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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근래에 유교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어요.

나거티브 조회수 : 1,419
작성일 : 2014-09-15 02:14:01
가끔 막연하게 정신적인 가치가 별로 없는 사회구나라는 생각은 했어요.

그런데 세월호 사건 나고 몇달이 지나도록 사건의 실체도 알 수 없고 이런저런 여러가지 일들이 있죠, 
나라 지키라고 군대에 데려가서 어이 없이 맞아 죽게하고... 
올해 참 세상이 어처구니 없이 돌아가는구나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더 답답한 건 세상이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다고 느껴진다는 거예요. 
어른들이 예전에는 더 어려운 일이 많았다고 하지만 전반적으로 그 때는 먹고 사는 것이 급한 때였으니 이해할 수 있다 치구요. 
지금 우리나라는 잘 살죠. 먹고 사는 문제에서도 등수 나눠서 자격 발급할 거 아니면 우리나라 정도면 잘 사는 것이죠.
하지만 부자들도 돈은 많아도 사회지도층이라고 하기에는 천하게 느껴지고, 
하루 한달 벌어먹는 대부분 국민들은 그다지 행복하지도 않고 편안하지도 않은 것 같아요. 

영성이 있는 사람이면 종교에 의지했을텐데 그도 안되는 사람이고,
사회과학서적은 제 또래들 중에서는 평균보다는 더 읽었을텐데(그다지 사회과학류가 인기 없을 시절이라..) 이제 별 의미도 없는 것 같아요. 
제가 깊이가 없어서도 그렇겠지만 푸코니 뭐니 철학책 신나게 읽었던 것은 그래서 어찌 살자했던 건지 기억도 안나요.

오래 전에 일본의 어떤 양심적인 지식인이 한국은 정신문화가 다 파괴되어 안타깝다는 소리 했다는 걸 알았어요.
양심적이래봤자 일본인이라 피식민지였던 나라라고 아래로 보는 건가, 자기들은 천황제 같은 이상한 것도 가지고 있으면서 그 딴 게 정신문화라고 우쭐거리는건가 기분이 굉장히 나빴는데 지금은 그게 무슨 소리였는지 알 것 같아요.

쓸데없이 말싸움이나 하다가 망해먹은 나라라는 인식이 저에게도 있기 때문에 조선이라는 나라에 관심이 없었어요. 
대부분 그렇지 않나 싶어요. 망한 지 100년정도 밖에 안되었는데, 그 쯤에 씌여진 글도 읽을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을 걸요.
사서삼경이니 공자니 맹자니 하는 것도 아주 시대에 뒤떨어진 어딘지 미개하기까지한 느낌이었어요. 
여자들 사람 취급도 제대로 안하고 차별하는 사상인 것 같다는 때문에도 반감이 많았구요.

전번에 세월호 집회에 갔다가 발길이 안떨어져 광화문 주변에서 한참을 배회했어요.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별로 없고 속이 터질 것 같다가 교보문고에 들어가 대학, 중용을 샀죠.
뭐가 뭔지 몰라서 그냥 이름은 들어본 책을 대학교 출판부에서 번역해 낸 걸로 사면서도 이 걸 읽을까 싶어 샀는데 밤잠 설쳐가며 순식간에 다 읽었어요.
원문보다 해설이 더 많아 해설은 건너뛰고 원문만 읽으니 분량 자체는 얼마 안되더군요.

아직 스스로 뭐라고 풀어서 이야기할 수 없는 수준이라 설명은 못하겠지만 아주 의외의 내용이었어요.
여성을 차별하라는 건 한마디도 안나오고, 충효라는 말도 안나와요. 
충서라는 말이 여러번 나오는데 여기서 '서'는 배려라고 번역할 수 있는 말이었어요. 

이번 주말에는 서점에 아이 데리고 갔다가 충동적으로 율곡 이이가 쓴 격몽요결이라는 책을 샀어요. 
한자를 거의 모르니 제목부터가 뭔가 심각해 보였는데... 입문용 개인 수양서였어요.
가정에 대한 이야기도 나와요.
"모름지기 남편은 화락(화평하고 즐거움)한 모습을 가져서 의리로써 아내를 절제해야 하고, 한편 아내는 순순(고분고분하고 온순하다,믿음직스럽고 진실하다)한 마음으로 남편의 뜻을 받아서 일을 바르게 처리해야 한다. ...... 그러므로 이것은 아내와 함께 서로 경계해서 반드시 전에 있던 습관을 버리고 점점 올바른 예로 들어가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남편이 만일 아내를 보고 하는 말이나 그 행하는 행동이 한결같이 정당하면 반드시 점점 서로 믿게 되고 남편의 말을 순종하게 될 것이다."
이 자체로도 부부 사이가 이럴 수 있으면 좋은 거고, 어차피 지금은 남여가 나눠져 있지 않은 시대이니 남편과 아내의 위치를 바뀌서 생각해 봐도 될 것 같아요.

겨우 몇 세권 읽었고 좋은 내용은 많지만 어떻게 삶에서 풀어가야 할지는 사실 모르겠어요.
수신이라는 게 끝도 없이 완벽을 추구하는 강박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자잘한 습관하나 바꾸는 것도 어려운 걸 잘 아니까요. 

내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가족과 주변에 어찌해야 하는지 잘 알게되고 실천해 옮긴다고 해도 그게 다이긴 해요.
사회에 별 도움이 되거나 뭘 이룰 수도 없을테죠. 
개인사야 별 탈없이 흘러가는데, 올 봄부터 사는 게 힘이 부치고 이미 낳아 키우고 있는 자식에게 어찌 살라고 가르칠 수가 없겠어서 어려웠어요.
사람이 힘들면 과거를 미화하고 복고로 돌아가는 게 일종의 퇴행현상이라고 생각했었어요.
어른들이 박정희 미화하는 것도 그런 퇴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저는 이왕 앞은 보이지 않으니 뒤로 아주 멀리 가보려구요.
IP : 175.205.xxx.87
1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
    '14.9.15 2:22 AM (74.101.xxx.102)

    그 어떤 것도 그 자체로 나쁘다거나 좋다거나 평가 받을 수 있는 건 없습니다.
    다만 어떻게 쓰여지는 가에 따라서... 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유교가 뭐가 그 자체로 나쁜가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게 나쁘게 평가되었다면 그걸 나쁘게 이용한 왕이나 관료, 또는 남자들 때문이겠지요.

  • 2. ,,,,,,,
    '14.9.15 2:35 AM (114.129.xxx.194)

    요리에 사용할 때는 소중한 도구이지만 범죄에 사용할 때는 흉기가 되는 게 칼이죠.

  • 3. 나거티브
    '14.9.15 2:39 AM (175.205.xxx.87)

    제가 유교에 대해 편견이 적지 않게 있었나 봐요.
    충효라는 명목으로 복종만 강요하는 느낌이 컸어요.

    칼이라면 용도를 찾아 쓰려고 했을텐데, 뿌리부터 썩어 넘어진 썩은 나무토막인 줄 알았습니다.

  • 4. 한국철학 전공하고 있습니다
    '14.9.15 3:05 AM (59.7.xxx.44)

    저도 대학원에서 유학 전공 하기전까진 유학이 참 고리타분하고 시대에 뒤떨어진걸로만 알았습니다. 지금 우리가 욕하는 유학은 사실 알맹이는 빠지고 껍질만 남은 유학이죠. 원글님께서 읽으신 중용은 유학의 형이상학, 즉 성리학의 근본취지가 가장 잘 녹아나 있는 책입니다. 유학은 선진유가라 하여 공자와 맹자의 철학이 있고, 그후 1000여년이 지나 주자가 공맹의 철학을 형이상학적으로 종합해낸 성리학으로서의 유학이 있습니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대부분 주자의 성리학을 중심으로 공부했지요. 성리학은 학문 자체의 성격이 유학이면서도 불교와 도교의 근본 개념과 두루 합치되는 면이 있습니다. 그만큼 심오하지요. 유학, 특히 성리학은 학문 체계가 지금 시점에서 봐도 매우 정합적입니다.율곡 선생과 퇴계선생의 학문적 위상 및 그 당시 사회에 대한 공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정도죠.유교가 변색되기 시작한건 임진왜란 이후부터라 할 수 있는데, 한 마디로 국운이 정점을 찍고 내려가는 시점과 맞물려 그동안 조선조 통치이데올로기로 기능한 성리학도 사상이 경색되는 쇠퇴를 맞습니다. 현재의 우리가 유학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것도 이런 연유때문이라 생각합니다.

  • 5. 사상이 경색되는건
    '14.9.15 3:17 AM (59.7.xxx.44)

    결국 운용하는 사람의 잘못이죠. 임란 이후 송시열을
    주축으로 하는 세력들이 사상을 경색되게 만든 장본인들로 꼽힙니다. 전쟁 이후 국가 기강이 흔들리자 이들은 성리학을 완고하게 적용하여 국가를 유지해 나가려 합니다. 자고로 학문은 유연해야 하는데, 그 해석에 융통이 없어지고 강고해지니 부작용만 더 늘어날뿐이죠. 그러니 악순환이 계속되고.. 결국은 다 아시는것처럼 나라까지 빼앗기는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된겁니다.

  • 6. 동글밤
    '14.9.15 4:18 AM (125.178.xxx.150)

    마흔 넘어가며 삶의 질곡을 겪으며 마음의 평정을 잡고 싶었는데 저도 한번 다시 읽어 봐야 겠어요...
    아이들에게 쉽게 접해줄 수 있는 방법 아시는 분들 계시면 답글 부탁드립니다.

  • 7. 나거티브
    '14.9.15 4:54 AM (175.205.xxx.87)

    전공자님 댓글 고마워요. 흐름이 이해가 되네요.
    일단 10권 이상은 원전을 읽어보고, 고민을 하고 다시 읽어볼 계획이에요.
    배경지식이 별로 없어서 사서삼경을 읽어보자 싶었는데, 격몽요결을 읽고 나니 조선시대 학자들 책도 읽어봐야 겠어요. 율곡, 퇴계의 책은 꼭 한권 이상 읽어볼게요.

    동글밤님/ 청소년을 위해 요즘 책 정도는 꽤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일단 제가 읽고 소화가 좀 더 되면 남편에게 전달할 계획입니다. 아이가 아직 어려서요.

  • 8. 동글밤
    '14.9.15 5:40 AM (125.178.xxx.150)

    네 계속 관련 글 올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9. 몽쥬
    '14.9.15 7:40 AM (211.55.xxx.104)

    많이 배우고갑니다.
    뒷 이야기 기대할께요|~

  • 10. 4070
    '14.9.15 8:47 AM (222.64.xxx.118)

    여자들이 읽으면 좋은데요.
    남자들이 읽으면 부작용이 좀 있어요

  • 11. 그래도...
    '14.9.15 8:52 AM (124.111.xxx.24)

    유학은 성리학 줄기로 오랫동안 중국이나 조선시대 통치이념이었다는 점에서 보수적 해석이 지배적인점... 신경쓰여요...

  • 12. 중학생
    '14.9.15 9:04 AM (14.36.xxx.208) - 삭제된댓글

    아들이 논어와 격몽요결을 읽었는데 좋은 영향을 많이 받더라구요.
    삶의 자세,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 이런 것들을 많이 생각하게 됐다고 해요.
    서양철학 공부도 하고 시사 문제에 관심도 많아서
    저기 윗님이 걱정하시는 부작용은 크게 없어 보여요.

  • 13. horng
    '14.9.15 10:17 AM (114.201.xxx.102)

    글 감사해요. 저도 종교체질은 아니고 어딘가 기댈 수 있는 곳이 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저도 유교라 하면 여자에 대해 차별하고 부모나 나라에 무조건적으로 충성해야 한다 그런 이론이 주로 있는 줄 알았어요
    덕분에 저도 좋은 거 배워 가네요. 책 읽으시고 또 후기 남겨주세요. 감사합니다.

  • 14. ...
    '14.9.15 10:36 AM (121.134.xxx.130)

    집근처 도서관에서 동양철학 강의 듣기 시작한지 2년 되었어요.
    저도 종교적인 심성이 부족한데 마음에 의지될 것이 필요한 상태였는데 크게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혼자서 책을 보고 공부를 하신다니 훌륭하시네요. 저는 1주일에 한번 강의 듣는 것만으로도
    크게 도움이 되긴 합니다.
    제가 듣기 전에 중용, 대학 과정이 끝나고 저는 논어, 맹자, 노자, 장자까지 거의 다 들었습니다.
    선생님이 저보다 나이도 젊으신데 비교적 요즘 현실에 잘 맞게 강의를 하셔서 좋아요.
    찾아보시면 문화센터나 시립도서관에 그런 강의들 좀 있을 거에요.
    필요하신 분들은 알아보시면 더 쉽게 유학이나 동양철학에 접근하실 수 있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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