올리게 하는 기억...

행복은 조회수 : 1,084
작성일 : 2016-03-20 22:45:35

일요일인데.. 세남자들 모두 밖에 나가 있고... 혼자 느긋하게 놀고 있는 저녁이네요..

간단히 저녁을 먹고 주방정리를 하다 냄비 수납장 한구석에 있는 녀석과 눈이 마주치니

웃음이 베어나옵니다...

지름 10센티남짓되는 빨간색 범랑냄비....

예쁘긴 하지만 너무 작아서 어디다 딱히 써볼데가 없는 그런 냄비입니다..

이 작은 냄비가 제 주방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게된지 벌써 십오륙년은 훌쩍 넘었네요...

음전하고 조용했던 큰아들과 달리 부산하고 활동적이었던 작은아들놈이 네 다섯살쯤 무렵에..

아이와 같이 수입잡화점-그때는 여기 가서 구경하는 게 참 재미졌답니다.  외벌이 월급쟁이 가계라 넉넉치 않아

늘 구경만 했다는..

하여튼 시장갔다가 방앗간 못지나가는 참새모양 한번씩 들러서 구경을 했거든요..

근데 그날 우리 아들놈이 그 예쁜냄비를 건드려 떨어뜨렸답니다..

그래서 빨간 범랑손잡이에 콕하고 상처가 생겨버렸어요...

울며 겨자먹기로 정말 쓸모없을 것 같은 그 냄비를 사가지고 왔더랍니다.

쓸모도 없을 것 같은데... 가격은 왜이리 비싼지...

데려오고 몇년은 마음이 쓰려서 쳐박아두고 쳐다도 안봤답니다.

그때 울 작은 아들놈의 어쩔줄 몰라하던 표정...과

고개를 푹 숙이고 절임배추마냥 기가 죽어버린 꼬맹이가 이젠 군대도 다녀오고 엄마 설거지도 도와주는 늠름한

아들이 되었네요...


요즘엔 저 냄비와 눈이 마주치면... 그 날들이 떠오르네요...

종이장같은 체력에 아들 두놈과 씨름하고... 참으로 유별난 시댁식구들과의 화합(?) 시달리며 살아냈던 그 날들이요..

남편은 새벽에 나가면 열시이전에 들어오는 날이 손에 꼽을 정도이고...

경기도에 조성된 신도시에 만삭으로 입주해서.. 다섯살 큰놈 손잡고 전입신고하러 한겨울 칼바람속을 40분 걸어갔던..

그시절말입니다....

 우리 남편은 그 때 왜 휴가라도 써서 그런일을 해결할 생각을 안했었는지 말이죠...

그때 춥다고 힘들다고 투정 한마디 안하고 제손을 붙잡고 걸어주었던 우리 큰아들한테도

고마움이 솟구치네요. ㅎ ㅎ

그랬던 아들이 이제 삼년만 있으면 그시절 아버지의 나이가 되어 가고 있답니다...

반백년 넘겨보니 인생이... 참 별게 없네요..

그리고 행복은 이렇게 떠오르는 추억들의 집합인 것 같습니다..


집앞 나무끝에 물이 올라 마치 보석인듯 반짝입니다..

다시 봄이 왔네요...




IP : 124.50.xxx.18
5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 .
    '16.3.20 10:53 PM (39.113.xxx.52)

    어린 시절하면 늘 떠오르는 장면이 있어요.
    꼭 따뜻했다고 하긴 그렇지만 친구들하고 놀거나 혹은 만화방에서 시간 가는줄 모르고 만화보다가 갑자기 어둑해진걸 깨닫고 집에 가는길. . .
    엄마한테 혼날까봐 급한 마음에 집에 가는길엔 어느집에선가 석쇠에 생선굽는 냄새, 된장찌개냄새같은게 났었죠.
    그리고 평범한 식탁이었지만 저는 시래국에 갈치구이를 참 좋아해서 난 이렇게 먹는게 제일 좋아~ 하면 엄마가
    아이고~ 그놈의 입맛은. . .하면서 웃으시던 기억요.

  • 2. ...
    '16.3.20 11:25 PM (220.116.xxx.159)

    원글님 글 잘 쓰시네요

    수필 같은 거 써 보셔요^^

    글에서 반질반질 윤이 납니다.

    덕분에 행복한 일요일 밤이에요.

  • 3. 글쎄요
    '16.3.20 11:46 PM (223.62.xxx.8)

    아들이 사람인지 냄비가 사람인지 헷갈리네요.

    뭔가 따뜻한 글이여야 한다는 듯..의인화가 넘 심해서...

  • 4. 돼지귀엽다
    '16.3.21 12:36 AM (211.208.xxx.204)

    잘 읽었습니다.

    그런 추억들이 하나하나 모여
    삶이 완성되네요.

  • 5. ㅎㅎㅎ
    '16.3.21 8:16 AM (211.208.xxx.144) - 삭제된댓글

    그래서 나이든 사람이 물건을 못 버리나봐요.
    물건에 추억이 깃들여 있으니...
    행복한 글입니다.^^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541204 ” 뉴스타파에 몰려간 어버이연합" 10 입금완료군 2016/03/22 1,511
541203 막장 막발의 새누리 하태경을 잡으러 출격한 전 포스코 사장 5 ... 2016/03/22 967
541202 고등자녀 두신 분들 간식 문의요. 18 배고파 2016/03/22 4,308
541201 미국 오바마 18 미국 2016/03/22 3,028
541200 교복치마와 셔츠 매일 11 빨래 2016/03/22 2,389
541199 돌 축의금 ^^ 2016/03/22 585
541198 육룡이 나르샤 마지막회 너무 잘 봤습니다. 22 .... 2016/03/22 4,162
541197 남자들끼리도 못생기면 무시하고 깔보나요? 8 딸기체리망고.. 2016/03/22 3,621
541196 베이비시터 ㅡ 유상원 소름끼치게 나쁜놈이네요 16 ㅇㅇㅇ 2016/03/22 6,008
541195 아들 키우는 엄마 맘은 이거죠... 14 00 2016/03/22 6,055
541194 남편 런닝셔츠 2~3번입으면 누래요 18 런닝 2016/03/22 3,860
541193 베이비시터 반전 장난아니네요 10 노라 2016/03/22 7,422
541192 민주당 이미 망했어요. 더이상 기대할 것도 없는데요 뭘.. 19 .. 2016/03/22 2,532
541191 아이와 환경호르몬 얘기하다가.. 1 ... 2016/03/22 613
541190 시부모가 너무 싫어 이혼하고 싶어요 22 ..... 2016/03/22 17,658
541189 육룡이나르샤에서 이도가 분이 아들인가요? 6 설마 2016/03/22 2,716
541188 36개월아기 엄마와일주일 떨어지는거ᆢ 3 모모 2016/03/22 1,221
541187 82 첫댓글 읽는게 두려워요 11 도대체왜 2016/03/22 1,341
541186 무릎연골연화증 아시는 분? ㅠㅠ 10 happy 2016/03/22 3,077
541185 만9개월 여아 운동발달 좀 봐주세요 7 ㅇㅇ 2016/03/22 752
541184 우유팩으로 식용유병 받침~ 8 꽃샘 2016/03/22 2,595
541183 일적으로 잘풀리신분.. 사회생활 잘 하시는분 4 ..... 2016/03/22 1,663
541182 베이비시터 좀전에 조여정 남편이 면회와서 뭐라한거에요? 5 blueu 2016/03/22 3,199
541181 삼성경제연구소(seri.org) 애용하셨던 분 계세요? 3 dd 2016/03/22 1,338
541180 초등학교 6학년 참고서 작년꺼 사도 되나요? 5 ... 2016/03/22 7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