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약자에 헌신’ 사제단 삶은
“출세주의자 경계” 교황 뜻과 부합
세월호 가족과 만남에 숨은 노력
프란치스코 교황은 기회가 닿을 때마다 빈자와 약자, 정의, 인권 등을 강조한다. 그는 “교회는 가난한 이들을 돕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며 “약자들의 절박한 목소리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리스도인의 정치 참여에 대해서도 “의무”라고 본다. “불의와 폭력에 무관심하거나 침묵할 수 없다”며 “수도자가 예언을 포기해선 결코 안 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이 요청에 가장 잘 부응해온 이들은 누굴까.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사제단)을 빼놓을 수 없다. 역대 독재정권에 맞서 민주주의를 지켜낸 전통을 이어가며, 여전히 권력의 전횡에 경고하고 행동하는 일을 멈추지 않고 있다. 사제단 사제들은 상당수가 박사학위를 받은 실력자들로 꼽힌다. 그러나 이들의 현실 참여는 보수 정부와 언론으로부터의 ‘종북’ 매도도 감수해야 한다. 교회 내에서도 주교 등 세속적 의미의 ‘출셋길’을 포기하고, 박해까지도 감내해야 하는 선택이 아닐 수 없다. ‘출세’가 아니라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헌신을 택한 사제단의 삶은 “주교가 되려 안달하는 출세주의자를 경계해야 한다”고까지 말한 교황의 뜻에도 부합한다.
교황 방한을 앞두고 지난 6월 말 먼저 한국에 온 교황청 정의평화평의회 사무총장 마리오 토소 대주교가 비공개로 정의구현사제단을 만났다. 이에 따라 한때 교황과 사제단의 만남이 점쳐지기도 했다. 그러나 교황이 주교와 수도자, 평신도 대표들을 각각 따로 만났지만, 사제들을 따로 만나는 일정은 없다. 교황청 롬바르디 대변인은 사제단과 관련해 “교황께서 그 존재에 대해 들어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황이 15일 밤 예정에 없이, 예수회 한국관구에 가서 예수회 사제들을 만나자, 사제들끼리의 카카오톡 방과 페이스북에선 “교황께서 사제단도 찾아주면 좋을 텐데”란 바람들이 올라오기도 했다. 한 신부는 “우리는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서자 홍길동 아닌가”라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
사제단이 지난해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이후 시국미사를 열어 ‘박근혜 대통령 퇴진’까지 요구해온 데 비춰 보면 천주교 쪽이 교황과 사제단의 만남을 껄끄럽게 여겼을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한 시사주간지는 지난 6월 정부 쪽 입김이 작용한 것처럼 묘사하는 보도를 하기도 했으나 확인되지는 않고 있다.
교황이 세월호 유족과 잇따라 만나는 등 긍정적 결과가 나온 배경에도 사제단의 보이지 않는 역할이 있었다고 봐야 한다. 한때 정부 한쪽에선 세월호 희생자 유민이 아빠 김영오씨 등이 단식하는 광화문 농성장을 시복식을 핑계로 강제 철거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도 했다. 그런데 정의구현사제단 사제들과 수녀들이 매일 100여명씩 시복식 전날인 15일까지 16일 동안 단식에 합류하며 농성장 철거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혔다. 결국 논란 끝에 방한준비위가 시복식에 세월호 유가족들을 초청하기로 했고, 교황이 한달 넘게 단식하는 김영오씨의 손을 잡고 위로하는 감동적인 장면이 이뤄졌다.
사제단은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교황의 모습만으로도 만족스럽다는 표정이다. 한 사제는 “교황께서 세월호 참사의 상처를 진심으로 어루만지는 모습이 감동적이다 못해 눈물이 난다. 명동 미사에서 만날 밀양과 용산, 강정과 쌍용의 형제들도 위로해준다면 나 자신이 위로받는 것보다 더 기쁠 것”이라고 소망을 내비쳤다. 교황과 사제단은 상처받는 사회적 약자들을 통해 이미 만나고 있는 셈이다. 토소 대주교도 “교황이 모든 사람을 만날 수는 없다. 주교와 사제, 수도자, 신자들이 가난한 자와 약자들 곁에 머물러 주는 것이 교황에게 협력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교황은 현실참여에서 사제단의 선배 격인 남미 해방신학 사제와 수도자들이 고난받는 모습을 지켜본 산증인이다. 교황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관구장이 된 1998년 <내 죄>라는 문헌을 발표해 “우리는 자유와 인권을 해친 사람들에게 너무 너그러웠다”며 “책임있는 이들의 침묵을 용서해 달라”고 참회했다. 이어 교황이 되기 직전엔 추기경으로서 군부독재에 의해 암살된 사제인 카를로스 데 디오스 무리아스(1945~1976) 신부 등 3명을 성자로 추대하기 위한 시성을 교황청에 청원하기도 했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religious/65158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