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응팔에서 성동일이 나물을 사오는 것을 보고..

비닐봉지 조회수 : 2,795
작성일 : 2015-11-19 12:46:33


응팔에서 성동일이 나물을 사오는 것을 보고..

저의 비슷한 경험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조금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퇴근길에 전철을 내려 집에 오다 보면

전신주 옆에서 길거리 좌판을 펼쳐놓고 나물이나 더덕,

호박 같은 것들을 파시던 할머니가 계셨어요.

좌판이래야 박스를 뜯어서 넓게 펼쳐놓은거지만요.

 

그날도 마치 오늘날씨처럼 흐리고 바람도 불고

길거리에 낙엽들이 뒹굴고 있었지요.


아마 저녁 여덟시 정도 되었을 겁니다.

저처럼 귀가를 서두르는 사람들이 무심히 지나치는 길,

깜깜한 밤이었고, 전신주 가로등 불빛이 노랗고 동그랗게 비추고있었으니까요.

 

지나치면서 할머니 좌판을 보니

거의 다 파시고 남은 나물은 별로 없더라구요.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할머니께 가서 이천원 어치만 사달라고 했습니다.


할머니께서 까만 비닐봉지에 주섬주섬 담아주시는데,

그래도 좌판에 나물이 좀 남더군요.

 

그냥 갈까 하다가 삼천원을 더 드리고

그러니까... 오천원에 할머니가 파시던 나물을 다 사왔습니다.


"아이고, 다 팔았네~ 이제 집에 가야 쓰것네~

 고마워요 아저씨"

 

할머니 말씀에 미소로 화답하고

집에와서 아내에게 나물이 든 까만 비닐봉투를 건네며 그 얘길 했더니

아내가 타박을 하더군요.

어차피 아내와 나, 두식구뿐인데 누가 다 먹는다고 그렇게 많이

야멸차게 다 받아왔냐고 하면서,

오천원을 드리긴 해도 그냥 조금만 달라고 그러지..

그래야 또 다른사람들께 파실거 아니냐고 하면서요.

 

근데 제 생각은 그게 아니었거든요.

봉지 안에 든 나물이 우리 두 식구가 먹기엔 많은 양이란 건 저도 알죠.

하지만 바람불고 춥고 날도 저물었는데

그 할머니가 계속 길에 앉아 계실 것 같았거든요.

가져오신 나물을 다 파실 때까지요.


돈만 드리고 오는 것도 어쩌면 할머니께 커다란 실례나

혹은 괜히 할머니 마음에 스산함을 드리게 될 것 같기도 하고..

 

이야기를 하다보니 좀 그렇네요.

저는 착한 사람은 아닙니다.

도덕적으로 세상을 살아왔다고 할 수도 없고

급하면 불법주차도 하고..

그냥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백남기 어르신께서 당하신 일에 분노하는,

그리고 그 어르신이 왜 시위에 나오실 수 밖에 없었는지 이유는 쏙 빼고

엉뚱한 것들에 촛점을 맞추는 언론의 비겁함에 열받는

주변에 흔한 기성세대 중 하나일뿐이죠.

 

어쨌건..

엊그제 응팔에서 성동일이 나물봉지를 들고 오는 장면을 보고

갑자기 그때 생각이 났습니다.

아내랑 그 얘길 나누며 막걸리도 한잔 했구요.

 

참 팍팍한 세상이네요.

바다 건너 어디에선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되어 나가고

우리는 언제까지 일제시대부터 질기게도 우리를 괴롭히는 반역의 무리들을 봐야만 하는지

우리나라가 다시 일어설 수 있기는 한건지..


그냥 그런저런 생각이 들어서

몇자 적어 보았습니다.


아.. 점심시간 끝나가네요.

다시 오후근무 준비 해야죠 ^^


IP : 222.238.xxx.114
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훈훈
    '15.11.19 1:13 PM (210.105.xxx.253)

    좋은 글에 답글이 없어 첫댓글 다는 영광을 가져 봅니다 ^^

    두 내외분 선하게 행복하게 오래 오래 잘 사실 거 같아요~

  • 2. ...
    '15.11.19 2:10 PM (120.142.xxx.32)

    공동체란 이런 맘으로 굴러가야 하는데... 참, 요즘은 어디에 사나 싶습니다. ㅜ.ㅜ

  • 3. 또마띠또
    '15.11.19 3:19 PM (112.151.xxx.71)

    ㅎㅎ 울언니가 시장가면 항상 난전에서 상추 천원 이렇게 파시는 나이드신 할머니한테서만 샀어요. 버젓이 가게 차리고 하는 젊은 채소가게보다 안쓰러운 마음에 항상 난전 할머니들한테요. 어느날 다시마 환 만드려고 환 가게 들어가서 그 얘길 했더니 환집 아줌마 왈 저 할머니 하루에 얼마버는지 알아? 삼십만원이야. 원가는 얼만줄 알아? 자기 집에서 할아버지가 농사짓고(대량 아니고 그냥 텃밭수준) 할머니가 파는데 다들 그렇게 불쌍해 하면서 잘 사준다고, 가게 세도 안내고 완전 잘 벌지? 그러셨음. 무려 10년전 이야기임

  • 4. ...
    '15.11.19 4:32 PM (70.68.xxx.190)

    동감입니다.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513940 최태원 혼외자식 6 ... 2015/12/29 10,648
513939 4인가족 한 달 카드 이용 요금 대략 얼마나 나오나요? 15 카드 2015/12/29 3,280
513938 대치동 이과 고등수학학원 추천 부탁드려요 2 걱정맘 2015/12/29 3,243
513937 팔꿈치 통증으로 고통스럽네요. 6 사만티 2015/12/29 2,252
513936 주말에 당장이라도 떠나고 싶어요 6 2015/12/29 1,132
513935 괜찮은 남자는 빨리 채간다.. 26 ., 2015/12/29 10,860
513934 밖을 내다보니 1 .. 2015/12/29 969
513933 15년만에 만난 선배의 말 6 음믐 2015/12/29 4,042
513932 윤회의 비밀로 본 결혼과 이혼 20 인연 2015/12/29 14,204
513931 남편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 6 ... 2015/12/29 2,652
513930 재산이 넉넉하다면 힘든 직장 그만둘까요? 24 50살 2015/12/29 5,816
513929 방광염으로 두시간째 변기위에 앉아 있어요.. 16 아프다 2015/12/29 4,994
513928 왜 그렇게들 결혼 결혼? 33 ㅇㅇ 2015/12/29 6,008
513927 동서끼리 갈등 있으면 참 힘들것 같아요..??? 6 ... 2015/12/29 2,933
513926 선거구별 예비 후보자 현황 입니다. 우리가 지켜 보고 있음을 보.. 탱자 2015/12/29 607
513925 부모님 삶을 잘 마무리해드리기가 쉽지 않네요 14 부모님 2015/12/29 4,927
513924 남편이 아직도 귀가전이네요 6 속상 2015/12/29 1,717
513923 감기걸렸을때 먹는건 살로 안가나봐요 1 감기 2015/12/29 1,212
513922 손끝이 찌릿찌릿해요 3 . 2015/12/29 5,802
513921 전주에 너무 오래되지 않은 20평대 아파트... 6 이사하자 2015/12/29 2,899
513920 독일 직구로 3만원정도의 제품 구입시 배송비는 얼마정도 들까요?.. 2 직구 2015/12/29 1,004
513919 대상포진..? 걱정 2015/12/29 745
513918 의상학과. 포트폴리오 필요한가요?? .. 2015/12/29 603
513917 요즘 잠이 쏟아져요... 2015/12/29 613
513916 김건모...오늘따라 더 좋네요 5 힐링캠프 2015/12/29 1,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