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며느리였을 때 시댁식구들과 간 여행기 올려보겠습니다.
정확하게는 ...시부모님 다 세상 떠나셨을 때니까 시댁 기준으로 하면 올케가 시누이 식구들이랑 떠난 여행기입니다.
1993년 서울에서 둘째 시누이 부부 (그때 연세가 60이 갓 넘으셨을 때) 아랫 시누이 부부와 그 아들
저희 식구 넷..이렇게 비행기를 타고 미국 뉴욕으로 갔어요.
저희 아이들은 그 당시 초등 고학년과 중학교 1학년 아들 둘이었지요.
뉴욕에는 둘째 시누이 딸 부부가 주재원으로 있었고 아들 며느리 손자 손녀가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도착하자 시누이 아들이 커다란 밴을 빌려서 먹을 것 잔뜩 싣고
나이아가라까지 가서 일박하고 보스턴 나이아가라 들러서 다시 뉴욕으로 돌아왔습니다.
보스턴의 하버드 대학, 맨해튼의 부산하고도 아름다운 거리, 뉴 포트의 아름다운 집들...플리머스의 민속마을 등...
저희 시댁은 남편 형제가 10남매였습니다.
저희 남편이 일곱째 였구요.
드물게 사이 좋은 집안입니다. 시누이 6분이 친정 일에 참으로 희생적이었어요. 효자 효녀들이었구요.
그리고 결혼해 들어오는 올케들에게 가사노동의 부담은 정말 안주시고 당신들이 일 많이 하셨지요.
물론 엄청난 효도가 가끔 스트레스가 된건 사실이지요.
지나고 나니 정말 그분들께 감사하고, 우리 아이들이나 남편에게 늘 고향이 되어주신 것에 감사하지요.
세월흘러 20년이 됐지만 우리 아이들 가끔가다 뉴욕 여행한 이야기 떠올립니다.
그때는 한명당 얼마로 계산해서 돈 걷어서 여행했어요.
그래도 윗 시누님이 알게 모르게 쓰신 돈이 더 많았겠고, 조카가 긴 여정 운전해줘서 다 같이 한차에 타고
재밌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점점 핵가족이 되고 인구도 줄어듭니다.
추석, 설에 모이면 한 30명은 충분히 되지요. 한끼만 자알 먹고 헤어집니다.
8순 되신 시누님께서는 여전히 우리집의 어른이십니다.
다른 집 조카들도 명절 때면 다 이댁으로 모입니다.
시누님 남편(우리 아이들의 고모부 되시죠)은 외아드님이셔서 가족이 없어 더욱 처가식구들 모이는 것을
좋아하시죠.
잔뜩 먹여주시고도 와줘서 고맙다...고 인사하십니다.
집집마다 근심있고 말썽있는데 때로는 이렇게 서로 사랑한다는게 사는데 큰 힘이 됩니다.
진정으로 잘 되기를 바래주니까요.
자게에 보면 시집 식구들, 친정식구들, 친구.,..이런 관계로 피폐해지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자를건 자르고....(망설이지 않게 생각을 많이, 잘 해야겠지요) 그리고는 나에게 남아있을지도 모르는 힘으로
다른 이들에게 조금 보탬이 되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비오는 화요일, 좋은 일 있으시기 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