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저는 수원에 갔습니다. 이재정 경기도교육감 후보 선거사무소 개소식에 참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4년 전 저의 경기도지사 후보 선거사무소가 있었던 바로 그 동네, 2009년 김상곤 교수가 경기도교육감 보궐선거 캠프로 썼던 바로 그 사무실이더군요. 어려울 때마다 제게 용기와 위로를 주셨던 이재정 총장님이 교육감이 되어 아이들과 선생님들에게 많은 사랑을 주시기를 축원했습니다.

그런데 가는 길에 큰길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다가 우연히 수원시민 한 분을 만났습니다. 그분은 2010년 경기도지사 선거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때 정말 열렬히 지지했다면서, 이번에는 경기도지사 투표를 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습니다. 진심으로 찍어주고 싶은 후보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래도 꼭 투표를 하시라고 부탁했습니다. 선거는 기성복 고르는 것과 같다고, 내게 딱 맞는 옷이 보이지 않을 때는 상대적으로 나은 옷이라도 골라야 한다고 말씀드렸지요.

저는 정치를 떠났지만, 정의당이라는 작은 정당의 평당원입니다. 앞으로 당직을 맡거나 선거에 출마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민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스스로 정당에 참여해야 대의민주주의 정치제도가 제대로 작동한다는 믿음 때문에 글 쓰는 일을 생업으로 하는 평당원으로 남아 있습니다. 정의당은 이번에 경기도지사 후보를 내지 않았습니다. 저는 제가 몸담은 정당이 아무 조건 없이 새정치민주연합 김진표 후보를 지지하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김진표 후보는 저에게 여러 감정을 일으킵니다. 가장 큰 것이 미안함, 그 다음이 고마움입니다. 제가 아는 바로, 그는
2008년부터 도지사 출마를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2010년 지방선거 때 후보단일화 경선에서 ‘종이 한 장’ 차이로 지는 바람에 아예 출마를 하지 못했습니다. 야권 대표선수로 나간 저는 본선에서 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를 생각할 때마다, 저는 아주 많이 미안합니다. 김진표 의원이 단일후보가 되어서 본선에 나갔더라면 이길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겨우 0.96% 차이로 후보단일화 경선에서 졌다는 사실을 보고받은 김진표 의원은 제 손을 꼭 잡고 경선결과 발표장에 들어갔습니다. 속이 상한 내색을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저의 팔을 높이 들어주었고, 이비인후과 치료를 받으면서도 선거기간 내내 목이 터지게 지원유세를 했습니다. 못내 서운해 하는 자신의 지지자들을 간곡하게 설득해 저를 돕도록 했습니다. 비록 낙선하기는 했지만, 제가 그나마 48%라도 득표한 것은 그가 그렇게 해 준 덕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김진표라는 사람을 생각할 때마다, 저는 많이 고맙습니다. 소속 정당과 정치적 견해의 차이를 떠나 어떻게든 보답을 해야 한다는 부채의식을 지니고 있습니다.

얼마 전 저는 경기도를 떠나 서울로 이사를 했습니다. 저와 가족의 표라도 드려야 하는데, 이젠 그것마저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김진표 후보는 저와는 스타일이 크게 다른 사람입니다. 저는 과거 정부와 정당에서 함께 일한 적이 있어서 그를 잘 압니다. 국가 일을 한 경험이 매우 풍부하고 전문적 식견이 뛰어나며 성품이 온화하고 합리적이지요. 경제와 교육이 그의 전공분야입니다. 게다가 경기도가 고향이고 경기도지사가 되기 위해 오랫동안 경기도정을 꼼꼼하게 들여다보며 연구하기도 했습니다. 시민들이 힘들 때 좀 기대어도 좋을, 든든한 도지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010년 경기도지사 선거 때 무려 20만 표나 되는 무효표가 나온 것을 기억하실 겁니다. 제가 개표참관인들에게 들은 바로는, 누구에게도 기표를 하지 않은 백지 투표지가 가장 많았다고 합니다. 적지 않은 유권자들이 김문수 후보는 찍기 싫은데 유시민 후보도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모두가 저의 부족함 때문이었습니다. 이번에는 그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4년 전 유아무개가 도지사가 되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아쉬워하는, 정부여당의 무능을 따끔하게 질책하려면 야당 후보를 당선시키는 것이 좋은데 김진표 후보가 보수적인 면이 있어서 마음에 차지 않는다고 생각하시는 경기도의 유권자들께 간곡하게 말씀드립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다 이루어줄 후보가 없을 때는, 반이라도 이루어줄 후보를 선택합시다. 그리고 다음 선거에서는 마음에 꼭 드는 후보가 나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평소 정치와 정당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합시다. 누군가 알아서 해주겠지 생각하면서, 또는 다 맘에 들지 않는다고 불평하면서 가만히 있으면, 다음 선거에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사전투표라는 새로운 제도가 생겼다고 합니다. 저는 5월 30일에 동사무소에 가서 사전투표를 해볼까 고민하는 중입니다. 새로운 것을 보면 만져보고 싶은 것이 사람 마음인 것 같습니다.

아직도 차가운 바다에서 나오지 못한 세월호 실종자들의 귀환을, 그리고 희생자들의 영원한 안식과 평화를 간절히 기원하며…

2014년 5월 26일

유시민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