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기록물로 지정돼 국가기록원에 보관 중인 2007년 제2차 남북정상회담 관련 회의록과 녹음기록물 등 자료 일체의 열람·공개를 국가기록원에 요구하는 자료제출요구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 요구안은 민주당이 먼저 제의하고 새누리당이 수용함으로써 두 당 사이의 합의가 이루어졌다. 얼핏보면 국정원과 새누리당이 문제의 대화록을 무단으로 공개하고 열람하며 그 내용을 날조한데 대한 민주당의 반격으로 보일 수 있지만, 현재의 정국상황을 놓고보면 그렇게 평가하기 어렵다.
민주당의 의도와는 반대로, 국정원은 무단공개에 대한 면죄부를 받게되었고 새누리당은 국정원 정국을 NLL 정국으로 전환시키기 위한 물타기에 성공을 거두는 상황이 되었다. 당초 논란이 되었던 것은 국정원이 자의적으로 발췌대화록을 새누리당 의원들에게 열람시킨 행위의 위법성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대화록 전면공개는 국정원의 정치적 쿠데타로까지 받아들여졌다. 당연히 책임자에 대한 문책과 처벌이 요구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민주당이 대통령기록물의 열람과 공개를 선도하는 상황이 되었기에 더 이상 국정원의 그같은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워졌다.
또한 새누리당은 국정원의 대선개입 문제로 조성된 국정원 정국에서 절대적 수세에 직면해있었다. 더구나 김무성 의원 등의 발언으로 지난 대선에서 대화록을 사전 입수하는 등 정치공작을 했다는 정황이 드러나 곤혹스러워 하던 참이었다. 국정원 대선개입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촛불집회와 시국선언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NLL 정국의 도래는 새누리당으로서는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민주당으로서는 회의록 원문에 대한 열람을 통해 새누리당의 왜곡을 바로잡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은 어느 일방의 완전한 승리와 패배로 끝나기가 어렵게 되어있다. 앞으로 있을 열람 과정에서 국정원이 자신들이 보관중인 대화록 내용을 조작했다는 사실이 명백하게 드러난다면 모를까, 두 당 사이의 공방전은 앞으로도 지속될 가능성이 지배적이다. 민주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NLL을 포기했다는 새누리당의 주장이 사실무근이었음이 확인되었다고 할 것이고, 새누리당은 표현만 다르지 결국 노 전 대통령이 그런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이 확인되었다고 할 것이다. 결국 해석의 차이를 둘러싸고 두 당 사이의 공방전은 계속될 것이다. 국정원 대선개입 문제로 절대적 수세에 몰리던 새누리당으로서는 팽팽하게 공방을 펼치는 정국으로 전환되는 것은 결코 나쁘지 않다.
여론은 NLL 대화록에 대한 국정원과 새누리당의 날조와 음해에 결코 넘어가지 않았다. 보수언론의 대대적인 지원사격에도 불구하고 국민 다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언을 ‘NLL 포기’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민주당은 더 이상 대화록의 내용을 갖고 다투어 새누리당의 물타기 전략에 말려들 것이 아니라 불법적인 무단공개의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것이 맞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국정원의 대선 개입 문제에 집중하여 국민과 함께하는 투쟁을 벌이는 것이 옳았다.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말이다. NLL을 갖고 싸울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지키는 문제를 갖고 싸우는 것이 기본방향이 되었어야 했다. 새누리당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문제가 눈앞에 놓여있는데 왜 다른 어려운 문제를 갖고 싸우려하나.
그런데 문재인 의원은 회의록 공개를 제안하며 다시 불을 붙였고 중심을 못잡는 민주당 지도부는 회의록 열람.공개를 선도하여 결국 다시 NLL정국을 만드는데 앞장서 버렸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드러났던 민주당과 문재인 의원의 한계가 재현되는 듯한 느낌이다. 문 의원에게는 대화록의 진위를 가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참여정부의 명예를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었다. 그가 참여정부에서 서있던 위치를 생각할 때 이해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이 중요한 시기에 그보다 더 큰 것을 보았어야 하지 않았을까. 결국은 자신들을 중심으로 보다가 전체를 놓치는 우를 다시 범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과정은 지난 대선을 복기하는 듯이 빼어닮았다. 여기까지가 문재인 의원과 민주당의 한계가 아닐까. 결국 7월 정국은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NLL 포기니 아니니 하며 치고받다가 끝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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