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옛 운동권 30대 아저씨의 송곳 오늘 후기

불펜펌 조회수 : 2,008
작성일 : 2015-11-23 17:47:17
그나마 이런 분들이 계셨기에.....
-----------

송곳]옛 운동권 30대 아저씨의 철없는 송곳 오늘 후기

오늘자 송곳 보면서... 좀 쓰잘데기없는 술주정이 하고 싶어졌습니다.

개인적으로 송곳의 배경인 뉴코아-이랜드 파업 때 연대했었죠.
다만 당시 최종적 성과처럼 유쾌하기만 한 기억은 아니었습니다. 극적이었던 만큼,
우리사 지리한 인생사와 각양각색의 개인들의 반응, 드라마를... 마치 송곳처럼, 불편한 진실처럼,
불편함에 가슴이 누더기가 되어 움직일수록 더 아픈 고통들이 있습니다. 작가 최규석님이 너무 잘 잡아내죠.

술주정으로 말씀드리면, 사실 여러분들 알고 계시는 운동권들,
뭐 그리 희한하거나 독특한 유전자를 갖고 살아가는 사이코패스들은 전혀 아닙니다.
(북한을 지지하는 일부들은 걍 넘어갑시다... 그들이 운동권 전부가 아니에요. NL도 PD도 너무 오래 전 구분이고,
애초 그 구분 이전에, 전 그냥 이 술주정 글에선 그들의 순수한 시작에 집중하고 싶습니다)



제가 그랬고, 특히 많은 학생 운동권들이,
대체로 많은 경우는 지금 지현우, 이수인 같은 마인드로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제가 힘들든 말든 전혀 신경 안 썼죠. 저에겐 옳고그름의 문제가 너무 중요했습니다.
전 이수인보다도 훨씬 더 좋고 여유로운 경제적 조건에 있었죠. 제가 억압과 불의를 당해서가 아니라,
비정규직 마트 판매직들의 처지를 위해 육사 출신 정규직 관리자로서 모든 걸 던진 이수인처럼,
부당한 현실에 마주한 분들을 외면해야 할 정도로 생활이 절박하진 않았습니다.

투쟁을 시작하기 전부터 스스로 느꼈습니다... 제발, 나 좀 조용히 살게 해달라.
너희들의 부정한 모습, 그걸 굳이 내 눈 앞에 보여서 날 도덕적 선택의 갈림길에 내몰지 말라.
이수인이나 저나, 많은 운동권들이나, 그 같은 선택지에서 부도덕을 차마 선택할 수 없는 스스로를 느낍니다.
그것이 부도덕임을 모르는 자에게 뭐가 고민이겠습니까. 부도덕임을 알기에 고민하게 됩니다.
차라리 그게 부도덕임을 내가 몰랐기를 바랄 정도로, 나름 괴로운 선택들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결국 세상은 개인을 가만히 두지 않습니다. 특히 한국처럼 고도의 압축성장으로,
너무 많은 사회적 모순들을 가지고 있는 체제는 어떻게든 개인을 그 같은 선택지로 몰아세웁니다.

거기서 이수인의 길을, 예전의 저 포함 많은 분들이, 돈 한 푼 안 나오고 소위 스펙엔 지대한 마이너스이자
주홍글씨가 되는 일임을 알면서도 결국은 그 길을 선택합니다. 어쩔 수가 없습니다. 저희도 편하게 자고 싶거든요.
정말, 편하게 자고 싶습니다. 웃는 얼굴로요. 제 개인의 고통보다 훨씬 심하고 다수의 몫인 고통들을 외면하면서도,
스스로 아 히밤 나도 좀 숨 쉬고 살기 위해 그랬어 라는 말이, 스스로에게도 안 먹힌단 걸 깨닫거든요.

하지만 이젠 시간이 지날수록 구고신의 길을 걷게 되고 구고신의 딜레마에 빠지게 됩니다.
이수인은 참 순수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습니다. 녹록치 않은 현실을 원하는 현실로 바꾸려면,
결국 (레닌이 말한) 전략과 전술의 문제에 마주합니다. 즉, 이수인이 원하는 세상, 사실 참 소박한 세상을, 어카면
가급적 최소 인원의 최단 기간의 최소 고통으로, 가장 효율적으로 빠르게 만들 수 있나 문제에 부딪힙니다.

극중 구고신은 전략과 전술의 달인처럼 나옵니다. 세속화된 부분도 강조돼 연출되는데,
어쨌든 삼청교육대 고문 피해자로서 그의 의도는 결코 더럽지 않고 사실 매우 존경스럽게 표현됩니다.
하지만 그래도 원칙주의적이고 순수한 이수인과 갈등을 빚게 되죠. 오늘 對경찰 문제에서 정점을 찍었습니다.

뭐... 구고신의 딜레마까지 가시는 분들은 사실 절대 적지 않고, 저 역시 심하게 겪었고 지금도 겪고 있지만,
이것을 제대로 설명하려면 너무 많은 얘기가 필요합니다. 안 그래도 길어지는 글에 덧붙이고 싶진 않네요.

다만 걍 얘기하자면, 이수인처럼 운동을 시작한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구고신의 딜레마에 빠집니다.
그리고 그냥 경험적으로, 이후 두 가지 큰 경향으로 나뉩니다. 운동을 때려치던가, 아니면 또다른 구고신이 되던가.
솔직히 “순수한 혁명은 공상 속에서 가능하다”는 레닌 말처럼, 저 같은 이상주의자들이 겪게 될 통과의례입니다.

(오해를 살까봐 말씀드리면, 구고신이 뭐 어린 경찰(드라마에선 30대로 보였으나 만화에선 훨씬 어림)에게
너 이 색휘 뭐야? 하면서 모자로 머리 치고(근데 전 7년 이상 운동권 생활에서 전혀 못 봤음) 강경하게 대했지만,
이 구고신의 길이 무슨 IS 같은 애들의 테러리즘 같은 건 전혀 아닙니다. 좌파의 억울한 오해는,
좌파는 테러에 반대합니다. 사회변혁은 다수 행동으로 가능하지 소수행동은 역효과일 뿐이죠.
더구나 민간인 희생을 개의치 않는 테러리즘에 무슨 지지를 하겠습니까ㅠㅜ)



그래서... 결국 운동권들은 김희원(정부장)이 묘사하는 길을 걷게 된다???

극중 정부장은 노조를 통제할 능력을 잃었다고 상부에 찍혀 사실상 팽 당한 처지가 되면서,
회의 자리도 소외되는 스스로의 입지를 느끼며 어떻게 보면 마지막 카드로, 이수인과 독대를 시도합니다.
거기서 정부장이 말하는 게 참... 저 같은 나름 전직 운동권들에겐 마음을 흔들 멘트들을 하죠. (뻔하긴 하지만;;)

이미 수십 년 전에 영국에서 나왔던 얘기입니다.
20대에 마르크스주의자(이 맥락에선 그냥 타인을 위해 체제 변혁을 시도하는 젊은이들) 아닌 사람이 없고,
그 이후엔 마르크스주의자 50대는 없다고... (절대 정확한 표현 아닙니다. 기억 불확실. 근데 대충 뉘앙스는 맞아요)

그래, 이수인씨 착하고 옳고 정의로워. 근데 난 먹고살기 바빠. 당신이 날 경멸할 자격이 있나?
이거 다 먹고살자고 하는 거 아냐. 당신 같은 사람들 봤지만, 미래의 당신이 당신을 보면 후회할걸?
그렇게 잘난 당신이 그저 먹고살자고 살아남자고 아둥바둥대는 우리를 비난할 수 있을까?

이런 메시지에 이수인은 나름 당황합니다. 그도 사실 가정의 품으로 돌아가고 싶었고,
확실한 성과를 보증할 수 없는 싸움에 이미 지쳤습니다. 고민할 만하죠.



사실 근데, 이리 길게 술주정을 한 건 제가 이 말을 하고 싶어서였습니다.

아오 히밤, 저, 전혀 후회 안합니다.
결론을 미리 씁니다. 지난 거의 8년간 소위 운동권 경력으로,
이후 군대를 갔다왔음에도, 사실 좀 고학력인데도, 일자리 많다던 세종시에서 취업 무지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겨우 중소기업도 아닌 소기업에 겨우겨우 취업해 생계를 이어나가게 됐습니다.

같은 학교 함께한 친구들 중 제 나이에 생계 고민하는 케이스 별로 없습니다.
누구는 공중파 아나운서고 많은 수는 메이저 언론 기자고 그외 다들 다 엘리트들로 잘들 살아갑니다.
반면 저는 지금도 소주 1병 담배 1갑 사는 것도 ㄷㄷ 심사숙고하며 사는 위치에 있죠.

근데... 저는, 진짜 나름대로 무쟈게 힘든 세월들을 보냈다고 생각하지만,
적어도 후세대들에게 “대충 적당히 짜져서 세상에 적응해라”라는 메시지는 전달하고 싶진 않네요.

그냥 이 한 마디를 위해 길이 너무 길어졌습니다.

철없던 20대 혹은 30를 겪었다고 후회한다?

정말 천만의 말씀입니다. 전 제 신념 때문에 하루 한 끼 먹던 20대를 보냈지만,
지금, 한 회사의 일개 사원으로 일하는 지금 시점에서 후회되는 건 무엇일까요?



오히려 반대입니다. 나름 화끈한 20대였는데, 더 화끈하게 보낼걸이란 후회가 있습니다.
이전에, 뉴코아-이랜드 투쟁 연대했었던 사람으로서 말씀드리면, 정반대입니다.

저는 오히려 지금 안정적으로 돈만 버는 제 자신이 너무나 부끄럽고,
20대에 모든 걸 버리고 그 분들 위해 제 나름의 걸 던졌던 제 자신이 후회스럽습니다.
왜 난 나의 더 많은 걸 던지지 못했나 싶은 생각 때문에요. 그러면........



그러면... 글쎄, 지금보단 좀더 숙면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전 그냥 평범한 한화팬으로 행동해 왔지만, 오늘 정부장 메시지에,
또다른 정부장들이 넘 많이 생기진 않았음 하는 바람입니다. 저보단... 대체로 젊으시잖아요.
남들이 정해둔 케이스 안에 만족하는 삶이 목표가 아녔다면, 거기에 20대라면, 기죽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IP : 112.145.xxx.27
7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원글
    '15.11.23 5:48 PM (112.145.xxx.27)

    출처. http://mlbpark.donga.com/mbs/articleV.php?mbsC=bullpen2&mbsIdx=3761220&cpage=...

  • 2. ㄴㄴㄴㄴ
    '15.11.23 6:15 PM (223.62.xxx.128)

    저도 그래요
    딱히 운동권이었다고 할수 없는 위치이긴 했지만 데모한거 후회해본적 없고 정부장처럼 말하고 싶지 않답니다
    인생은 선태의 연속이라 생각해요
    그때는 그걸 내가 선택한거죠^^

  • 3. 무어라 할말이
    '15.11.23 6:22 PM (123.228.xxx.71)

    그저 기성세대로 미안한 마음.......

  • 4. 나의 선택
    '15.11.23 7:52 PM (122.196.xxx.116) - 삭제된댓글

    223님 쓰신 것처럼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죠. 제가 이수인과 같은 선택을 했을 거라고 또는 할 거라고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정부장처럼 말하지고 정당화하지는 않을 겁니다. 얼마전에 본 선택에 관한 짧은 TED 강연이 기억나요. - 어려운 선택에 부딛쳤을 때 우리는 스스로 이유를 만들어 선택을 합니다. 따라서 선택을 통해 "내"가 되어가는 거라고. 그러니 힘든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은 재앙이 아니라 자기 인생의 저자가 될 수 있는 축복이라고.

    https://www.ted.com/talks/ruth_chang_how_to_make_hard_choices

  • 5. 선택
    '15.11.23 8:19 PM (122.196.xxx.116)

    223님 쓰신 것처럼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죠. 제가 이수인과 같은 선택을 했을 거라고 또는 할 거라고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정부장처럼 말하지도 정당화하지도 않을 겁니다. 얼마전에 본 선택에 관한 짧은 TED 강연이 기억나요. - 어려운 선택에 부딛쳤을 때 우리는 스스로 이유를 만들어 선택을 합니다. 따라서 선택을 통해 \"내\"가 되어가는 거지요. 그러니 힘든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은 재앙이 아니라 자기 인생을 이루어내는 축복이라고. -

    http://www.ted.com/talks/ruth_chang_how_to_make_hard_choices

  • 6. 혹시
    '15.11.23 9:56 PM (121.172.xxx.94)

    댓글을 보신다면,
    술 한 잔 따라 드리고.

    인생은 진행 중이니 후회도, 절망도 없이
    편하게 사셔도 된다고 말씀 드립니다.

    비슷한 경로를 거친 60대의 말이니 위로가 될까요.

  • 7. 전직운동권
    '15.11.24 4:45 AM (220.85.xxx.155)

    다 좋은데 좌파가 테러를 반대한다는 것은 틀린 말이죠.

    선거를 통해 변화를 꿈꾸는 좌파도 있지만, 혁명을 통해서만 세상을 뒤집을 수 있다고 믿는 좌파도 분명 있으니까요.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511561 산후풍이 무서워요 13 새옹 2015/12/23 2,324
511560 같은 여자로써 넘 서운했던 기억(글이 길어요) 11 ㅜㅜ 2015/12/23 3,559
511559 세월호 청문회 증인들..사전에 작성된 각본대로 말맞췄다 6 문건공개 2015/12/23 546
511558 아이가 원하면 애완동물을 계속 바꿔대는 동네엄마.. 18 이기적인사람.. 2015/12/23 2,233
511557 19금 테드, 너무 웃겨요. 5 1111 2015/12/23 2,853
511556 케시미어 줄은거 복원방법 없나요? 2 .. 2015/12/23 1,185
511555 테라스 샤시 했는데..이행강제금? 11 속상해요.... 2015/12/23 11,639
511554 캠퍼 니나 플랫 신으시는분! 3 요엘리 2015/12/23 1,845
511553 1월에 터키여행 괜찮을까요 5 달코미 2015/12/23 1,729
511552 층간소음 증명해보신분 계신가요? 7 2015/12/23 2,893
511551 초1 우리딸 어떻게 키워야할까요? 3 2015/12/23 1,061
511550 김건모 노래중에서요.. 아시는 분 16 도와줘 2015/12/23 1,909
511549 '40 넘으면 꾸며도 안예쁘다' 라고 생각하시는 분 45 정말 2015/12/23 6,712
511548 흑염소가 열이 있는 체질에는 안맞는건가요? 2 열매사랑 2015/12/23 1,567
511547 회식후 여직원들~ 13 행복한딸기... 2015/12/23 5,500
511546 안대희..김무성 만나 서울출마결심 3 개가나와도 2015/12/23 588
511545 아이가 어린이집을 안 간다네요 5 ㅣㅣ 2015/12/23 1,103
511544 학원 다니면 빠르지만 스스로 하는 힘은 약해지는게 아닌가요? 24 학부모 2015/12/23 3,421
511543 20년동안 너만 생각했다... 34 안개 2015/12/23 12,566
511542 우울증 있는 남자와 결혼 10 ㅡㅡ 2015/12/23 4,192
511541 흰머리 염색 안하시는 분들 외모는 포기하신 건가요? 41 염색 2015/12/23 9,138
511540 2015년 12월 23일 경향신문, 한겨레, 한국일보 만평 세우실 2015/12/23 435
511539 대전 사시는분들 봐주세요~ 11 음음 2015/12/23 1,714
511538 SBS보다 규모 큰 미디어기업은 ‘아웃소싱업체’ 외주파견업 2015/12/23 522
511537 남편이 칼귀인데요... 5 메리크리스마.. 2015/12/23 2,5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