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어떤 매트릭스

김정란 조회수 : 1,445
작성일 : 2013-09-19 15:52:24

그 매트릭스는 강고하다. 그것은 언어로 이루어진 매트릭스이기 때문에 더더욱 강고하다. 불리해지면, 잠깐, 딴소리를 해서 사람들의 시선을 돌린다. 그리곤 다시 눈을 번뜩이며 기회를 엿본다. 그 나라 사람들은 워낙 뛰어난 망각의 힘을 가지고 있어서, 과거에 저질러졌던 일들을 쉽게 잊어버린다. 역사라는 말은 그들의 사전에 없다. 이따금 그것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힘없는 저항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조차 모른다. 매트릭스는 역사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빨간 딱지를 발부한다. 빨간 딱지를 발부받은 사람들은 그 나라에서는 위험인물로 낙인찍히고 경멸과 비웃음의 대상이 된다. 빨간 딱지는 더이상 정치적이기만 하지 않다. 그것은 훨씬 넓은 스펙트럼에 해당된다.

빨간 딱지 발부 제도는 그 나라에서 아주 오래된 것이다. 검은 안경을 쓰고 다니던 암살당한 어떤 독재자가 특히 그 딱지를 마구 발부했는데, 그것은 그 말로 이루어진 매트릭스 덕분에 아주 손쉽게 이루어졌다. 독재자가 운을 떼면, 매트릭스가 알아서 떠들어댔기 때문이다. 그 매트릭스의 작동 메커니즘은 탁월했다. 약간의 꼬투리만 있으면 충분했다. 매트릭스는 수선을 피워대며, 위험해, 위험해, 저놈 대가리를 날려, 라고 떠들어댔다. 검은 안경의 독재자는 그 매트릭스 덕에 아주 쉽게 그 나라 사람들의 머리를 지배할 수 있었다. 그 매트릭스는 하루에도 수백만번씩 떠들어댔다.

독재자는 사라졌지만, 매트릭스는 여전히 막강하게 작동한다. 독재자가 사라지는 바람에 상황이 조금 복잡해지기는 했다. 그러나 정말로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다. 매트릭스는 역사를 기억하는 자들을 여전히 감시하고 있다. 독재에 오래 길들어버린 사람들은 여전히 빨간 딱지! 소리만 들어도 흠칫 하고 놀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사람들의 사고 회로는 정지되어 버린다. 그리고 빨간딱지를 발부받은 사람들에게 맹렬하게 증오의 돌을 던져댄다.

검은 안경을 쓴 독재자는 죽었지만 아직도 힘이 세다. 매트릭스는 여전히 빨간딱지를 발부하고 있다. 점점더 많이 발부하고 있다. 그 나라는 말의 지뢰밭이다. 문학이라는 한때의 반매트릭스조차 다른 방식으로 지뢰를 묻어놓고 다른 방식으로 빨간 딱지를 발부한다. 말들은 눈치를 보느라고 웅크리고 있다. 말들은 그물에 걸릴까봐 무서워서 외출하지 않는다.

그 나라에서는 비굴한 우화들이 힘없이 날아다닌다. 말들은 생기를 잃어버렸다. 매트릭스는 점점더 막강해진다. 저항하는 개미들이 있기는 하지만, 거짓말로 둘러대면, 사람들은 금방 속아 넘어간다. 그까짓 개미 정도야 가볍게 밟아 죽이면 된다. 그건 일도 아니다. 빨간 딱지 한 장이면, 개미들 일개 군단은 없앨 수 있다.

그러나 개미들은 아주 부지런하다. 개미들은 슬플 정도로 부지런하다. 개미들은 늘 온다. 자기 몸집의 마흔 네 배까지도 운반하는 개미들은 차에 깔리면서도 길 건너편으로 건너간다. 이건 비극이지만 눈물나는 희극이기도 하다.

때로 개미들이 차에 깔려 터져 죽는 소리가 음악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개미들은 문학을 극복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언어 너머로 몸을 던진 자들의 육체가 터지며 내지르는 소리. 개미들의 시체가 말라붙은 그 길 위에서 어쩌면 다른 문학이 생성될지도 모른다.

 

IP : 115.126.xxx.33
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307210 저장해두고 먹을 음식이 뭐가 있을까요? 5 저장음식 2013/10/13 1,772
307209 전날 잠을 많이 못 자면 배가 자꾸 고프고 3 증상 2013/10/13 878
307208 친구 남친 뺐어 사귀는 사람이 잘살까요? 39 mmm33 2013/10/13 13,958
307207 26평형 아파트 확장공사를 하는 게 좋을까요? 11 가을잎 2013/10/13 2,673
307206 이게 사는 행복이지 별거있나 싶네요 5 ㅋㅋ 2013/10/13 2,109
307205 등갈비 김치찜할때 먼저 삶아야 하나요? 2 .. 2013/10/13 1,941
307204 고삼 엄만데요. 1 ... 2013/10/13 1,920
307203 '분례기' 아세요? 30 소설 2013/10/13 4,750
307202 새로산 김치냉장고에 자꾸 물이 생겨요 3 김치냉장고 2013/10/13 3,338
307201 모공제품 뭐가 좋을지요?? 10 ///// 2013/10/13 3,112
307200 컨저링 많이 무섭나요? 8 ... 2013/10/13 3,733
307199 잠원동은 2006년도 고점대비 매매가 변동이 9 dma 2013/10/13 2,525
307198 맞춤범 지적글에....222 이런댓글은 2 dh 2013/10/13 863
307197 suv 몰다가 승용차를 모는데요 15 아~~ 2013/10/13 5,443
307196 아빠 어디가에 나온 마을 정말 좋아보여요 10 ... 2013/10/13 4,345
307195 이사할때요. 잔금처리 질문요? 3 곰쥐 2013/10/13 1,223
307194 천사점토와 아이클레이가 다른건가요? 3 우리 2013/10/13 1,562
307193 맏이 장미희 5 ... 2013/10/13 2,843
307192 며칠째 혀에서 계속 느끼한 맛이 나요. 4 니글 2013/10/13 3,107
307191 막말하는 친정엄마...제가 참아야 하나요? 70 힘빠져.. 2013/10/13 25,351
307190 임산부한테 홍시가 안좋은가요? 8 시니컬하루 2013/10/13 6,662
307189 경희대 인근, 중랑역인근 원룸 풀옵션 월세가 ??? 4 ,,, 2013/10/13 1,651
307188 나이 마흔들어서니 앞날이 두렵다란 생각이 드네요 42 .. 2013/10/13 14,931
307187 파운드케익 보관 어떻게 하죠? 3 보관 2013/10/13 4,979
307186 삼성가 남매들 사이에서도 나중에 유산분쟁 벌어질까요? 5 삼성가 2013/10/13 3,3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