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일: 2012. 6. 14.
2012년 6월, 새누리당은 통합진보당 이석기, 김재연 의원이 종북주의자라며 제명을 요구했다. 유력 대권주자인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까지 나서면서 '종북논쟁'이 불붙었다.
정치권에서 종북논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럼 최초의 종북논쟁은 언제, 누구를 상대로 벌어졌을까?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대통령 후보로 나선 1963년 10월 최초의 종북논쟁이 벌어졌다. 야당후보 윤보선이 박정희 후보의 좌익 경력 해명을 요구하고 나섰으며, 동아일보는 이를 호외로 뿌렸다.
1948년 11월 소령 박정희는 군 수사당국에 체포됐다. 체포 이유는 남조선노동당 가입과 군내 좌익 활동. 국군 장교가 좌익 세포를 조직해 적화 통일에 나선 셈이다.
군 내 좌익 세력을 관리하던 '원조 종북' 박정희는 결국 군사재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지만, 재심에서 형 집행정지로 풀려났다. 5.16쿠데타에 성공한 박정희는 63년 대통령선거에 출마했다. 윤보선 후보의 사상검증공세에 대해 박정희 후보는 10월 3일 광주 유세에서 '낡은 수법'이라고 반박했다.
"빨갱이다, 법을 위배했다, 뭐뭐다 해가지고 국민들한테 매일 떠들고 선전하겠다는 주장인데 우리 국민들은 그런 낡은 수법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5일에는 주요 일간지 1면 광고를 통해 '매카시즘적 수법'이라고 공격했다. 남로당 세작으로 체포돼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원조종북주의자가 좌익 경력 검증을 '색깔론 공세'라고 비판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제 5대 대통령에 당선된 박정희는 이후 18년간의 독재를 이어갔다. 의원들의 국가관을 문제삼는 박근혜 전 위원장. 만주군 장교에서 대한민국 국군으로, 남로당 간첩으로, 쿠데타 세력으로, 독재자로 변신을 거듭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은 '사상공세는 낡은 매카시즘적 수법'이라고 호소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던진 이 오래된 호소에 대해 박근혜 전 위원장은 어떻게 생각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