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심플 조회수 : 1,479
작성일 : 2013-07-17 23:13:54

4.19가 나던 해 세밑   우리는 오후 다섯 시에 만나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불도 없이 차가운 방에 앉아

하얀 입김 뿜으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어리석게도 우리는 무엇인가를 정치와는 전혀 상관없는 무엇인가를

위해서 살리라 믿었던 것이다. 결론 없는 모임을 끝낸 밤  혜화동 로터리에서 대포를 마시며

사랑과 아르바이트와 병역 문제 때문에 우리는 때묻지 않은 고민을 했고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는 노래를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노래를 저마다 목청껏 불렀다. 돈을 받지 않고 부르는 노래는 겨울밤 하늘로 올라가

별똥별이 되어 떨어졌다.

그로부터 18년 오랜만에 우리는 모두 무엇인가 되어 혁명이 두려운 기성 세대가 되어 넥타이를 메고 다시 모였다.

회비를 걷고 처자식들의 안부를 나누고 월급이 얼마인가 서로 물었다. 치솟는 물가를 걱정하며 즐겁게 세상을 개탄하고

익숙하게 목소리를 낮추어 떠도는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모두가 살기 위해 살고 있었다. 아무도 이젠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적잖은 술과 비싼 안주를 남긴 채 우리는 달라진 전화번호를 적고 헤어졌다. 몇이서는 포커를 하러 갔고

몇이서는 춤을 추러 갔고 몇이서는 허전하게 동숭동 길을 걸었다. 돌돌 말은 달력을 소중하게 옆에 끼고 오랜 방황 끝에

되돌아온 곳  우리의 옛사랑이 피 흘린 곳에 낯선 건물들 수상하게 들어섰고 플라터너스 가로수들은 여전히 제자리에

서서 아직도 남아있는 몇 개의 마른 잎 흔들며 우리의 고개를 떨구게 했다.

부끄럽지 않은가  부끄럽지 않은가  바람의 속삭임 귓전으로 흘리며

우리는 짐짓 중년기의 건강을 이야기했고 또 한 발짝 깊숙이 늪으로 발을 옮겼다. .. (대장간의 유혹)에서...

IP : 59.7.xxx.41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
    '13.7.18 12:19 AM (175.194.xxx.113)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김광규 시인의 시였던가요.
    오랜만에 읽으니 새롭네요.

    모두가 살기 위해 살고 있었다. 아무도 이젠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 2. ...
    '13.7.18 5:29 AM (59.7.xxx.41)

    네 김광규 시인 맞습니다. 나이 들어도 순수한 모습이고 싶습니다.
    순수만으로 살 수는 없지만 현실에 찌든 나는 되고 싶지 않아요.
    마음이 혼란스러울 때 읽으면 다시 정리가 되는 느낌이예요.
    서글픔이 느껴지지만 제게는 소중한 시입니다. 답글 감사합니다.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277758 10년을 키운 반려동물을 '사정 상' 어디 보낸다는게... ㅜㅜ.. 9 어휴 2013/07/18 1,912
277757 예민하고 민감한 피부인분들은 관리 어떻게하세요? .. 2013/07/18 682
277756 식당 추천 부탁드립니다. 로즈마리 2013/07/18 519
277755 강아지..오리젠 사료 먹이는 분 계세요? 5 애견 2013/07/18 4,642
277754 보조개 수술 하신 분 계세요? 4 보조개 2013/07/18 2,488
277753 부산에서 큰맘먹고 강원도 가요 4 검색도 해봤.. 2013/07/18 803
277752 옛날 일제때 건물들이나 거리가 멋있지 않나요? 22 ..... 2013/07/18 1,888
277751 오카리나 초보 - 추천해 주세요. 3 수국 2013/07/18 1,789
277750 냉국의 끝은 어디인가......... 6 ... 2013/07/18 1,769
277749 팥을 1키로 삶으면 너무 많을까요? 9 ^^ 2013/07/18 1,345
277748 부시시한 머리카락에 어떤 팩이 좋은가요? 새털 2013/07/18 825
277747 제습기대신 온풍기쓰면 별로일까요? 9 습기싫다 2013/07/18 2,779
277746 가정용빙수기 추천좀 해주세요 2 스노피 2013/07/18 2,704
277745 영어 말하기 대회 본인이 원고를 써야하는거 아닐까요? 4 궁금 2013/07/18 1,517
277744 파스타소스를 대신할 야채소스 2 토마토 2013/07/18 909
277743 北, 개성회담 南태도 비난…”문제해결에 난관 조성” 2 세우실 2013/07/18 598
277742 푸른 토마토 장아찌.... 8 .... 2013/07/18 5,086
277741 우리엄마는 어떻게 나한테 이럴수가 있을까요? 1 무한 2013/07/18 1,569
277740 (동남아시아) 좋은 리조트 어디가 있나요? 3 ... 2013/07/18 1,775
277739 자전거 탐험에 필요한 장비가 뭐가 있을까요? 1 bb 2013/07/18 735
277738 아이랑 부산남포동을 가고 싶은데요... 3 ^^ 2013/07/18 1,350
277737 잔뜩 끓여 놓고 냉동고에 보관해서 먹을 수 있는 국은? 2 뭘까요. 2013/07/18 1,445
277736 “방송사 전산망 국정원이 관리” 파문 9 늘푸른소나무.. 2013/07/18 1,567
277735 어떤 사람들이 주차금지구역에 주차하는지 알았네요..참,,, 2 날이 더우니.. 2013/07/18 1,166
277734 kbs1뉴스이상하네요 진보가 보수를 찔러죽였다고 나오고 16 잔잔한4월에.. 2013/07/18 1,918