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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의 히트를 보며 우리 역사가 이렇게 전개되었더라면?

꺾은붓 조회수 : 764
작성일 : 2014-08-12 21:33:32
 

      “명량”의 히트를 보며 우리 역사가 이렇게 전개되었더라면?


  1. 지금 이순신장군의 “명랑”, 일컬어 “울돌목 해전”이라는 영화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고 있는 것 같다.

  필자는 거의 20여 년간 극장이라는 곳에 가서 영화라는 것을 본 일이 없고 어쩌다 TV에서 한참 지나간 영화를 보여주는 것을 보는 것이 고작이다.

  그러니 당연히 “명랑”이라는 영화를 보지 않았고, 극장에 가서까지 보고 싶은 생각은 없다.


  2. 참으로 묘한 시기에 묘한 대조다.

  우리 1만년 역사 최대의 비극이자 국치인 한일합당당시 혈서로써 적의 수괴인 히로히또에게 개와 말이 되겠노라고 혈서를 써 바쳐가면서까지 충성을 맹세하며 매국에 앞장섰던 다카끼마사오의 딸이 대한민국을 마치 자신의 텃밭인양 이리 파헤치고 저리 뒤집으면서 주물러대는 지금, 왜구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살려낸 장군의 활약상을 그린 그런 상반된 영화가 만들어지고 상영이 되다니!

  뉴스를 보니 박근혜도 그 영화를 보았다는 소문이다. 


  3. 세상에서 가장 부질없는 게 지나간 역사의 가정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라가 풍전등화와 같은 위기에 봉착하고 세월이 하 수선하면 지나간 역사의 안타까웠던 순간을 반추해 보며 그때 우리조상님들이 이렇게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헛된 상상을 해보며 안타까워하지 않을 수가 없다.

  사람마다 그 역사적 대목을 선정하는 것과 평가와 분석은 약간씩 다를 수도 있다.

  필자 나름대로 조선 이전에 지나간 순간은 수박 겉핥기식으로 핥고, 이순신장군의 순국 다음부터는 좀 구체적으로 다뤄보고자 한다.


  3-1 신라의 삼국통일

  솔직히 말해 고구려는 중국에 무상으로 바치고 백제는 중국이 강제로 차지한 것을 나중에 신라와 백제유민이 합세하여 간신히 백제의 일부영역에서 당나라 군사를 몰아내고 백제의 머리와 몸통은 회복을 못 하고 하반신과 꼬리만 겨우 신라가 차지했다.

  그때 고구려는 감히 신라나 당나라가 넘볼 나라가 아닌 강국이었는데 연개소문의 후손들 간에 집안싸움으로 하루아침에 나당연합군에게 망하여 당나라의 차지가 된 것이다.

  고구려가 망한 원인을 들여다보며 지금 삼성을 비롯한 재벌2~3세들 간의 원수지간 같은 재산싸움을 보며 “너희들도 얼마 남지 않았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고구려, 백제, 신라가 아닌 배달겨레라는 큰 안목에서 보면, 같은 단군할아버지 자손인 배달겨레는 고구려로 통일이 되었어야 동아시아를 중국과 양분하는 강대국으로 건재하였을 것이다.


  3-2 묘청선사의 서경(평양)천도

  필자(1948년생)는 초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묘청은 아주 나쁜 妖僧(요승)으로 가르치고 배웠다.

  하지만 커서 되돌아보니 묘청대사는 우리역사의 걸출한 선승이었다.

  고려조정이 신라왕실후예인 경주김씨들이 좌주우지 하며 중국을 상국으로 받드는 사대사상에 찌든 왕실을 바라보며, 선사께서 왕실의 고문이 되자 과감히 서경천도론을 들고 나온다.

  그때 고려가 개성을 버리고 과감히 평양으로 천도를 단행했어야 했다.

  묘청대사의 서경천도주장은 단순히 고려의 수도를 개성에서 평양으로 옮기는 것을 넘어 광활했던 고구려의 옛 영토를 회복하기 위한 사전 준비 작업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사대사상에 빠진 김부식 등에 의해 묘청은 역적이자 반란세력으로 평가되어 1년여를 버티다 고려관군에 의해 토벌되고 말았다.

  묘청은 승려로서 자식도 없고 그가 역적질을 해서 왕이 된다 해도 왕위를 물려줄 후손도 없었다.

  역심을 품을 사람이 아니었다.

  그가 서경천도를 주장했던 것은 웅대했던 고구려의 옛 영토를 수복하여 중국에 머리 숙이지 않아도 되는 강한 고려를 갈망했던 것이다.

  우리 역사에 참으로 아쉬운 대목이다.


  3-3 이성계의 요동정벌

  폐일언하고 이성계는 고려조정과 최영장군이 내린 요동정벌 명령을 단행했어야 했다.

  그때 원나라는 망해서 몽골초원으로 되돌아가 다시 유목민이 되고 명나라는 이제 겨우 일어난 나라로 중원과 멀리 떨어진 요동까지 신경 쓸 만한 겨를이 없었다.

  그때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과감하게 압록강을 도강하여 요동으로 밀고 들어갔으면 칼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활 한번 쏘지 않고 고려의 깃발을 꼽는 곳이 고려의 영토가 되는 순간이었다.

  그런 절호의 기회를 이성계는 위화도에서 뱃머리를 돌려 개성으로 밀고 내려와 최영장군을 처형하고 허수아비 왕을 두 번 갈아치기 하다 고려의 문을 닫게 하고 조선을 열었던 것이다.

  위화도 회군(1388년)을 할 당시는 요동과 만주벌판은 무주공산으로 먼저 깃발을 꼽는 나라의 영토가 되었을 것인데, 이성계가 고려왕을 두 번(창-공양)이나 갈아치기 하다 조선을 개국(1392년)했을 때는 이미 명나라가 안착을 하여 요동과 만주는 명나라의 영토가 되고 조선은 명나라에 조공을 바쳐야 하는 신하나라의 처지가 되었고 이성계와 조선은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이성계의 조선건국이 옳았느냐 그르냐는 논외로 한다.

  이성계가 역심을 품고 고려를 무너트리고 조선을 건국하려는 야심을 품었었다 해도 요동정벌을 하여 드넓은 만주벌판을 우리의 영토로 만들고 나서 역적질을 했어야 옳다.

  그랬더라면 조선은 명나라에 조공을 바치는 신하나라가 아닌 명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동아시아를 양분하는 세계강대국이 되었을 것이다.


  4. 충무공 이순신장군

  1597. 10. 25 명량에서 겨우 12척의 배로 왜선 333척을 수장시켜 왜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히고 다음해 1598년 풍신수길이 뒈지자 허겁지겁 철군하는 왜구를 단  한명도 살려 보낼 수가 없었다.


  1598년 11월 18일 노량해전 

  임진왜란 최후의 전투 노량해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해전을 앞두고 7년 전쟁은 이미 끝났고, 장군은 순국의 결심을 굳히고 전선에 몸을 실으셨을 것이다.

  조선과 명의 연합함대 200척으로 왜선단 500척을 막고 나섰다.

  수적으로 열세였지만 조명 연합함대는 왜 선단을 차례차례 박살을 내어 수장시키고 있었다.

  노량해전도 거의 끝나가고 7년간의 전쟁이 마무리되는 순간 장군은 갑옷도 입지 않으신 상태에서 적이 쏜 흉탄을 맞고 장렬히 순국을 하신다.


  장군! 왜 그러셨습니까?(여기서부터 역사의 가정)

  왜선단 500여척을 깡그리 수장시켜 7년 전쟁을 깨끗하게 마무리 지은 장군은 명나라 군사와 헤어져 조선수군의 선단을 몰아 서해바다를 거슬러 올라와 한강으로 접어들어 경기도 시흥군 마포 서강나루에 닺을 내린다.

  서강서부터 서울장안까지는 보도로 행군을 하여 우매한 왕 선조께 승전 보고를 하기 위하여 서울장안으로 진군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질이도 못난 왕 선조는 세자인 광해를 대동하고 숭례문까지 개선군을 맞이하러 나왔고, 한양 도성안의 백성은 모두 다 길 가에 향불을 피워놓고 장군과 개선군을 맞이하고 있었다.

  연전연승을 하는 장군을 왜구의 첩자와 조정의 간신배들의 꾐에 넘어가 장군을 소환하여 없는 죄를 만들어 치죄함으로써 장군이 애써 키워놓은 조선수군을 괴멸되게 하고 전쟁을 오래 끌어 백성을 수도 없이 죽게 한 죄는 당장 폐위하고 사약을 내려도 시원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장군은 역심 같은 것은 품을 사람이 아니다.

  유성룡 같은 고매한 인품에 혜안을 갖춘 신하와 만 백성의 신망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이순신장군이 선조 앞에 나가 비교적 영특한 세자 광해에게 선위 할 것을 품 한다.

  선조는 지은 죄도 있고 이미 만백성의 민심은 장군에게 돌아갔음을 직감하고 그래도 장군이 역성혁명은 하지 않고 자신의 아들 광해에게 선위할 것을 상주하니 기꺼이 수용하고 자신은 상왕으로 물러앉는다.

  그래서 유성룡 같은 청렴하고 능력 있는 문관들이 조정을 장악하고, 장군은 일체의 관직은 맞지 않고 왜구의 재침이나 점점 세력을 키워가고 있는 여진의 침략에 대비키 위해 왕사(王師) 겸 국사(國師)가 되어 강병의 조련에만 힘을 보태기로 한다.


 그때(1598년)가 장군의 나이 54세, 광해임금의 나이가 24세 때다.

 전쟁을 알고 패배를 모르는 어버이 같은 장군과, 청렴하고 능력 있는 조정의 신하들과, 젊고 패가 발랄하고 국제정세를 꿰뚫어 보는 혜안과 외교적 감각 있는 왕이 손을 맞잡고 부국강병의 국가건설에 매달렸다면 그 다음의 조선역사는 실제역사와는 전혀 다른 길을 걸었을 것이다.

  우선 광해의 최대 약점이자 치부로 꼽히는 계모 인목대비의 유폐와 이복동생 영창대군을 사사하는 것과 같은 패륜과 비극은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 뒤 인조반정 같은 일은 상상할 수가 없고, 장군이 연노 하여 가셨어도 장군이 길러놓은 강한 군대가 나라를 든든히 지키고 있으니 만주 땅의 신흥국 청나라가 잔명을 이어가고 있는 명과 대적학기도 바쁜데 감히 조선을 넘볼 수가 없었고 삼전도의 비극 같은 것은 아예 없었으리라!


  광해가 인조반정으로 폐위당하지 않고 계속 집권했다면 병자호란이 일어난 해가 1636년임으로 그때 광해임금의 나이는 62세가 되니 노련미와 국제정세를 꿰뚫어 보는 안목은 더욱 세련되어 있었을 것이다.

  청이 조선을 넘보지 않는 것을 넘어, 조선이나 청(여진)이나 다 같은 단군할아버지의 자손으로서 4촌지간인 조-청 연합군이 함께 명나라를 토벌하여 중원은 청나라가 차지하고, 요동과 만주벌판은 조선에 복속시키는 외교적 합의를 하여 연합군이 중원대륙으로 밀고 들어갔으면 오늘날 중국 같은 것은 존재하지 못 했을 것이다.

  물론 여진이 북경에 수도를 정하고 청나라를 열기는 했어도 워낙 소수민족으로 인류최대의 종족인 한족을 거느리며 수적 열세로 점점 한족에 동화되어가 청나라는 스스로 막을 내리고 한족에 의한 중국이 생겨났어도 그건 여진족의 사정이고, 이미 조선의 영토로 굳어진 요동반도와 광활한 만주벌판은 빼도 박도 못하는 조선의 영구한 영토가 되었을 것이다.


  아- 장군이 순국의 길을 택하시지 않고 임란을 마무리 짓고 승리의 여세를 몰아 부국강병의 나라 건설에 나서셨더라면?

  광해가 외교적 감각 외에 조금만 더 슬기로웠더라면?

  거기서부터 조선의 역사는 판이하게 달랐을 것이다.


  5. <명량>영화를 보면서, 또 다 보고나서 박근혜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필자는 <명량>영화를 안 보았으니, 명량해전이 승리로 마무리되는 장면에서 영화가 끝나는지?, 노량해전까지 치르는 와중에 장군께서 순국하시는 장면에서 영화가 끝나는지? 는 알 수가 없다.

  명량에서 12척의 배로 333척의 왜선을 박살내어 7년 전쟁을 마무리 짓고 그 다음에 왜구의 수괴 풍신수길이 뒈지자 허겁지겁 철군을 하여 왜로 되들아 가는 왜선단을 노량 앞바다에서 박살을 내어 왜구를 한 놈이라도 더 물귀신을 만들고 마지막 장면에 장렬히 순국을 하시는 이순신장군을 보고 위대하다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자기아비 같이 충성의 혈서를 써서 밀사를 시켜 풍신수길에 바치게 하고 일부러 전쟁에서 져 주어 조선이 일본의 차지가 되면 조선총독이나 조선왕으로도 책봉될 수도 있었는데 미련하게 나라를 구해놓고 순국을 하다니 바보 중에서도 상 바보라고 생각했을까?

  내가 박근혜의 속을 들여다보는 재주가 없으니 박근혜가 어찌 생각했을지는 “?”다.  


IP : 119.149.xxx.55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rafale
    '14.8.12 9:59 PM (121.130.xxx.196)

    건국 초기 명나라는 깡패 국가였습니다.

    몽골과의 전쟁으로 실전 경험을 쌓은 장성들과 야전군을 수십만 넘게 운용하던 나라라...

    다만 정도전이 요동 정벌을 고려하던 시기엔 승계 전쟁이 일어난지라 양쪽에서 줄타기하면 잘 협상이 될 가능성 자체는 있습니다. 그 줄타기에 실패하면 결국 토해내는것에 이자까지 물 가능성이 있어 IF가 잘 성립되지 않습니다.

    건국 초기 명이 요동까지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는건 왜곡에 가깝습니다.

  • 2. 꺾은붓
    '14.8.12 11:44 PM (119.149.xxx.55)

    rafale님!
    깡패가 하는 싸움과 나라 간에 하는 전쟁은 다릅니다.
    정도전이 요동정벌을 꿈꾸던 시기보다 위화도 회군시기는 10여년 이상 앞섭니다.
    정도전시절에도 요동고토회복을 꿈 꿨는데 그보다 10년 이상 앞서 명나라가 막 건국을 했던 시기가 명이 요동을 막아내기가 더 쉬웠다는 주장은 무슨 논리인지요?
    사가들도 다 그때 이성계가 요동정벌을 했으면 요동이 고려의 영토가 되었을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도 주장합니다.

    그리고 명 건국조치 명이 요동까지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는 것은 역사적 상황에 대한 각자의 판단이지, 역사왜곡하고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이건 남의 글에 순전히 반대를 하기 위한 반론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성계가 요정정벌을 하지 않은 것을 했다거나, 고려에서 요동정벌 시도도 안 해보았다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이 왜곡이지 그 당시의 상황판단은 각자 생각의 영역이지 그게 어떻게 역사의 왜곡이 됩니까?

    반론을 제시하더라도 조리 있게, 예를 갖춰 반론을 제시하면 답변도 그렇게 하겠는데, 반론에 맞추다 보니 답변도 그리 되었습니다.

    명나라뿐 아니라 중국의 역대 국가 시조치고 장사치나 사기꾼 아닌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명이 몽골과 전쟁으로 실전경험이 많은 군인이 있었다면, 고려 역시 왜구의 노략질과 맞서느라고 전쟁경험은 충분히 쌓고 있었습니다.
    더 이상 답변은 시간낭비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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