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그래도..신해철.

... 조회수 : 713
작성일 : 2014-10-28 03:00:35

오래 전에 그는 자신이 독신주의에 가까우며 결혼에 별 관심이 없다고 말했어요.

어린 나는 마음이 아팠어요.

나는 그와 결혼하고 싶은데, 그가 원한다면 시부모님도 모시고, 사돈의 팔촌까지도 다 모실 수도 있는데..

그래도 날 만나면, 운명의 실에 이끌려 언젠가 날 만난다면

그도 마음을 바꿀 거라고 나는 믿었어요.

The Ocean 을 들으며 우리는 전생의 인연으로 이어져 있는 소울메이트라고 생각했어요.

Here I stand for you..

그는 기다리겠다고 했고, 제발 나타나달라고 절규했어요.

나는 기다려 달라고, 곧 어른이 되어 나타날테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마음 속으로 그에게 말했어요.

넥스트 마지막 공연이 있던 날..

그는 마지막 곡을 부르고 오래도록 고개를 숙여 인사했어요.

많은 사람들이 울었지만, 난 울지 않았어요.

넥스트가 해체되는건 하나도 슬프지 않았어요. 넥스트가 사라져도 신해철이 사라지는건 아니니까요.

그는 변함없이 거기에 있을거니까요.

그는 젊고 오만한 뮤지션이었고, 난 그의 고귀한 오만을 사랑했어요.

그는 비범했고, 아름다운 비현실적인 존재였죠. 다른 별에서 온 사람같은 묘한 이질감이 있었어요.

난 그 이질감을 미치도록 사랑하고 동경했어요.

언젠가 어른이 되어 그를 만나고 우린 사랑에 빠지고, 그는 내게 청혼하고,

우린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아갈 거라고 믿었어요.

그리고

내가 어른이 되고 얼마 후에 스캔들이 터졌어요.  그녀의 사진까지 크게 실린 기사가 나왔죠.

나는 오랫동안 사진을 보며 생각하고 또 생각했어요.

나보다 예쁜가.. 나보다 성격이 좋을까?...

무슨 매력이 있을까?  어떤 여자일까?....

그냥 스캔들일 뿐이었는데, 이상하게 포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녀는 나와 성이 같았어요. 그것도 묘한 기분이었죠.

난 마음을 추스리며 포기했고, 그들은 나중에 진짜로 결혼했어요.

그때는 나도 진짜 어른이 되어 있었는지 그렇게 마음이 아프진 않았어요.

그저 축하할 뿐.. 아쉬운 마음은 하나도 없었어요.

나는 학교를 다니고, 졸업을 하고,  계속 나이를 먹고..

더는 팬이라고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어요.

공연 소식이 들려도 더는 찾아가지 않았고, 새 음반 소식이 들려도 그냥 시큰둥..

그를 예전처럼 숭배하기엔 난 너무 나이들어 버렸고,

할 일도 많고 고민도 많았어요.

그래도 방송에 나오면 기쁘더군요. 반갑고 좋았어요.

그가 한때 내가 질투했던 여인과 방송에 나와 애정을 과시하는 모습도

그저 좋았어요.

잘 살고 있구나. 그는 지금 행복하구나..

감사하고 좋았어요.

그는 점점 살이 쪘고, 예전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어졌죠.

그래도 좋았어요.

다른 별에서 온 것 같은 차갑고 날이 서있던 청년은

이제  나와 함께 나이들어가는 동네 아저씨가 되어 있었고

난 그 아저씨가 참 좋았어요.

이번에 새롭게 방송을 시작한다고 해서 또 좋았어요.

이렇게 함께 늙어가겠구나. 그가 늙어가는 모습을 보는게 좋았어요.

갑자기 말도 안되는 소식이 들리고,

심장이 떨리고 하루종일 불안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난 그가 일어날 거라고 믿었어요.

가능성이 별로 없어 보이지만, 그래도 그는 일어날 것 같았어요.

그는 보통 사람들하고는 다르니까. 그는 신해철이니까.

나는 잘 모르지만, 혼수상태로 있다가도 몇 년 뒤에라도 그는 일어날 것 같았어요.

기적같이..

그렇게 일어나서 더 깊은 음악을 하고 더 귀한 시간을 살아갈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여기까지였나봐요.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여기까지가 끝이었네요.

모든 사람은 자기가 가야 할 때를 선택해서 하늘나라로 간대요.

그의 의식은 죽음을 원하지 않지만,

무의식 깊은 곳에서 그는 자신이 떠나야 할 때를 알고 있고,

더는 이 곳에서 배울 것이 없다고 느낄 때 떠난대요.

어느 책에서 봤어요.

이곳에서 그가 배워야 할 모든 걸 배웠을 때 가는 거라고..

그는 결혼할 생각이 없다고 했었는데 결혼을 했어요.

많은 음악을 남겼고, 놀랍게도 아이까지 둘이나 남겼어요.

잘 살았어요.

무의미하지 않았고, 살았다고 할 만한 삶을 살았어요.

그럼 된거예요.

그리고

나는 결혼을 하고 싶어졌어요.

오래 전에 난 그와 결혼하고 싶어하는 어린 아이였지만,

이제 난 결혼을 두려워하는 노처녀가 되었네요.

그저 홀가분하게 혼자 살고 싶었어요.

그런데 결혼을 하고 싶어졌어요.

그가 그랬듯이 나도 깊은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날 닮은 아이들을 낳고,

세상을 바라보며, 이 세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면서 열심히 살다가

주어진 시간이 다 되면 떠나고 싶어요.

그곳에 가면 세상을 떠난 사람들 모두가 살아있대요.

가장 아름다웠던 모습으로 사랑하면서 기쁨 속에서 살아간대요.

언젠가 내가 그곳에 가면

먼저 떠난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과

그도 거기에 있겠죠.

그때 만나면 반갑게 인사할래요.

그때까지 열심히 살다가 갈께요.

잘가요..

열 일곱의 내가 아주 많이 사랑했던 사람..

IP : 58.229.xxx.111
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1126
    '14.10.28 4:25 AM (14.52.xxx.119)

    좋은 글 고마워요...

  • 2. ..
    '14.10.28 9:00 AM (182.218.xxx.14)

    아침부터 이글보고 또 눈물한바가지 쏟고있습니다.

  • 3. .....
    '14.11.13 5:14 PM (58.229.xxx.111)

    ㅠ ㅠ...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431518 400만원에 3인가족 여행지 추천부탁드립니다 8 ... 2014/10/28 2,433
431517 세월호196일) 새벽 나오는 길에 다른 분들도 나와주셨으면.. 16 bluebe.. 2014/10/28 1,182
431516 날씨는 스산해지고 해철님은 갔고.. 나는 혼자네요.. 2 이번 생은 .. 2014/10/28 1,195
431515 사골국 달라고 조르는 열살 딸아이 ㅜㅜ 20 .. 2014/10/28 5,912
431514 아셨어요? 신해철씨.. 6 아깝다..ㅠ.. 2014/10/28 10,535
431513 나무테이블에 하얗게 된 자국 없애는 법 있나요? 2 .. 2014/10/28 2,345
431512 신해철에 대한 기억 (펌) 2 나의멘토마왕.. 2014/10/28 2,241
431511 해철님이 남긴것 중에 2 에버린 2014/10/28 1,325
431510 꿈해몽 부탁해요 2 문의 2014/10/28 970
431509 '빚더미 대학생' 7만명…30% 고금리에 허덕 3 스튜던트푸어.. 2014/10/28 1,216
431508 캐나다 구스다운 왜 이렇게 비싸요? 해외직구도 낭패 1 샬랄라 2014/10/28 2,987
431507 떡한말이면 몇명이 먹을수 있을까요. 3 -- 2014/10/28 6,325
431506 죽으면 다 끝인거겠죠 10 그런거죠 2014/10/28 3,014
431505 [민원24]소음건으로 민원이 접수되었습니다..이거 스미싱인거죠?.. 2 깜짝 2014/10/28 2,143
431504 엄마 무릎인대가 찢어저 수술 처방 받은뒤 종합병원 다시가서 진료.. 9 2014/10/28 2,219
431503 홈쇼핑서 볼륨팡팡 요즘 판매안하나요?(급질문) 11 볼륨팡팡 2014/10/28 1,836
431502 부침개 얇게 부치는 방법 46 글쓴이 2014/10/28 14,960
431501 옥수수 알갱이 밥에 넣어서 밥할려면 6 444 2014/10/28 2,022
431500 임대 아파트 아이들 불쌍해요 11 놀이터 2014/10/28 5,547
431499 무거운 스텐냄비 배대지 LA로 하나요? 배송 2014/10/28 1,037
431498 서울 인구가 천만인데 비정규직이 6백만이라네요 8 어휴 2014/10/28 1,979
431497 밀* 염색약 1 ^^ 2014/10/28 1,299
431496 제 생각엔 일빠세대가 방송가에 많아서 이 사단이 5 . . 2014/10/28 1,395
431495 꼼데가르송 가디건 아시는 분? 3 궁금 2014/10/28 7,992
431494 해외여행 가도 될까요?? 1 요즘 2014/10/28 1,2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